여자친구와의 결혼을 계획 중인 평범한 퀴어의 명절 인사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다. 많은 이들이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를 품고 열차나 버스에 몸을 실어 돌아간다. 나 또한 어김없이 본가로 왔다. 오랜만에 본 바다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변함없이 푸르렀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바다, 나의 집. 변한 거 하나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름이 느껴졌다. 내가 빠진 방에서 흘러간 시간과 대형 브랜드가 들어온 번화가가 유례없이 이 동네를 낯설게 한다.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런 시간이 겹쳐져서 끝내 이방인이 되어 버리는 걸까. 그런 생각하면 조금은 슬픈 거 같다.
종종 메신저를 나누는 동갑내기 남자 동기가 7년 만난 여자친구와 내년 8월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러웠다. 그런 결정이 이내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나에게 전하는 데 어떤 걸리적거림이 없다는 게 부러웠다. 친한 친구가 남자친구과의 결혼을 생각할 때 나이가 걸림돌이라고 했다. 법적으로 걸리지 않는 게 부러웠다.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나도 행복한데 떠나온 고향에서 느끼는 감정처럼 어딜 가나 속하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일평생을 태어나고 자란 이 국가가 나를 지켜주지 못하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건 짜증스럽다 못해 무력하게 만든다.
한국의 동성혼 법제화 어디까지 왔을까. 수치가 있다면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럼 기다림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유한한 시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언젠간 되겠지'라는 말로는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는 자연발생설관 다르게 부딪침 없이는 이뤄지지 못할 거 같다. 마치 페미니즘이 전국을 피곤하게 만들었지만 5년 전, 10년 전과 달라진 인식을 부정할 수 없는 거처럼 말이다. 사회의 변화는 고통을 수반한다.
소시민인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사회초년생이라 금전적인 여유도, 명성도 없는데 말이다. 일단 글을 쓰기로 했다. 윤동주 시인처럼 후에 부끄럼 가득하여 하늘을 우러 보겠지만...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솔직히 말하자면 사회를 바꾸기보다는 내가 국적을 바꾸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나는 이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 집에만 해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30년을 사신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적어도 우리가 가는 길에 '동성애 결사반대' 피켓을 들이밀 사람이 없다면 한국보다 살기 좋지 않을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가슴을 아프게 찌르지만 내가 행복한 게 먼저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구태여 하기 싫다는 거다. 정말 쉽지 않은 인생이다.
동성혼 법제화는 비단 남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이 닿은 당신이 사랑하는 친구, 가족, 동료, 심지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조차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지인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 이건 100% 실제 상황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시간을 뺏지 않기를 바란다. 한 종류의 바나나만이 끝없이 깔린 농장보다 자연이 선물한 다양성을 품은 숲이 아름다운 거처럼,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당연시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 당신의 자녀가 행복하게 자랄 가능성이 높을 거다. 2가 더 좋은데 1을 선택하길 강요하는 사회가 말고, 개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말고, 불확실한 불안을 품지 않은 채 웃을 수 있는 사회. 그거야말로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