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으로 치부되기엔 너무 고귀한 이야기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현대사는 잘 모른다. 수능 한국사를 공부해 보면 현대사 파트는 특히 외울게 많아서 힘들었다. 1급을 받았지만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 한국사 강의를 하시는 최태성 선생님이 떠올랐다. 역사를 읊으며 눈물 흘리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했었다. 부산사람으로서 어릴 적부터 ‘지역감정’이라는 단어를 종종 썼다. 제대로 된 어원도 모르는 내가 창피해졌다.
책 속에서 빠져나오라는 에필로그에서 나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참을 갇혀 있었다. 한강 작가가 마주한 동화라는 아이, 그의 유족들. 그들의 고통이 지워진 듯한 사회에서 잊고 사는 내가 창피해졌다. 군부 정권에 분노했다. 인간성에 대해 고뇌했다. 나는 어땠을까. 내가 저곳에서 저 때 살았다면 난 총을 쥐지 않을 수 있을까. 살갗을 뚫고 지나가는 납탄을 피할 수 있었을까. 총구 앞에서 자유를 울부짖을 수 있을까. 쓰러진 가족과 친구들을 보며 버텨낼 수 있었을까. 이건 그저 유행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고귀한 이야기이자 입방아에 오르기엔 너무 무거운 누군가의 발자국이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러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업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랍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도청에서 유족에게 가족의 시신을 찾아주는 일을 하기도 하고, 집으로 가라는 형과 누나의 말을 뿌리치고 쏘지 못하는 총을 들어 군인을 마주하는 아이가 되기도 하고 , 죽은 영혼이 되어 나의 시신을 내려보기도 하고, 조사실 밑에서 일곱 빰을 맞는 출판사 직원이 되기도 하고, 검은 모나미 볼펜으로 고문을 당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버리기도 하고, 노동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다 감옥에 갇힌 여자가 되기도 하고, 죽어버린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그 모든 이야기를 모으고 쓰면서 악몽을 꾸는 한강 작가가 되기도 했다.
한 점 부끄럽 없이 하늘을 보는 게 이리도 어렵다는 걸, 새삼스럽게 돌이켜 깨달았다. 노벨수상에 기자회견을 열지 않은 작가가 이해됐다. 삽시간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어 역사에 남을 텐데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되돌아오지 않음을, 어느 지역구 의원이 현수막에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며 내건 ’ 굴곡진 현대사를 문학으로 치유‘라는 말로는 치유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끝나지 않을 고통과 죄책감에서 살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올해도 건너온 설레는 봄과 뜨거운 여름을 못 건너온 그들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아서… 한강의 문장으로 인해 모두가 이 나라가 지나온 걸음을 돌이켜 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