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다녀온 대만(1)

제2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by 블루Blu

분명 11월인데, 셔츠만 걸쳐도 춥지 않은 날씨. 열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특이하고 커다란 나무들. 자동차보다 많은 오토바이들. 변덕스러운 날씨와 익숙하게 들려오는 만다린어(대만에서 표준으로 쓰는 중국어), 에너지가 넘치는 야시장, 향수가 되어주었던 설명할 수 없는 대만 냄새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의 제2의 고향, 어머니의 진짜 고향인 이곳에 8년 만에 다시 왔다.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대만을 방문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신선하지 않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살이 되기 전에는 해외여행을 대만만 다녀왔기 때문에 18년도에 어른이 된 나는 대만이 아닌 다른 나라에 가고 싶었다. 두 번째로는 '여행 같지 않다'였다. 과거 친척들과 사이가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을 때는 대만에 가면 업무처럼 수행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조부모님 제사드리고 달갑지 않은 친적들 만나기. 예전에 갔던 곳만 계속 가는 경향까지. 이십 대 초반이었던 몇 년 간, 나의 발걸음을 밖으로 돌린 이유가 되었다.


'올해는 꼭 엄마랑 대만에 가야지.'는 2020년의 새해 목표였다. 하지만 나의 목표를 처참히 무너뜨렸던 희대의 나쁜 놈이 등장하는데, 바로 '코로나-19'였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22년 상반기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첫 1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회사는 의무연차 15일 중에 5일은 무조건 붙여 써야 하는데 이 5일을 대만 가는데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 된 게 타이밍이 계속 빗겨나갔고 24년, 올해 나의 목표는 기필코 엄마와 대만에 가야겠다는 거였다. 물론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대만 사람들은 소위 '빈 말'을 싫어한다. 한국사람들이 종종 하는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약속 안 잡음) 처럼 으레 하는 말들을 하지 않는다. 나는 대만사람이 이렇다는 사실을 조영미 작가의 '살아보니 대만'이란 책을 읽고 알았다. 이 책에서는 대만 사람들의 문화에 관해 작가의 경험과 함께 설명해 준다. 그 과정에서 난 엄마의 행동들을 이해하게 됐다. 한 말을 무조건 지킨다는 거, 사실 지킬 수 있는 말만 뱉는 거 같다. 엄마는 정말로 허황된 말을 꺼내지 않으셨다. 기본적으로 친절하지만 자기 업무 밖의 영역은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 수분 섭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언제 어디서나 앉아서 음식을 먹는 것, 혼자 밥 먹거나 행동하는 게 특이한 일이 아닌 거... 등등. 이 모든 것이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아, 엄마가 그래서 이랬구나.' 하고 깨닫게 했다. 곧바로 부끄러워졌다. 나는 엄마가 대만 사람인 걸 좋아하는데 한 번도 엄마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 역사라든지, 문화를 알아볼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다. 그 부끄러움을 지우고자 24년도 빅 이벤트는 '대만 방문'을 걸어놨다.


삼 남매가 대만을 가자고 할 때마다 엄마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지셨다. 늘 '상황을 보자.'라는 말로 정리했다. 나는 언니, 오빠에게 올해 대만을 가자고 주기적으로 말했고 스케줄을 비워달라고 부탁했다. 시간은 흘러 7월이 되었고 나는 본가인 부산에서 3시간가량 떨어진 서울로 발령이 났다. 정신없이 새로운 업무를 배우느라 눈 깜박할 사이 3개월이 흘렀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영상통화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대만 가자. '


순간 엄마 얼굴에 떠올랐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소녀처럼 설레하는 모습, 기대하는 모습. 그 모습이 미안해서 통화를 끊고 오래 울었다. 늘 말만 하는 딸이 죄송해서 울었다. 마음이 벅차서 그랬다. 62년생인 엄마와 99년생인 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더 엄마의 고향에 갈 수 있을까. 함께 살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이 엉킬 대로 엉켜서 텅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한참을 울었다가 다짐했다. 엄마와 최고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대만의 도로
길거리를 걷는 엄마
시먼딩 무지개 신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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