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가 떠난 이듬해의 나는 어느 때 보다도 침착하고 고요했다. 급히 이사하지도 않았고, 남기고 간 물건들을 단번에 쓸어내어 버리지도 않았다. 나는 떠난 공간과 남겨 놓고 간 물건들 사이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은.
아령으로부터 다섯 번의 계절이 지나고 새로운 봄이 왔을 때였다.
거실 조명은 9가 결혼 전부터 쓰다가 집을 떠나며 두고 간 것. 차가운 빛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그 스탠드를 거실에 켜놓곤 했었다.
따듯한 전구색 조명은 9가 떠나고도 한동안 그 역할을 묵묵히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그 조명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중고거래 어플을 열었다.
그런데 거실에 남겨진 것은 조명뿐만이 아니었다. 9는 쓰던 빨래건조대도 남겨놓고 갔는데, 살이 망가졌는데도 나는 그간 무심하게 그것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이케아 조명을 거래하려고 약속을 잡다가 구매자가 빨래건조대를 내어놓은 것을 발견했다.
“저한테 필요한 걸 가지고 계시네요”
거실 스탠드를 넘겨주고, 빨래건조대를 받으러 나는 10여 분 거리의 아파트로 향했다.
비상등을 켜고 아파트 펜스 옆 도로에 정차하고 있자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물건을 내보내는데, 동시에 내게 당장 필요한 것까지 얻게 되다니. 효율적인 중고거래를 하는데서 오는 산뜻한 고양감.
구매자는 “딸아이가 가지고 싶어 했다” 며 잘 쓰겠다는 후기를 남겨주었다. 나는 만나지 않은 아이의 방과, 그 방에 놓인 조명을 상상했다. 내 집에서 해야 할 역할은 충분히 다 했으니, 이제 환영받는 곳에서 환하게 빛을 내면 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미련 없이 망가진 빨래건조대에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집 밖으로 내어놓았다.
이것이 내 두 번째 비움이었다.
-남겨진 물건들에서 나를 찾다.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