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_벽시계

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

by 정이선

나는 9가 떠난 집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

회사, 본가 양쪽 모두 적당한 거리. 편리한 교통, 맛있는 음식점 많음, 산, 공원, 하천이 모두 가까이 있음. 조용한 이웃, 창이 크고 볕이 잘 듦.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으나 떠나야 할 이유도 없었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다. 내 것이 아닌 물건들, 내가 고르거나 정하지 않은 물건들 사이에서 그냥, 지냈다.

물건도, 집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사하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렇게 답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남겨진 것들에 둘려 싸여 있으면서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나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거칠게 사포질 한 것 같던 고통이 가라앉자, 나를 둘러싼 것이 잘못 벗겨진 허물처럼 거슬리기 시작했다. 거실 조명이 그랬다. 화장대가 그랬고, 책장이, 옷장이, 욕실시계가, 소형가전들이, 취미용품들이 그랬다.


현관 출입구에는 9가 쓰던 벽시계가 걸려있었다. 그는 실용성만큼이나 아름다움에도 관심이 많았다. 값비싼 것은 아니었으나 고심해서 고른 것이 분명했다. 차분한 색깔,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 어디에도 잘 어울릴 시계였다.


그리고 한 해가 끝날 무렵 사무실에 걸린 벽시계가 고장 났다.


“건전지를 갈아 껴도 안 가네요, 고장인가 봐요.”

“잘됐네요, 시계를 바꾸고 싶었는데. 집에 있는 걸 가지고 올게요.”


다음 날 나는 곧장 집에 걸려있던 벽시계를 가져와 사무실에 걸었다. 시계는 벽과 아주 잘 어울렸다. 그렇게 그 시계는 나의 기억과 나의 공간을 떠나 ‘모두의 것’이 되었다.


이전에도 나는 고장 난 벽시계를 대신해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시계를 걸어두고 퇴사한 적이 있었다.


관계가 결말을 맞은 후 그 시간에서 떠나오라는 듯이 우연처럼 고장 난 시계들.

나는 과거와 얽힌 시계를 내가 떠나는 공간이나 모두의 공간으로 옮겼다.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아주는 대신, 더 이상 나의 감정에는 어떠한 무게와 영향을 줄 수 없도록.


돌이켜 보면 이 역시 내 방식대로의 헤어짐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