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
물건의 수명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쓸모의 다함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집에는 9가 가져온 바디필로우도 있었다.
9는 자신이 구입해 사용해 온 가구나 물건에 대해 애착이 있었고(아마도), 결혼 즈음의 나는 취향이 없거나, 신혼에 대한 로망이 없거나, 또는 ‘나중’을 기약하거나 했다. 이 집 말고, 나중에 더 넓은 집,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그때 정리하고 새로 사야지.
그렇게 훗날을 기약한 덕에 9가 쓰던 대부분의 가구나 물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주인은 떠났고 어떤 물건은 남겨졌다.
‘상황과 환경이 달라졌더라도 쓸모가 남아있다면 사용한다.’
당시의 나는 그랬다.
출근길에는 요사이에는 보기 드문 수예점이 있었다.
식탁의자의 스펀지가 숨이 죽어 폭신함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바디필로우에 들어 있던 합성솜을 이용해 방석을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바디필로우의 솜은 아직 쓸모가 남아있는 듯했다. 그래서 붙박이장 한가운데 보기 싫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그냥 그렇게 두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쯤이 쓸모를 다한 때인 걸까.
어떤 것은 정해진 날짜와 기한이 못 박혀 있어 그 수명을 다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어떤 것은 낡아짐을 눈으로 확인하여 그 쓸모가 다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오로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만이 ‘시간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문득 ‘물건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이 더 이상은 마음에 닿지 않는 때가 찾아왔다. 그래서 그것을 가까이에 두는 것이 ‘나 자신에게 잘못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때가 오고서야 나는 어떤 것들이 나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이 저를 바디필로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재잘거리던 때도 있었지. 내 팔이 차갑고 시원하다며 만지작거려 여름이 왔음을 알거나, 나를 끌어안으면 따듯하다고 해서 가을이 찾아왔음을 깨닫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사실 방석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저 큰 자리를 차지하는 바디필로우 속 합성솜 또한 남겨둘 필요가 없다는 것도.
다음날 나는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쓸모와 의미를 다 한 그 솜을 집 밖으로 내어 놓았다. 그렇게 또 나는 그 시간을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