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_보조배터리

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

by 정이선

운전석 한쪽에는 보조배터리가 하나 있다. 계속 쓸 것인지 처분할 것인지 정하지 못해서 장소만 옮겨둔 것.


때로는 나답게 사는 것이 상처가 되는 관계가 있다.

그냥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주는 인연도 있다.


그가 떠난 후 나는 그저 끝없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물으며 방법을 찾으려 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조언을 구하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끝없이 걸었고, 잡히는 대로 읽었다. 생각하고, 묻고, 쓰고, 꿈꾸고, 깨어나면 또 물었다.


모든 문제는 우리 안에 있고, 해결 방법도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내가 그 ‘문제’를 발견해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라고 쥐고 흔들며 외치면 ‘우리’는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끝없이 ‘왜’를 물었다.

왜, 왜,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안개가 자욱한 축축한 새벽, 나보다 한참이나 높이 자란 수풀 속. 홀로 헤집으며 출구를 찾는 일. 그즈음의 나는 모든 것이 길처럼 보이면서도 그 어떤 것도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떤 날에는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내가 옳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그릇된 것이니, 이제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뜻처럼 보였다. 그런 날에는 바싹 몸을 낮추어 내 모든 것을 밑바닥까지 부정했다. 그러나 그렇게 나를 거스르는 일은 나를 더 큰 고통과 절망으로 끌어내렸다.


반대로 9를 파고들어 가혹하고 차갑게 난도질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행복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선택한 것은 ‘나’ 였으므로.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더도 결국 모든 것은 ‘나’로 돌아왔다.


그렇게 갈팡질팡하고 있자면 지금 들어서는 것이 입구인지 출구인지, 함정인지 또는 구원의 방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잘 살고 싶었을 뿐” 이라며 주저앉아 엉엉 우는 편이 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뿐.


무엇이 더 나은 방향이었을지는 지금에 와서야 알 수 없다. 그리고 사실,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 돌아보면 내가 어떤 태도를 취했대도 결말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차라리 나답게 안간힘을 쓰다가 장렬히 전사한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9가 이 작은 보조배터리를 두고 떠나던 그 장면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 그의 말투, 태도, 눈빛은 벼린 칼이 되어 내 마음을 깊이 베었으나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혹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의도치 않게 상처 주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용서해야만 한다.



*덧붙임.

이 글을 쓰면서 나눔글을 올렸다. 금세 가져가고 싶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간 나는 마음에 꽂힌 화살을 내 손으로 빼어내고도 내 손으로 다시 그 화살을 다시 꽂아댔었다. 그러나 이제 충분하다. 활도 화살도 모두 보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