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_옷장

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

by 정이선

하얀색의 가구들 중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옷장이었다.


문제는 옷장 문에 붙어 있는 것이 이 집의 거의 유일한 거울이라는 것.

고민 끝에 나는 문짝에서 거울을 뜯어내고 벽에 기대 세워 사용하기로 했다. 뒤판이 없는 거울은 낭창거려 불안했지만 아직은 새로운 물건을 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던, 빈티지, 레트로, 뉴트로, 미드센추리... 나는 취향대로 물건을 사거나 모으고 집을 꾸미는 사람이 신기했다. 그들은 어떻게 ‘그것’이 내 취향이라는 것을 알까.


취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많이 소유하고 경험해 보면 실패를 통해 취향을 알게 된다고 했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류의 소비가 어려웠다. 특히 기꺼이 실패해도 괜찮을 만큼 ‘취향’ 이 내게 중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취향을 자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취향이 없는 나는 뭔가 잘못된 사람 같았다.


그런데 나는 9의 물건들 한복판에서 드디어 나의 취향을 발굴해 냈다.

새로운 것을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들 중 좋아하지 않는 것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나는 걸이와 집게와 고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 나는 물건들이 수납되어 드러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하얀색 가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 나는 원목이나 짙은 나무색의 가구가 좋다.

나는 밝은 빛의 직부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 따듯한 전구색과 낮은 조도의 간접등이 좋다.

나는 침실에 가구와 물건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침실에는 침대와 협탁 하나면 충분하다.


크고 작은 것을 비우고 나면 대부분 비워진 그대로 지냈다. 새 조명을 들이지도 않았고, 가구나 벽시계를 사지도 않았다. 대신 그 물건들이 정말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물었다. 그리고 필요해서 다시 산다면 무엇을 살 것인지 상상했다.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가구가, 벽시계가, 조명등이 팔리고 있었다.

나는 온라인으로 자주, 그리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가끔,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그렇게 ‘필요한가’, ‘무엇을 살 것인가’를 끝없이 물으며 내 안의 취향을 발굴해 나갔다.


이사를 앞둘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