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
함께 살았던 곳은 공인중개사로부터 ‘오늘 의뢰받아 아직 매물로 올리지 않은 물건이 있는데’라면서 소개받은 집이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따듯한 햇살. 나는 그 집에서 함께 2년을, 홀로 3년을 살았다.
그리고 봄을 앞두고 이사가 결정되었다.
이사까지 남은 것은 한 달 반.
그리고 여전히 한참 남아있는 9의 물건들.
‘나’.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결정할 것.
남은 물건에 대한 나의 기준은 아주 분명했다.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을 즈음의 나는 나의 교만함을 반성했다.
내가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상대방의 마음속 빈 공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나는 ‘예외’ 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내게는 이혼 같은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반성했다. 지금의 고통은 그런 내 교만함에 대한 징벌 같았다.
또 그즈음의 나는 나의 자기중심성에 대해 고통스럽게 되짚기도 했다.
나는 상대가 나를 ‘나’인 채로 사랑해 주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나는 상대를 그렇게 존재 자체로 사랑하였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나를 더 내려놓고, 나를 더 내어놓으면 되는 것인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지키지 못했던 나의 경계가 보였다.
뭔가 이상하다 싶은 때에도 사람은 원래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싶은 때에도 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므로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했다. 표면적으로는 겸손의 태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나의 오만이었다.
나는 나를 넓혀 더 큰 물과 바다가 되어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를 찢어 상처 입히는 일인 줄도 모르고.
이사는 그때는 지키지 못했던 나의 경계를 다시 세우고, 나를 지키는 일이었다.
나는 작은 과일칼 하나도, 낡은 수건 한 장 조차도 내 마음을 거스르는 것은 새로운 집으로 들이지 않기로 했다.
새 집으로 가져갈 물건은 하나하나 포장해 상자에 담고 이름표를 붙였고, 가져가지 않을 물건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거나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이사를 앞둔 밤.
침대마저 새로운 주인을 찾아 덩그러니 빈 매트리스만 남았던 날.
그리고 그 매트리스마저 새로운 주인을 찾아 다음날이면 모두 다 떠나보낼 것이 예정되어 있던 날.
나는 맥주 한 잔을 마시곤 빈 매트리스 위에 누워 집에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