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_안녕, 나의 집

남겨진 물건에서 나를 찾다

by 정이선


이 이야기는 집, 너에게 들려주는 작별인사야.


나는 이 집을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어. 초봄이지만 꽤 추운 날씨였는데, 거실에는 커다란 창에서 햇살이 너무나도 따스하게 들고 있었거든.


중개사 아주머니는 이 집을 소개하면서 돌아가신 건물주 할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살기 위해 지었던 것이고, 자녀들과 각 층에 나누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너를, 이 집을 좋아하게 되었어.


가족들과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집이라니. 이 집에 살면 왠지 우리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처음 이곳에서 자던 밤, 나는 마음속으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할아버지에게 기도 했어.


우리도 이곳에서, 잘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볕이 잘 드는 곳은 거실만이 아니었어. 안방에는 남쪽과 서쪽에 커다란 창이 있었어. 아침에도 해가 들고 저녁에도 해가 들었지. 침대에 누워 데굴거리고 있으면 이웃의 소리도 강아지의 소리도, 새소리도 방 안으로 밀려오는 나는 이 집이 참 좋았어.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 집이 좋은데, 그리고 좋았는데, 동시에 이 집을 정말로 떠나고 싶기도 했었어.


함께 살던 곳에 혼자 남아있었던 것은 좋은 선택이었을까?

9가 주민등록도 전출해 버리고, 정말로 나 홀로 이 집에 남겨졌던 그날 밤.

이 침실, 이 매트리스 위에서 나는 ‘저에게 왜 그러시느냐’ 고 하늘을 향해 따지면서 울었어. 침대를 양손으로 내려치면서, 저한테 왜 그러시느냐며 엉엉 울었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누구에게라도 따져 묻고 싶었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그보다 더 앞서, 아직은 함께 있었던 어느 날에는 잘못했다고 빌기도 했었어.

여름의 아침은 이르게 찾아왔고, 그날도 잠을 이루지 못한 새벽이었지. 나는 홀로 침실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식탁에 앉아 양손을 맞잡고는 ‘제가 잘못했다’ 고 했어. 그냥 제가 다 잘못했다고, 제가 교만했다고, 제 인생만 귀한 줄 알았다고 했어. 무엇이든지 그냥 제가 다 잘못했다고 그렇게 빌었어. 눈물이 뚝뚝 쏟아져 내렸어. 그것도 이 집, 저 밖, 그 거실에서였어.


너는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았겠지.


나는 네가, 이 집이 좋았어.

너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좋아했고, 떠남을 앞둔 지금 이 순간도 네가 여전히 좋아.


그러나 또 나는 이 집과 이 공간이 내게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어.

조금만 참자. 다음번에 이사를 할 때, 모두 정리하고 새로 사는 거야.

나는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물건들과 지낼 수도 있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양보하고 맞추었다고 생각했어.


그런 내 모순된 마음이 너에게도 들렸을까.


그간 나에게 따스한 볕을 주어서 고마웠어, 포근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고마웠어.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커다란 창을 주어서, 튤립을 키울 수 있는 볕이 잘 드는 널찍한 테라스를 주어서, 커다란 창고를 주어서. 넉넉한 거실과 더 큰 안방, 딱 맞는 작은 방과 넓은 욕실까지.


나는 네 안에 머무는 동안 조금 더 커질 수 있었어.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