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더듬는 것은, 머리카락을 결의 반대방향으로 쓰다듬는 것과도 같다. 그렇게 거슬러 쓰다듬다 보면, 그 아래 숨겨진 마음과 생각을 주울 수 있다. 그 불편한 것을 해 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시트가 벗겨지기 시작한 거울이 달린 하얀색 옷장과 높고 커다랗고 속이 들여다 보이던 샘책장. 어느새 불편해진 거실조명과 가지고 갔어도 괜찮았을 욕실 시계와 벽시계. 부서졌는데도 무심히 사용했던 빨래건조대와 초면의 셋톱박스. 사실 세트는 아니었던 것 같은 하얀색 화장대와 언제 샀는지 모를 튼튼하고 깊고 커다란 수납장. 굿바이 웨딩슈즈. 내내 창고에 있던 식기건조대와 골골거리던 벗겨진 프라이팬. 왜 두고 갔는지 결국은 알지 못할 바디필로우와 육각아령, 그리고 남겨진 9의 옷들. 의미가 바랜 캐시미어 느낌의 머플러와 일관성 없는 나무, 플라스틱, 철제 옷걸이들. 원두 그라인더를 대신하다 결국 고장 난 믹서기와 오래되어 변색된 전자레인지. 섭섭한 기억의 차렵이불과 크기가 맞지 않았던 암막커튼, 그리고 나라면 사지 않았을 실리콘 총과 제골기와 스퀴저와 다용도 찜기. 출처불명의 자동차 에어컨 필터와 쓰지 않은 알루미늄 사다리와 예쁘지 않았지만 바람만은 강력했던 에어서큘레이터와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 전기히터. 9의 연애와 결별, 나와의 연애와 결혼과 이혼, 그리고 나의 새로운 연애까지 이어진 그 모든 역사를 지켜본 위험한 침대, 그리고 매트리스까지.
남겨진 것들, 모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