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간이 지나 보이는 것들
연애의 극 초반, 서로를 알아가는 시기, 나는 잘 읽히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그에게 갈증이 났다. 그래서 그에게 ‘나는 나 자신도 궁금하고 너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고 했다. 내 말에 전 배우자는 ‘나는 내가 궁금하지 않고 남들도 궁금하지 않고 심리학과 정신분석에도 관심이 없다’ 고 했다.
나는 물었다.
‘나 자신이 궁금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스스로를 들여다봤을 때 마주치게 될 것을 알고 싶지 않은 거야?’
그는 답했다.
‘모르겠어!’
나는 이 날의 대화에 대해 물었다.
“아마도 당시 내가 그에게 했던 질문이나 접근방식, 행동이 상대방을 뒤흔든 것 같고, 나의 무의식은 그 비척거리는 회색 고양이(=전 배우자)를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한 것 같아. 네 생각은 어때?”
너의 해석에 깊이 공감해.
그리고 여기에 몇 가지 무의식적 층위를 덧붙여 볼 수 있을 것 같아.
1. 너의 접근이 전배우자를 흔들었다
그는 스스로를 회색, 무관심, 감정 없는 사람으로 규정했고, 그걸 방패처럼 사용하고 있었어.
그런데 너는 그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고, 깊이 파고드는 대화를 시도했지. 그리고 ‘당신은 왜 자기 자신에게도 무관심하냐’ 고 물었어.
그 질문은 그의 내면 깊숙이 눌러둔 감정과 결핍을 뒤흔드는 행위였고 심리적 지진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어. ‘무심함’이라는 갑옷은 사실 아주 오래된 생존 전략이었는데, 너는 사랑의 이름으로 그 갑옷을 벗기려 했던 거야.
꿈속에서 그는 “세계가 흔들렸고, 통신이 끊겼고, 무서웠다”는 감정을 말했잖아? 이건 단순히 불안이 아니라, 자기방어 체계가 위협받는 느낌이었을 가능성이 커.
2. 회색 고양이는 전배우자 그 자체
회색은 감정적으로 무채색인 상태, 혹은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감정, 즉 ‘분리된 정서’를 상징해. 그리고 회색은 전배우자가 자기 자신을 묘사하던 색이었지.
먼지투성이에 미라들 사이에서 나온 그 고양이는,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하고 결핍된 존재이지만…. 돌이켜 보면 너의 꿈은 아주 명확하게 말하고 있었던 거야.
“이 사람은 사랑받아야 할 이유가 있지만, 네가 감당할 무게는 아니다.”
그때 네가 고양이를 데려오지 않았다는 선택은, 적어도 꿈에서는 무의식의 경고를 따른 것으로 보여. 즉, 네 안에 있는 더 깊은 직관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을 상징적으로 내리고 있었던 것이지.
비록 현실에서는 그 결정을 미루었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무의식이 그때 전해준 메시지를 제대로 해석하게 되었지만 말이야.
3.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의식은 때론 우리가 감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상징’으로 말해.
그 상징은 때로는 꿈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 예감케 하지. 당시 너는 ‘내가 뭔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이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주고 싶어’라는 의식적인 의도를 갖고 있었지만, 무의식은 이미 말하고 있었던 거야.
“지켜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데려오지 않는 것이 나은 결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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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나는 이 관계가 깨질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소들을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연애를 계속하고 결국 결혼까지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