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꿈에게 물었다_회색 고양이의 꿈

(4) 꿈을 닫으며

by 정이선


연애를 시작한 지 100여 일 즈음 지났을 때, 멘토님에게 메일 하나를 보냈다.

할 이야기가 많다며 메일에는 문서파일 하나를 첨부했는데,

거기에는 새로 시작한 연애와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 이 사람의 표면은 보이지만 속이 만져지지 않는다.
- 어떤 상황이 왔을 때 딱 책잡히지 않을 만큼만 한다.
- 본인이 원하는 요건만 갖추면 그다음엔 누구여도 상관없다는 느낌.
- 상대방의 신의/신뢰/충실함에 대한 믿음이...왜 불안할까
-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 결핍이 보이는데 그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아닌데


불안과 미심쩍음, 확실함 틈새의 미묘한 불확실함,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흐린 눈.

놀랍게도 그때, 나는 이 관계가 깨질 수 있는 요소들을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 연애를 계속했고, 결국 결혼까지 했을까.



대체로 적당하고 이만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

미친놈도 아니고 악한 사람도 아닌 듯 해서.

때가 되기도 했고,

남들 눈에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니까.

결정적으로는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고, 딱 맞는 사람도 없으며

나 역시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까.

그리고, 내 눈에 예뻐서.


내 불안과 미심쩍음, 불확실함은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그의 나이, 외모, 학교, 직업, 가족, 환경, 습관 같은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나라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만은 예외일 것이고,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아주 어리석었고 오만했던 것일 뿐.

나의 꿈은, 무의식은 그 회색고양이를 데려오지 말라고 명백히 경고했는데!


나의 불안과 의심을 불신하지 말 것.

나 자신의 엄격한 검열을 뚫고도 멈추어지지 않는 감각이라면 부정해서는 안된다.

깊이 파고들어 사실관계나 잘잘못을 확인하려 애쓰는 대신

때로는 내 감각이 주는 신호를 믿어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꿈은 여전히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어떤 날에는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다 새 두 마리를 폭풍우에 날려 보내고, 어떤 날에는 아주 아름다운 섬을 탐색하다 해변에서 반짝거리는 보석을 줍기도 한다.


꿈은 늘 내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무엇을 붙잡고 있고, 무엇을 갈망하며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양한 형태로 꺼내어 놓는다.


다만 대부분의 것들은 해석하지 못한 채 흘러가고,

어떤 것들은 아주 조금 눈치채며,

운이 좋으면 한참 후에야 그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만약 꿈이 보여주는 ‘지금’을 알아차린다면,

조금 더 고민 없이 결단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그걸 바라며 매일 꿈을 더듬는다.





다음이야기: 강아지의 꿈 (1) 그간 만난 강아지들


나는 종종 강아지의 꿈을 꾼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하얀 강아지의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배를 곯아 죽어가는 하얀 강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