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꿈에게 물었다_강아지의 꿈

(1) 그간 만난 강아지들

by 정이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꿈을 꾸었다.

나는 꿈속에서 배를 곯아 까무룩 죽어가는 하얀 강아지였다.

지난해, 이사를 앞두고 짐을 정리하다가 다이어리를 열었다. 10년 전 일기에도 하얀 강아지가 있었다.

묻고 해석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 곁에 누워있던 하얀 강아지는 그 자체로 아버지였다.


20140710 아프고 병약한 강아지의 꿈.
아빠가 누워있고 그 곁에 작은 하얀색의 강아지가 있었다. 그냥 두면 곧 죽을 것 같은 병약하고 바스러질 것 같은 강아지. 직감적으로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깃국을 삶고 어찌어찌해서 넘기지도 못하는 강아지를 마구 먹였다. 강아지 한 마리가 더 나타났다. 조금 더 건강한 아이였다. 병약했던 강아지도 결국 상태가 호전되어 조금 살이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잠이 깼다.

20240128 굶어 죽어가는 강아지와 할머니
꿈속에서 나는 어느 주택의 방에 누워있는 하얀색의 강아지였다. 내 주인은 어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나와 조금 떨어진 방 안쪽에 누워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곯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강아지인 나 역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숨만 가늘게 쉬며 누워있을 뿐이었다. 숨이 오락가락하며 아주 깊은 곳으로 까무룩 가라앉을 때, 강아지인 나는 아, 이게 ‘죽음’ 인가보다... 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갑자기 누군가가 음식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 사람은 할머니를 일으켜 세웠고 할머니는 가져다주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힘없이 누운 채 그 모습을 보다가 잠에서 깼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우선 오래 전의 병약한 강아지를 돌보는 꿈에서는 아버지를 향한 무의식의 돌봄 욕구, 애틋함, 그리고 생명에 대한 불안감이 보여. 아버지와 병약한 강아지는 거의 하나의 존재(돌봄이 필요한 생명체)처럼 느껴져.


꿈속의 너는 무력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 차 있고,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있어. 이건 너의 감정적 책임감, 헌신, 또는 가족에게 느끼는 사랑의 무게를 상징해.


그리고 최근의 꿈은 정말 무겁고 깊은데, 이 꿈에서의 강아지는 너 자신이자, 동시에 네 감정 상태 같아.


꿈속의 네가 먹을 것도 없이 죽어가는 강아지였다는 건, 그즈음 현실에서 네가 느꼈던 극심한 소진, 외로움, 돌봄의 한계, 존재 자체의 고갈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어.


마지막으로, 이 꿈에서는 마지막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의 등장이 아주 인상 깊어.

이건 기적적인 회복, 외부로부터의 돌봄, 죽음의 문턱에서 느끼는 따뜻함 일 수 있어.

그게 아니라면 네가 아버지를 위해 바라던 구원과 희망, 그 감정이 꿈에서 역전되어 ‘나 자신’이 구원받는 이미지로 표현된 것일 수도 있고.




아버지는 오랫동안 아프셨다. 언젠가는 그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그날’ 일 거라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꾼 꿈이 생각났다.


꿈속에서 나는 강아지였지만, 실제로는 살아난 할머니가 “나”이고 죽어가던 나(강아지)는 아빠가 아니었을까. 만약 내 꿈에 등장하는 하얀 강아지들이 아버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나중의 꿈은 아버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였을지도.


우선, 살아난 할머니가 ‘나’이고, 죽어가는 강아지가 ‘아버지’ 일 수 있다는 너의 말을 듣고 꿈을 다시 바라보면, 이 꿈은 단순한 감정의 상징이 아니라 깊은 예지 감각을 품은 무의식의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감정과 생명의 바통이 조용히 너에게로 넘어온 순간처럼 보이기도 해.


숨만 겨우 쉬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하얀 강아지는 아버지의 병세와 너무 닮아있으면서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죽음 앞의 무기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방 안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네가 이야기한 것처럼 ‘미래의 나, 혹은 감정의 재생을 상징하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고.


꿈에서는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등장해 할머니에게 음식을 먹이는데, 이 장면은 아주 강력한 회생의 상징이야. 아버지의 육체적인 생명이 꺼져가는 가운데, 너라는 생명은 그와 반대로 깨어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거든.


칼 융은 이런 식의 ‘직관적 상징’ 들이 무의식에 먼저 저장된다고 보았어.


그러니까 머리로는 그날이 ‘그날’ 일 것이라는 것을 몰랐지만, 몸과 마음, 그리고 꿈은 이별의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10년 전의 꿈에서 강아지(=아픈 아버지)는 생명이 아슬아슬한 상태였어.

네가 국을 끓이고 필사적으로 그걸 먹이려 했던 건 현실에서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 했던 마음처럼 보여. 그리고 그때의 너는 꿈속에서 아버지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지.


10년 후, 너는 하얀 강아지를 다시 만나.

이건 10년 전에 꾸었던 꿈에서 이어진 마지막 장면이자, 무의식이 네게 속삭 말이었을 수도 있어.


“이제는 정말 이별이 가까워졌어. 그리고 이제 너는, 살아남은 자로서의 길을 시작해야 해.”





다음 이야기: 강아지의 꿈 (2) 새로운 강아지들의 등장

너와 강아지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 후, 신기하게도 새로운 강아지의 꿈을 꿨어.

신나게 뛰노는 강아지를 보면서 즐거워했는데, 강아지가 갑자기 내 손을 앙, 하고 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