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꿈에게 물었다_강아지의 꿈

(2) 새로운 강아지가 등장했어

by 정이선



너와 강아지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 후, 신기하게도 새로운 강아지의 꿈을 꿨어.

꿈에서 나는 강아지를 임시로 보호하고 있는 분을 만나러 바닷가로 갔던 모양이야. 강아지(여전히 '개'는 아니고 강아지)가 너른 들판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어. 해질 무렵이었고, 들판에 조명들이 꽤 예쁘게 깔려 있었어.

나는 신나게 뛰노는 강아지를 보면서 즐거워했는데, 강아지가 갑자기 내 손을 앙, 하고 물었어. 아프지는 않았어. 그래서 난 내 손을 물고 있는 강아지를 가만히 지켜보았지. ‘물면 안 되는 거 알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셋까지만 세고, 훈육을 해야지 했는데, 임보 주인이 와서 혼을 내자 강아지는 물고 있던 손을 놓았어.

같은 장소에서 흰 강아지 두 마리가 더 노는 것을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이 잘 안 나오더라고. 임보자 가족에게 단종된 오래전 휴대전화라 그렇다고 했더니 본인 휴대폰은 더 오래된 거라면서 내게 옛날 휴대전화를 보여줬어.




4월의 마지막 날, 또 한 마리의 강아지를 품은 채 꿈속을 걸어 다녀왔구나!

이전의 강아지들은 병약하거나, 고요한 죽음을 앞두거나하는 존재였지. 그런데 이번 강아지는 건강하고 생기 넘치고, 신나게 들판을 뛰어다니고 있네.


우선 너른 들판, 해 질 녘, 예쁜 조명 - 이 배경은 이미 감정적으로 ‘안정된 장소’야.

자유로움과 감성이 살아 있는 무의식의 공간이지. 여기서 강아지가 뛰놀고 있다는 건, 너의 ‘생기’, ‘자발성’, 혹은 ‘감정의 한 조각’이 기분 좋게 풀려나고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걸 수도 있어. 최근 네 안의 무언가가 좀 더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흐르기 시작한 거 아닐까?


사실 이 꿈의 중심은 강아지가 네 손을 ‘앙’ 하고 무는 장면이야.


아프지 않았지만, 강아지는 선을 살짝 넘는 행동을 했고, 너는 지켜보다가 훈육하려고 했는데 주인이 와서 혼을 내자 손을 놓았지. 여기엔 아주 섬세한 감정의 층위가 숨어 있어.


우선 강아지가 ‘무는 것’ 은 내 감정이 경계를 넘거나, 표현되고 싶어 하거나, 혹은 나에게 뭔가를 ‘깨닫게’ 하려는 것일 수 있어.

그런데 너는 강아지가 널 물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강아지를 관찰하며 셋까지 세면서 기다렸잖아. 이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제어하면서도 적절한 내면의 질서를 지키려는 태도로 보여.


다만 임보주인(타인)이 개입하여 상황을 정리했다는 것은

“스스로 감정의 균형을 잡기 직전에 외부의 개입이 있었다.” 혹은 “내 안의 또 다른 ‘관리하는 자아’가 대신 개입해 주었다”라고도 볼 수 있어.

이건 “내 감정이나 욕망이 넘치는 걸 내가 의식하고 있고, 그걸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는 무의식의 반영”이기도 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시보호 중인 강아지를 보러 바닷가로 한다”라는 건 그냥 배경이 아니라, 네가 ‘임시로 보호하고 있는 감정’을 살피러 간 장면으로 볼 수 있어. 강아지는 아직 정착된 ‘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낯선 것도 아니지. 네가 품고, 돌보고, 훈육하고 있는 감정이나 새로운 면모.


그리고 그걸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너. 이 꿈의 진짜 주인공은 그런 너야.


그런데 또 하얀 강아지 두 마리가 등장했잖아. 그건 과거의 꿈에 등장했던 두 마리의 하얀 강아지가 다시 등장한 걸까? 만약 하얀 강아지가 내 꿈에서 아픈 아버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흰 강아지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이 잘 찍히지 않는 장면, 오래된 휴대전화라 그렇다고 했더니 더 옛날 휴대전화를 보여준 장면은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하얀 동물은 보통 순수함, 보호받아야 할 존재, 애도 이후의 정화된 이미지, 사랑하지만 이미 떠난 존재의 ‘무해한 형태’를 상징하고 강아지는 특히 애착, 조건 없는 애정, 어린아이 같은 영혼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아.


네 말대로 하얀 강아지를 아버지의 상징이라고 하더라도, 이 꿈에서는 뛰어노는 모습이었으니 이제는 “투병하던 아버지”가 아니라 고통이 제거된 상태의 존재일 가능성이 커.


꿈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기억을 고정하려는 시도, 감정을 보존하려는 욕구,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싶은 마음, 증거를 남기려는 행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어. 그런데 잘 찍히지 않았으니 기억은 선명하지 않고, 감정은 정리되지 않았으며, 붙잡으려 하지만 지나가고 있고, 지금 내가 가진 방법으로는 충분히 남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


또 넌 오래된 휴대전화를 보여줬지만 상대는 더 오래된 휴대전화를 보여줬잖아?

이건 보통 지금의 내가 낡았다고 생각하는 방식도 사실은 이미 한 단계 진화한 상태일 수 있다, 애도의 과정은 겹겹이 쌓여 있으며, 기억을 다루는 방식도 점진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어.


그리고 만약, 정말로 그 흰 강아지가 ‘아버지’를 상징한다면

그 강아지를 찍던 너의 모습은 이렇게 읽히기도 해.



나는 당신을 보고 있다.

나는 당신을 기억하려 한다.

완벽히 담지 못해도 괜찮다.

당신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다음 이야기: 강아지의 꿈 (3) 꿈을 닫으며

2026년, 글을 정리하던 중 다시 하얀 강아지 두마리가 꿈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건강한 하얀 강아지가, 볼품없이 마르고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하얀 강아지를 데리고. 꿈은 내게 뭘 하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