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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Oct 18. 2022

다정했던 나의 친구

놓치기엔 아쉬워서 그 인연을 이어간다는군요


먼저 다가와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그녀는 분명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맺게 되었는지 그저 신기한 생각들 뿐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현재의 이 감격스런 마음은 희미해져 언제 그런 생각을 가졌나 싶기도 할 테지만 절대 그럴 순 없었다. 새로운 인연을 그것도 행운과도 같은 인연을 만난다는 게 지금의 나이와 좁혀진 행동반경을 감안하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인연의 끈이 다 해어져 꼬인 실이 몇 가닥 남지 않을지라도 두 손으로 꽉 쥐고 놓지 않을 테다 다짐했다. 비록 그게 그녀에겐 득이 될지 안 될지 나조차 헷갈릴 지라도.






같이 있음 뭔지 모를 에너지가 흐르는 게 느껴진다. 동시에 그 기분 좋은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됨이 감지된다. 항상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방의 얘기에 귀 기울여 들어줌과 동시에 자신의 얘기도 거리낌 없이 술술 한다. 어찌 보면 흠이 될만한 것도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는 걸 보면 별 비밀은 없는 사람인 듯하다. 베일에 둘러 싸인 것 마냥 자신을 드러내길 꺼리는 사람들만 보다 이런 사람을 만나니 오히려 청량한 기분마저 든다.




그리 넉넉지는 않은 건지 절약정신이 몸에 밴 건지 가성비가 떨어진다 생각되는 곳엔 돈 쓰는 일을 썩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 역시 그런 곳에 돈을 쓰는 걸 못 마땅히 여긴다. 한 번쯤 내가 그녀를 위해 본인의 기준에서 살짝 벗어난 듯한 금액을 쓰는 일이 있음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 대신 그녀는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소꿉놀이하듯 소박한 파티를 열었다. 초대받는 나야 아무런 수고 없이 그런 자리에 낄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척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나보고 그렇게 하라고 하면 솔직히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손님이 집에 오는데 청소부터 요리까지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냥 돈을 좀 들여 밖에서 대접하는 게 내 입장에선 훨씬 수월하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에 항상 나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하게 만든다. 못하는 게 대체 뭘까 싶은 정도로 다재다능하다. 그녀에게 실제 그렇게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약간 으스대는 듯한 말투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장난스런 미소를 띠었다.

"자랑이 맞지만 음주가무 말고는 사실 못하는 게 거의 없어요. 그런데 특별히 두드러진 것도 없어 적성을 찾긴 참 힘들어요"



 

정말 그렇다.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 뭘 하나 하더라도 남다르다. 가끔 그녀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받곤 하는데 대수롭지 않은 것임에도 포장에서 이미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요리는 물론이고 손재주가 좋아 이것저것 잘 만들고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요긴한 것들이다. 이제껏 보아온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며 정 또한 많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자기 계발에 게으르지 않아 항상 공부 중이다. 아이들 교육에도 열성적이라 그런 엄마를 닮은 아이들도 모두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장점만 갖춘 그런 대단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겸손, 너그러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뿐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 축에는 끼지도 못한다. 얘기 중 은근히 과시할 것은 과시한다. 자랑질 좀 하겠다며 대놓고 할 때도 간혹 있다. 게다가 군데군데 허점 투성인 게 뻔히 눈에 보인다. 선천적인 투덜이마냥 매사 불만투성이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밉지 않은 게 오히려 부담 없는 친근한 모습 같아 더 살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가끔 아주 낯설게 그녀가 보일 때도 있다.






나 같은 사람들은 그냥 넘어갈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에 혼자 안타깝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잦다. 아마 내 눈엔 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섬세한 그녀에겐 감지되는 가 보다. 들어보면 수긍이 가긴 가는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물론 내 일이 아니니 와닿는 게 다를 수밖에. 게다가 나는 나와 직접 관련된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일이 신경 쓰고 살면 너무 피곤해지지 않을까 싶다. 동시에 나 또한 조심스러워진다. 무심코 별 의도 없이 한 말과 행동에 남다른 해석을 부여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그렇다. 그녀는 다른 누구보다 예민하다. 모든 부분에서 그런 건 결코 아니지만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유달리 촉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본인 생각에 무시나 공격을 받았다 생각되면 그걸 흘려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마음에 쌓아둔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 싶으면 어느 날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게 마음을 닫아 버린다. 처음엔 별 내색 없으니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나중에서야 뒤늦게 낌새를 눈치채고 까닭을 물으면 그들에 대한 불평을 한동안 내게 쏟아낸다. 때때로 그걸 듣고 있는 게 곤혹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되지 않는 사람들인데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조금 달리 해석하면 안 되나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그녀를 곁에 두면 사실 여러모로 편한 게 사실이다. 실보다 득이 훨씬 많은 사람이다. 부지런하고 호기심 많은 그녀를 만나면 항상 새로운 걸 보고 듣고 알게 된다. 정작 그녀 자신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터득했을 것들을 은근슬쩍 공짜로 배우게도 된다. 순박한 듯한 선량한 웃음을 짓고 뻔뻔하게 요것 저것 물어보면 그녀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쉽게 자신들의 결과물을 공유해준다.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일상들을 지켜보는 것도 나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된다. 스스로를 위해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따라 하려 또다시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녀가 돈이 아닌 품을 팔아 내게 선물해준 것들도 그 정성에서 남다름이 느껴진다. 누군가 날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훈훈해진다. 물론 나도 가만 받고만 있진 않는다. 그녀는 질색을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내 맘이 편할 수 있도록 돈으로 가끔 때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녀에 대해 무심해졌다.(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무심하다는 불평을 들었다. 그러나 왠지 듣기 싫지 않다. 오히려 날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멋진 단어라 생각되어 이후 종종 써먹고 있다) 사실 무심이라기보단 새로운 또 다른 것에 이끌려 한동안 그녀는 관심 밖이었다. 초반의 강한 호기심과 흥미는 어느새 무뎌진 지 오래다. 부끄럽지만 이미 그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다는 생각이 살짝 든다. 하지만 나도 약은 인간인지라 끈질길게 둘 사이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덕분에 내 주변에 그녀를 묶어 둘 수는 있었다. 그녀와는 정반대로 누군가를 깊게 사귀지 않고 여러 관계의 웅덩이에 살짝 발만 담가 두는 게 나의 인맥 관리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그 누구와도 갈등이 생기지 않을뿐더러 필요할 때면 다양한 이들로부터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많은 정성과 시간이 소요되는 깊은 샘은 피곤할 뿐이다. 그녀와의 관계도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태도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가끔 가시를 숨긴 듯한 말투를 내게 던지기도 하고 나를 향한 미소도 냉소적으로 비칠 때가 있다. 뭔가 서운함을 감추고 내게서 조금씩 거리를 두려는 게 감지되시작한다. 구체적으로 말을 않으니 왜 그런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건 스스로 인정한다. 마침 한동안 관심을 가지던 것에도 슬슬 흥미를 잃어가고 있던 참이다. 이제 발을 빼고 그곳과도 얄팍한 인연의 끈만 이어갈 생각이다.




다시 예전 같은 관계로 돌아가기 위해 살갑게 그녀에게 다가간다. 전화도 걸고 바쁘다는 그녀에게 만나자 조르기도 한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한 말로 그녀를 치켜세우기도 구슬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별 반응이 없다. 이미 내 속을 훤히 꿰고 있는 듯하다. 가까스로 잇고 있던 인연의 끈이 조금씩 잘려 나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변명처럼 내가 좀 무심한 편이라고 선수를 치자 가만 듣고 있던 그녀의 표정에서 이런 생각이 엿보인다.

'스스로를 무심하다고 말하면 그래 좀 있어 보여요? 지금 우리 사이에는 무심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요. 맞아요. 한때 무심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지점이 우리에게도 있긴 있었죠. 하지만 이미 그곳을 너무 많이 지나와 버렸어요'




그러나 이대로 놓치긴 너무 아쉬운 사람이다. 그래, 내가 너무 아쉬운 게 많아진다. 그럴 순 없다. 얼마 남지 않은 그 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악착같이 힘주어 다시 잡는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란 걸 잘 알기에 서운한 감정에 돌아섰을지라도 자꾸 주위를 서성이면 다시 반겨 줄 수도 있다. 그녀의 마음 역시 아직은 갈팡질팡이란 걸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잘 안다.

                                                 



왜냐하면 예민하고 여린, 겉으로만 씩씩한 하는 나의 다정했던 친구... 그녀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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