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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Sep 21. 2022

익명이 필요한 순간



가끔 나의 성급함과 촐싹거림으로 인해 낭패를 보는 일이 다. 한 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 지독한 내 근시안에 어디 딱 맞는 안경은 없으려나. 이 나이 되도록 그런 능력 하나 구비하지 못한 나 자신을 못났다 자책하긴엔 같은 편으로 좀 그렇다. 얼마 전까진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음 그래도 좀 나았다. 속으로 다른 꿍꿍이가 있든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든 말로 뱉지 않은 이상 내 속을 사람들이 알 턱이 없으니. 물론 눈치 빠른 사람은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내 주변엔 그런 민첩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요즘은 입을 닫는 것만으론 턱도 없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항상 조심하는 게 있다. 글에서까지 가식이나 위선을 떨어 스스로를 포장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진 않았다. 물론 화자가 나 자신이다 보니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쓰게 된다. 틀릴 수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도 있고 기준이 될만한 것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런들... 지극히 평범하여 어딜 내놔도 존재감이라곤 1도 없을 내 글에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가끔 글을 쓰면서 뭔가에 취한 듯 천 쪼가리 하나 가리지 않고 너무나 적나라하게 내 속내를 드러낼 때도 있다. 치명적인 익명의 달콤함에 빠져.



글을 쓰면 쓸수록 더 진솔해진다. 더 과감하게 내 속을 까뒤집는다. 때때로 후련함마저 느껴진다.

'이런 걸 누구에게 다 말해'

혼자 입가에 응큼한 흑빛 미소를 띠우며 속 시원하게 글을 써 내려간다. 그렇다고 내가 남을 해코지하는 그런 글을 쓰는 건 결코 아니다. 그저 입 밖으로 내기 힘든 진솔한 내 속내를  드러낼 뿐이지. 지킬 속의 하이드 같은 추악한 면이 나타날 때도 있고 하이드 속의 지킬 같은 연약함이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점점 태클이 걸린다. 브런치에 합격한 후 몇몇 주변인에게 입방정을 떨어 구독 신청을 강요(?)한 게 엄청난 쓰나미가 되어 나를 제약하고 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솔직한 얘기들을 쓸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그저 주변의 소소한 일들만 다룰 작정이었는데 쓰다 보니 나를 보듬어 주는 글을 쓰게 된다. 가끔 화나고 억울하고 슬픈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배설하듯 글로 쏟아 낼 때가 있다. 그러나 글이 완성될 때쯤 어느 정도 치유가 된 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글쓰기의 가장 멋진 매력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 속내를, 결코 함부로 드러내 싶지 않은 내 진짜 마음을 남들이 쉽게 훔쳐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물론 강요에 의해 구독자가 된 지인들 중 모두 내 글을 꼼꼼히 보는 것도 아니며 봐도 무방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참 애매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게 나를 너무나 빤히 볼 수 있게 된 사람들도 있다. 여러 사람과 대화 중 불쑥 글 속의 얘기를 꺼내거나 내 본심을 알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비출 때면 정말 나의 그 촐싹거린 입을 쥐어박고 싶어 진다.



다시 계정을 만들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진짜 익명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해진다. 허나 이런 플랫폼 이용에 까막눈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글을 읽어봐도 머릿속에 제대로 입력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동안 부족하나마 열심히는 썼던 소중한 내 새끼 같은 글들은 또 어떻게 되는 건지. 무식한 부모 만나 영영 이산가족이 되지는 않을는지. 메타버스니 뭐니 하며 웹상에 온갖 편리한 것들을 넘쳐흐르는 지금, 그런들... 무얼 하나 제대로 이용치 못하고 눈만 껌뻑이는 처량한 신세인데.



결국 이 시대에 맞지 않은 까막눈이 택한 방법은 제일 신경이 쓰이는 사람에게 구독 신청을 취소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것이다. 상대 입장에선 다소 뜬금없고 서운할 수도 있다. 약속 시간을 잡고 약간 들떠 있는 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건 정말 정말 미안하고 나 역시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내 안의 숨기고 싶은 지킬과 하이드를 찾아내어 누구보다 날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분명 나에겐 과분한 좋은 사람이고 그만큼 날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만큼만 날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내 부탁을 거절하진 않을게다. 섭섭한 그 사람 속내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순 없지만.



이 모든 게 방정맞은 내 입 때문이다. 처음엔 브런치에  합격하고 나서 얼마나 기쁘던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생각을 못했다. 내 입을 쥐어박아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면 정말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쓰기를 멈출 생각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더더욱 나에게 집중된 글을 쓰고 싶다. 쓰면 쓸수록 점점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이 세상에서 글쓰기만큼 날 위로해 주는 게 그리 많지 않음을.




그녀를 만나 솔직한 내 마음을 전달했다. 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무슨 부탁을 하려는 건지 알겠다며 이해한다 했다.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자신의 일기장을 누군가 들여다보는 느낌일 거라 공감해 주었다. 약간의 중독처럼 다음 이야기를, 부족한 나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했다. 그러면서 오해는 하지 말라며 글을 읽으면서 항상 날 대견하게 여겨왔다는 고마운 말을 덧붙여 주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와 브런치를 확인해 보니 구독자 수가 한 명 줄어든  눈에 띈다. 순간 지킬의 허전함과 하이드의 편안함이 동시에 나를 감싸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점점 편안함이 더 크게 와닿는 건 어쩜 정말 내가 지킬의 가면을 쓴 하이드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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