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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Sep 19. 2022

오늘도 지울 곳을 찾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자주 갖게 되었다. 나를 둘러싼 작은 세상의 이야기밖에 쓸 재주가 없으니 어쩜 필연적인 일 일수밖에. 글을 쓰면서 장점은 뭔지 단점은 뭔지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도대체 왜 그렇게 밖에 못했을까 자책도 하며 때때로 따뜻한 위로도 건넨다. 예전엔 혼자만 삐딱하고 모난 것 같아 많이 서글폈지만 반백년을 살아 보고 내린 결론은 꽤나 긍정적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다양한 모습을 내 안에 품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엔 마냥 좋을 것 같은 사람은 결단코 없었다. 누구나 좋은 점과 다소 부족한 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단지 스스로를 치장할 포장지의 차이가 좀 있을 뿐이지. 이젠 그 포장지 따위에 그다지 혹하지도 않는다. 나 역시 다른 사람 관점에서 부러워할 멋진 장점도 많으니 그리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을 잘 파악하면 살아가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다. 문제점을 잘 알고는 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여러 이유들로 외면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된다는 그 뻔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나 실행에 옮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늘보다 더 나을 나 자신을 위해 변화가 필요한 부분들은 최대한 바꿔 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시도하는 모습 또한 나의 장점이라 생각하면서.






브런치에 첫 발을 들인 이후 에세이란 장르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저 내 맘대로 지껄이는 수준이란 걸 잘 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밑거름이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부끄럽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필요한 독서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것도 요즘은 안구건조증과 비문증 때문에 눈 건강을 핑계로 아주 뜸하다. 책도 편식해서 보는 편이다. 아이러니하게 에세이는 선호하지도 않는다. 브런치의 다른 작가님 글들을 제외하고 나면 내가 읽은 수필이라곤 오직 교과서 속의 작품들뿐이다. 글쓰기 수업은 달리 들은 적도 없다. 뭐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크다. 물론 도움을 받았던 것도 있다. '글밥' 작가님의 브런치 북 '내 글 내가 고치는 법'을 읽으며 부족한 면을 많이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수필의 정의처럼 붓 가는 대로 내 맘이 내키는 대로만 글을 쓴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큰 문제점이 두드러진다.




우선 호흡이 너무 길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모두 주저리주저리다. 내 글을 잘 읽지도 않는 딸아이가 자주 하는 소리가 있다. 엄마 글은 너무 길어 끝까지 읽기 힘들다고. 사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선 이미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적어 놓은 뒤 여러 번 읽어가며 줄일 곳을 찾는다. 그러나 잘라 낼 만한 곳을 도저히 못 찾을 때가 종종 있다. 변명하자면 쉽게 읽어라고 풀어쓴 것뿐이고 사건의 기승전결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자세히 설명했을 뿐이다. 나름 모두 필요한 부분들인데 가위질을 해야 된다니...




그러나 나 역시 너무 장황한 글을 접하게 되면 얼마 안 읽었음에도 벌써 지루함을 느낀다. 결국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결론까지 그냥 죽죽 넘기거나 심지어 그대로 덮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두들 자기 이야기에나 관심이 있지 유명인도 아닌, 본인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타인의 것에는 그다지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진 않는다. 내가 무슨 친절한 사람이라고 그간 필요치 않는 호의를 베풀었는지 한심하기도 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쓸데없는 곁가지들을 모두 쳐내고자 칼을 빼들었지만 웬걸. 수정 과정에서 보충 설명이 추가되어 오히려 더 길어지는 그런 기막힌 일이 때때로 벌어지기도 한다.




브런치의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보면 내 기준으로 상당히 짧은 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오히려 긴 분량의 글보다 더 자주 접하게 된다. 혼자 나름 분석해본다. 부담 없이 간단히 읽을 수 있는 글들을 사람들이 즐겨 찾기 때문일까? 이게 요즘 흐름인가? 어떤 작품은 시의 형태도 아닌데 겨우 두 세 단락으로 마무리되는 것들도 흔하다. 그런 글을 접할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짧은 글로 하고 싶은 말을 다 나타낼 수 있다니. 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하는 나 같은 이는 단 몇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글을 몇 단락으로 질질 풀어쓰게 된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최대한 짧고 간결한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줄여 본다.




두 번째로 큰 문제는 대부분의 글들이 1인칭 관찰자나 주인공 시점이기에 지나친 자기감정의 늪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사실 본인의 이야기만큼 스스로에게 몰입도가 큰 건 없다. 읽는 사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온갖 쓸데없는 형용사들을 다 동원시킨다. 그러다 보니 또다시 글이 늘어지고 지루해진다. 본인만 읽으면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점점 악순환의 연속이다.




딸아이가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해준다. 지우려 해도 문맥상 도저히 지울 곳을 찾지 못하겠다는 내 말에 그럼 1부, 2부로 나눠서 글을 한번 발행해보란다. 누가 내가 쓴 글 따위를 2부까지 찾아보겠냐는 말에 그래도 길어서 읽을 엄두도 나지 않는 글보단 낫지 않을까 얘기한다. 하긴 요즘 영화 시리즈도 굳이 전작을 안 봐도 아무런 무리 없게끔 나오지 않나. 조금만 신경 쓰면 나도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단편 소설을 쓰는 듯한 감성으로 글을 써내려 갈 때가 있다. 아이들 때문에 ebsi 국어 청강생 3,4년 차이니 주워들은 게 참 많다. 시간의 역순행 방식을 사용하여 과거 속의 인물도 불러보고 의식의 흐름 기법도 써보고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흉내를 내본다. 그럴 땐 몰입도가 최고조에 달해 글이 술술 써진다. 하지만 동시에 또 주저리주저리다. 그럴 때 가위로 최대한 편집해서 글을 나눠 발행하는 시도를 한번 꼭 해 볼 생각이다.






지나고 보니 이제까지 쓴 글들은 나 자신을 위한 글들이 대부분인 듯하다. 글이 늘어지든 지루하든 상관없이 그저 혼자만의 감정에 빠져 내 마음속 얘기들을 다 쏟아냈으니. 남에게 말하기 좀 꺼려지는 거나 딱히 그러고 싶지 않은 것들도 어떠한 과장이나 가식 없이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한편으론 내 속에 하고 싶은 말들이 그리 많았나 좀 안쓰럽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뭔가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항상 받지만 동시에 생각도 못한 부작용도 있다. 속을 너무 다 드러내어 더 이상 내 글을 읽지 말아졌으면 하는 지인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를 위한 글을 썼다면 이젠 다른 사람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도 써보고 싶다. 비록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평범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문장력 또한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로 읽지도 않았음에도 긴 분량 덕에 지루함을 선불로 주는 일은 피하려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떤 눈에 띄는 변화가 내게 일어나진 않겠지만 지금 이 시간들을 밑거름으로 삼으면 혹시 모른다. 언젠가, 언젠가 먼 훗날에 나도 멋진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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