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좀 다르게 와닿는 해들이 있다. 결혼, 출산 같은 내 인생의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던 해 그리고 가까이 큰 애가 고 3이던 3년 전이 그러했다. 아마 작은 애가 수능을 치르는 내후년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리고... 올해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사건이라 불릴만한 일들은 올해 일어나진 않았다. 그나마 작은 애가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것 말고는 눈에 띌만한 일들은 찾아보기도 힘들다. 자취하는 큰 애는 대학 생활을 즐기며 알아서 잘 살고 있고 작은 애도 열심히 공부하며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다. 남편 역시 꼬박꼬박 주는 월급 받아가며 별 일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 가족들 모두 건강히 각자의 영역을 잘 꾸려가는 지금 그러나 내겐 이 해가 사실 좀 버겁게 느껴지고 있다. 뭔가 이제껏 느끼지 못한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듯하다.
왜 그런지 가장 큰 원인을 들라하면 단연코 내 나이와 그에 비례하여 많아진 이런저런 아쉬움 때문이다. 작년 아니 올 초까지만 해도 50대가 너무 좋았다. 큰 애의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나도 50대에 접어들었다. 학원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같이 공부하는 방식을 택했기에 아이의 입시 실패는 모두 나의 잘못인 셈이었다. 결국 합격으로 그동안 말로 다 할 수 없던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묵직하게 나를 누르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 홀가분해진 시간들을 맘껏 즐겼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옆으로 눈 돌리지 않고 묵묵히 앞만 바라보며 참고 견뎌온 40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든 시간적 여유이든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며 그동안 열심히 산 내 모습을 주위에서 하나씩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태와는 다른 새롭고 멋진 인생이 펼쳐질 줄만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게 나만의 착각임을 깨닫기엔 그리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일단 외모에서 서서히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정수리가 갈수록 휑해지고 새치 염색을 하면 한 달을 못 채우고 다시 하게 된다. 크게 웃으면 팔자 주름과 눈주름이 더 뚜렷해져 사진 찍을 때 더 이상 이빨을 보이며 활짝 웃을 수 없다. 자꾸 쳐져가는 눈매가 맘에 들지 않아 두 눈을 치켜뜨고 다녔더니 보너스로 어느새 선명해진 이마 주름이 따라왔다. 비슷한 나이대의 연예인들이 안검하수란 핑계로 어색한 쌍꺼풀 수술을 왜 하는지 그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허벅지와 팔뚝의 근육이 쳐지기 시작했고 피부도 급격히 탄력을 잃어감이 너무나 확연히 보인다. 이 모두가 아직 다소 어색하긴 하나 그저 눈에 보이는 외양상의 변화일 뿐이다.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나에겐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내가 여느 해랑 사뭇 다르다고 느끼는 건 거죽이 아니라 진짜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아마 그전부터 증상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겠지만 때론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하고 때론 이 정도에 엄살 부릴 내가 아니라며 혼자 잘난 척을 했을 게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지나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다녀온 병원만 해도 안과, 소화기 내과, 내분비 내과, 산부인과, 한의원, 정형외과, 흉부외과, 치과 등 정말 그 종류만 해도 다양하다. 가족들 중 내 병원비 지출이 제일 많아졌다. 게다가 완치가 아니라 계속 관리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제껏 감기조차 제대로 걸린 적이 없었고 심지어 나를 제외한 식구 3명이 모두 독감에 걸려도 혼자 멀쩡했었다. 항상 내가 가족들 건강을 책임지고 그들을 돌봐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운동을 게을리하거나 비만 체질도 아니다. 비가 오지 않는 한 새벽마다 집 가까이 있는 산을 오른다. 부지런함이 몸에 밴 사람이라 자부할 수 있다. 결혼 전 몸무게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제껏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산 대가로 주어진 훈장이기에 씁쓸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고장 날 시간도 되긴 되었지만 아마 지난 힘든 시간들을 깡 하나로 버틴 결과일 게다. 하지만 폐기처분 하기엔 아직 고쳐 쓸만하니 부지런히 병원 다니고 조심해서 다루는 수밖에. 몸이 예전 같지 않으면서 기분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럴 땐 싱그러운 오렌지나 연두빛깔의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이 주위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불과 얼마 전까진 내가 남들에게 그런 존재였지만 이젠 그 빛이 부쩍 바래졌다. 나 역시 누군가로 인해 다시 선명히 그 빛에 물들고 싶다.
이런 친구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누구나 이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으니 별 대수롭게 생각지 말고 불편하면 병원 다니며 즐겁게 살자 서로를 응원해 줄 수 있는 친구, 좋은 거 맛있는 것 재밌는 일이 있음 매번 함께 하자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서로가 우울할 땐 그냥 같이 걸어주고 커피 한잔 마시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친구, 가끔 속닥속닥 남들 뒷담화도 부끄럼 없이 맘껏 할 수 있고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그저 편한 그런 친구가 내게 있었음 좋겠다. 많이도 말고 한 명만 딱 한 명만 있었음 좋겠단 생각이 요즘 절실하게 든다.
점점 좁혀지는 삶의 반경 탓에 새로이 누군가를 만날 기회 역시 줄어든다는 것이 건강 못지않게 나이가 내게 주는 가장 큰 아쉬움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직장을 관두고 그저 가족들만 바라보고 달려온 나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기존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관계란 게 나로 인해서든 상대에 의해서든 중간에 접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새로운 사람들로 채우고 싶지만 그것 또한 나이가 주는 여러 장벽에 마음 같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사람들이 자꾸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꼬여버린 인연을 억지로 이어갈 필요는 없다는 게 관대함이 부족한 나의 생각이다. 쓸데없는 인연에 발목 잡혀 많은 것들을 낭비하게 될 바엔 차라리 선택과 집중에 에너지를 쏟는 게 스스로를 위해 낫다고 믿는다. 문제는 선택이 잘못될 수도 집중이 날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거다. 올 한 해 그동안의 잘못된 선택과 집중으로 많은 것을 혼자 삭여야 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관계였기에 미련을 보였고 상대는 그걸 눈치챘다. 끌려다니던 그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도 한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보다 확실한 마침표를 찍은 지금 드디어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고 있다.
솔직히 좀 다를 줄 알았지만 나이가 많아지니 나 역시 아쉬워지는 것들이 급격히 많아지고 있다. 얼마 전까진 그로 인해 우울이란 마음의 감기 아니 독감에 걸려 몇 달을 끙끙댔다. 다행히 지금은 회복이 많이 되어 다시 예전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누군가 나보고 x축과 y축에 각각 나이와 아쉬움을 두고 그래프를 그려보라면 조금의 지체 없이 정비례의 그래프를 그릴 것이다. 아마 대부분 그럴 거라 혼자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분명 확실한 차이가 있다. 바로 그 그래프의 기울기이다. 지난날 자신의 흔적에 따라 어떤 이는 완만한 반면 어떤 이는 거의 y축에 평행할 만큼 기울기가 큰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 누구의 남은 삶이 더 행복할지 그리고 내가 바라는 그래프는 과연 어떤 것인지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다행히 요즘 기울기가 다소 작아진 나의 그래프를 가만 들여다보며 앞으로 건강과 관계에 더욱 신경 쓰자 혼자 다독여 본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완만해진 그래프를 그릴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의 소리가 내 안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