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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27. 2022

남편의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돈다


11월 말이 무색한 따뜻하고 화창한 주말 아침이다. 지난밤 야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의 손엔 햄버거 봉지가 들려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싸이 버거이다. 자기돈으로 그런 걸 살 사람은 아닐 테니 분명 야식비로 산 햄버거를 딸아이에게 줄려고 그대로 들고 온 것일 게다. 가끔 그렇게 남편은 햄버거를 들고 와선 냉장고에 넣으며 아이에게 줘라고 내게 말한다. 영양학적으로 그리 좋은 것이 아니기에 일부러 사주진 않지만 아이가 먹을 햄버거 돈까지 아껴야 하는 그런 형편은 아니다. 게다가 요즘 학교에서 상품으로 햄버거 쿠폰을 한 번씩 받아오기도 하고 친구와 놀러 가면 사 먹는 게 파스타나 햄버거이기에 아이 역시 햄버거에 목말라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맛있게 먹을 모습을 떠올리며 가져왔을 게다. 그게 무뚝뚝한 아빠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이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다.



지난밤 못 잔 잠을 보충하러 들어가는 남편이 갑자기 나보고 어제 병원은 다녀왔냐고 묻는다. 요즘 팔꿈치 때문에 고생 중인 내가 조금 안쓰러웠나 보다. 증상이 나타나고 조금의 지체 없이 바로 병원 치료를 시작했지만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는 게 사람 맘을 싱숭생숭하게 만들고 있는 터이다. 부기는 좀 빠졌냐 물어보기도 하고 평소 같지 않은 관심을 보이는 게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다. 그러더니 생뚱맞게 지난밤 근무 중 읽었다며 내 브런치 글 얘기를 꺼낸다.

"무슨 그런 글을 올리고..."

도대체 어떤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남편은 부지런히 내 글에 하트를 눌러준다. 만약 남편이나 딸아이까지 눌러주지 않는다면 너무나 부족한 라이킷 개수에 아마 글 쓰는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라이킷만 눌러줄 뿐 다행히 둘 다 고맙게도 글은 자세히 보진 않는다. 17살 딸아이가 읽기엔 공감 자체가 안될 테고 남편은 원래 글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껏 쌓인 남편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수시로 구구절절 글에 녹여 놨으니 안 읽어주는 게 오히려 감사하다. 하지만 아무런 강요가 없음에도 매번 알림이 울릴 때마다 하트를 눌러준다는 건 그것 역시 그가 할 수 있는 나에 대한 몇 안 되는 마음의 표현이란 걸 잘 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분명 좋은 소리는 아닐 테고 무슨 핀잔을 주려고 그러는지 살짝 긴장도 된다. 솔직히 남편에게까지 글에 대한 평가를 바라진 않는다. 물론 최대한 고민 고민해서 글을 쓰고 다듬고 있지만 어차피 난 너무나 평범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중년의 아줌마가 아닌가. 내 주제에 무슨 글을 써서 남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거나 어떤 가르침이나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혹 공감이라면 또 모르지. 아무 생각 없이 넋두리처럼 써 내려가며 스스로를 토닥거릴 뿐이다. 때론 지난날의 글을 다시 꺼내 읽고 혼자 공감하며 애썼다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러다 누군가 하트를 눌러주면 동기부여가 되어 살짝 업된 상태로 더 열심히 쓸려고 분발하고. 그게 전부이다. 글이라곤 전혀 관심 없는 남편에게서까지 잔소리를 들어가며 써야 될 그런 작품은 아니다.



남편은 옅은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수상한 말문을 열더니 이내 등을 돌린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어질 뒷말을 기다리고 있는 내 시선이 사뭇 부담스럽다는 듯이.

"무슨 다 죽어가는 듯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어젯밤 그 글을 읽고 O OO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린 서로의 이름을 지칭할 땐 성까지 붙여 부르곤 한다)

이게 또 무슨 소린지. 앞 전 글에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개인적인 아쉬움에 대해 썼다. 솔직한 요즘의 내 마음을 나름 담담히 써 내려갔다고 생각했지만 평소보다 부족한 하트수가 말해주듯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속으로 또다시 넋두리 같은 글을 썼나 보다 하고 자책하던 중이다. 남편에게서까지 그 글에 대해 핀잔을 듣는다는 건 불난 집에 부채질당하는 꼴이 된다. 심장박동수가 서서히 올라가려는 순간, 이내 남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온다.



"내가 더 잘해줘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다. 이제껏 23년을 같이 살면서 전혀 들어보질 못한 소리가 지금 내 귀에 들려오고 있다. 그의 말에 뭐라 답해야 할지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눈물이 핑 도는 게 안구건조증으로 뿌여진 눈앞이 잠시 맑아진다.

"뭐 그보다 더 불쌍한 글도 많았는데 무슨..."

멋쩍은 듯한 말투로 급히 대화를 마무리한다.



내 글을 읽고 누군가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다는 게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남편이란 사실이 잠시 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갱년기에 들어선 늙어가는 아내의 속내를 훔쳐보고 생긴 측은지심 때문 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무뚝뚝한, 감정의 표현이라곤 거의 없는 남편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는 게 솔직히 라이킷을 몇 개 받는 것보다 더 가까이 내 마음에 와닿고 있다. 내 글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힘이 있진 않은 지 살짝 용기도 가지게 되고.



말도 별로 없으면서 입만 열었다면 주로 빈 말뿐이던 남편이 정말 생각이 달라졌는지 그건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나름 용기 내어 내게 건넨 그 한마디는 올해 들은 말 중 단연 최고였다. 게다가 브런치에 계속 글을 써야 하는 명분도 가지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남편을 다룰 때 필요한 큰 무기가 생긴 셈이다. 어제오늘 남편에게 뭔가 부탁할 때마다 항상 시작은 이렇게 하고 있다.

"나한테 더 잘해준다며. 그러니깐..."

남편은 그저 웃으며 자질구레한 내 부탁을 불평 없이 들어주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나면 더 잘해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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