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주 흥미로운 과학 관련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키우는 개를 향해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개는 단순히 그 방향을 보는 게 아니라 왜 그쪽을 가리키는지 주인의 의도부터 분석한다 했다. 이쯤 되면 거의 사람가 맞먹는 아니 어쩜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보다 더 센스가 있지 않나 싶다. 눈치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상대방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전혀 생각지 못하는 이들이다. 결국 무안하게 직접적으로 말을 해야 겨우 알아차리지만 이미 서로의 얼굴은 붉혀진 상태다.
가끔 알게 모르게 속에 담긴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눈치껏 좀 알아줬음 하는 맘에 일부러 흘릴 때도 있지만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다. 둔한 사람은 아무리 보고 들어도 심지어 숟가락으로 떠먹여 줘도 그 뉘앙스를 잘 캐치하지 못한다. 우리 남편처럼. 오로지 정확한 말로 표현된 것에만 반응한다. 반면 나처럼 예민한 이에겐 아주 작은 단서임에도 유달리 그게 잘 포착된다. 가끔 신내림을 받았나 싶을 정도다.
대체로 내 신통력은 적중하는 편이다. 같이 영어 수업을 듣던 일행 중 한 명이 명퇴를 했다는데 전직이 무언지 누군가 물어봐도 굳이 숨기었다. 가끔 무리 지어 차도 한 잔 마시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학부모 대하듯 격식을 갖춰 하는 말투에서 대충 짚히는 게 있었다. 게다가 언젠가 수능 국어에서 나올 법한 용어를 내가 썼을 때 유일하게 반응을 보이던 사람인지라 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나 싶었다. 반농담 삼아 혹시 국어 선생님 아니었나 물어보니 화들짝 놀라며 극구 부인 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꽤 가까워진 후에 하는 말이 사실 자신은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다며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신기해했다. 알고 보면 별 대단한 건 아니다. 홈즈처럼 날카로운 추리력이 굳이 없더라도 누구나 조금의 관찰력만 있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것 들이다. 가끔은 숨기고 싶은 속내를 내게 들켜 발뺌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럴 땐 알고도 그냥 지나칠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쿨하게 그냥 넘어가는 건 아니고 소심한 성격답게 속에 꾹꾹 담아둔다. 그러다 제 때 비우지 못해 안 그래도 좁은 마음의 방이 꽉 차게 되면 부끄럽지만 그땐 폭발한다.
여러모로 장점도 많지만 예민하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단점을 모두 가진 탓에 내 삶은 사실 좀 피곤하다. 부동산 같이 돈이 되는 곳에서 그 재주가 발휘되면 얼마나 좋으련만 엉뚱한 영역에서 빛을 발해 괜한 맘고생을 할 때가 많다. 몰라도 되는 것까지 알게 되고 안 봐도 되는 것까지 보게 되니 쓸데없는 마음씀이 많다. 게다가 대체로 둔한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사는지라 혼자 속 터지는 일들 천지다. 자신의 귀에 명확한 의사가 담긴 문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상, 눈에 사진을 찍은 듯 확실한 결과로 보이지 않는 이상 그들은 주위에 널브러진 뻔한 단서들에 애초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눈치 없이 마냥 맘 편하게 천하태평 같은 소리나 하는 걸 보면 참 얄밉기도 하나 한편으론 세상 부럽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그대로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대로만 해석하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간혹 헛다리를 짚을 때가 있다. 상대가 정말 별 의도 없이 한 행동과 말을 확대해석해 괜한 속앓이를 한다. 대게는 그 의도가 안개에 싸인 듯 불분명해 혼자 다양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간다. 또는 앞 뒤 문맥과 전혀 상관없이 상대방이 뜬금없는 던진 한마디에 아무런 대비책 없이 듣고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럽게 앞의 내용과 연관 짓다 보면 다소 생뚱맞은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저건 또 무슨 의미인지 경우의 수를 둬가며 혼자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크고 작은 오해를 줄이기 위해선 정확하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누구나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로만 비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심지어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다소 말하기 껄끄러운 건 피하고 싶으니 애써 둘러 말하게 된다. 작년이었다. 이유야 좀 다르지만 잘못된 의미 전달로 뜻하지 않은 결말을 맞이한 적이 있다. 내 말을 전혀 다른 의도로 받아들인 상대 덕에 곤욕치고는 상당히 정겨운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지난 늦가을 남편과의 여행 중 한 재래시장을 들렸을 때였다. 시장 구경도 할 겸 마침 점심시간이라 끼니도 해결할 요량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곳곳에 즐비한 순대 국밥과 손만두 간판으로 보아 아마 이곳의 대표 메뉴는 이 두 가지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 부부는 쌀쌀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뜨끈한 만둣국을 점심으로 정하고 테이블이 2개 정도인 한 작은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는 두 노인네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터를 닦아 온 듯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가게 안쪽에서 조용히 만두를 빚고 할머니는 홀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마침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커다란 앞치마를 두르고 두 손 가득 밀가루를 묻힌 할아버지가 직접 주문을 받으러 나왔다. 느릿느릿 점잖은 충청도 말씨의 할아버지와 빠르고 톤이 다소 높은 경상도 억양으로 주문하는 나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짧은 대화야 가능하겠지만 긴 호흡의 대화는 어쩌면 할아버지가 잘 알아듣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만둣국을 주문하자 할머니의 행방을 열심히 쫓던 할아버지는 우선 음식을 조리할 냄비를 싱크대 안에서 찾아내어 천천히 씻기 시작했다. 이곳은 주로 만두를 포장해 가지 손님들이 가게 안까지 들어와서 먹지는 않는 듯했다.
남편이 내게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찐만두도 하나 시키는 게 어떨까 물어본다. 가격도 저렴한 곳이라 그리 해도 되지만 둘 다 먹는 양이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외식을 잘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음식 양 때문이다. 대체로 바깥 음식들은 평소에 내가 먹는 양보다 훨씬 많다. 집에서야 원하는 만큼만 먹으면 되지만 나와서 먹다 보면 돈 생각에 아까워 억지로 꾸역꾸역 다 먹게 된다. 그러니 외식을 한 날이면 항상 속이 불편하다. 만약 만둣국 양이 많으면 찐만두까지 분명 다 먹지 못할 텐데 손님도 딱 우리 부부뿐이라 남기면 어째 좀 실례일 것 같았다. 일단 만둣국 양을 좀 알아본 후 추가로 시키는 게 나을 듯했다.
"사장님, 만둣국 속에 만두가 대충 몇 개쯤 들어가나요?"
그러자 대뜸 점잖게 이렇게 반문한다.
"왜요? 많이 드시게요?"
순간 내 의도를 그렇게 받아들인 사장님의 말에 좀 당황했다. 노인네 두 분이서 속닥하게 꾸려 가는 가게에 손님으로 와서는 팔아주면 더 팔아줘야지 염치없이 공짜로 덤을 바라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그런다며 구구절절 얘기하기 좀 그래서 그냥 웃으며 '네'라고 대답한 게 화근이었다.
이곳이 만두로 유명하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약간 부풀린 내 말이 할아버지를 만족시킨 듯했다. 사람이 좀 그리웠는지 옆에 계속 머물며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우리가 먼 곳에서 왔다는 걸 알고는 더 반겨준다. 자리를 비운 할머니가 가게로 돌아오자 많이 시장한 손님들이니 특별히 만두를 많이 넣어 끓이라며 신신당부까지 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바로 내 옆에서 끓이는 만둣국이 어째 좀 불안하다.
할아버지가 씻어둔 냄비에 그냥 수돗물을 받아서는 거기다 양념통에 담긴 이름 모를 가루를 한 스푼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하필 좁은 가게라 모든 게 내 눈에 다 보인다. 내가 기대한 만둣국은 할머니의 나이만큼 오래되고 깊은 손맛이 담긴 것인데. 잠시 후 우리 앞에 놓인 그릇엔 정말 만두가 넘치게 담겨 있다. 빨리 만두나 빚으라는 할머니의 잔소리에 겨우 자리를 뜬 할아버지는 자신의 말대로 넉넉하게 만두를 넣었는지 확인할 요량으로 다시 내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가게 안에서 식사하는 손님이 반가운지 계속 옆에서 맛은 어떤지 양은 부족하지 않은지 물어본다. 무뚝뚝한 남편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할아버지 상대는 오롯이 내 몫이다. 다정하게 챙겨주는 할아버지가고마워 연신 리액션을 해가며 묻는 말에 대답하고 동시에 그 많은 양을 처리하는데 소화가 제대로 될 리도 없다. 무엇보다 죄송하지만 전혀 입에 맞지가 않다. 몰래몰래 남편의 그릇에 만두를 옮기지만 그래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편도 버거워하는 눈치다. 절대, 절대 조금이라도 남기면 안 되기에 시간을 좀 들여 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러고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며 머리 숙여 인사한 뒤 가게를 나왔다.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온 여행객이라고 안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양까지 넉넉히 주는 두 노인네의 마음이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참 버거운 점심이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앞뒤 설명 없이 만두개수를 물어본 내 질문에 인심 좋은 사장님은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건 의도를 명확히 알리지 않은 내 잘못이니. 입장을 바꿔 만약 누가 내게 그리 물으면 난 과연 어떻게 했을까? 물론 눈치가 빠른 내 눈엔 손님이 그리 묻는 이유가 대충 짐작은 될 터이다. 주머니 사정이 다소 빠듯해 보이는 손님 같으면 은근슬쩍 만두를 더 넣어 끓였을 테고 그렇지 않으면 장사 속을 채우지 않았을까 싶다.
"손님, 혹시 양이 부족할 것 같으면 곱빼기로 주문하시겠어요? 아님 찐만두도 가격이 저렴하고 맛있는데 추가로 하나 해드릴까요?"
4박 5일의 제법 긴 여행동안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 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만두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앞뒤 설명 없이 생뚱맞게 뱉은 말이 가져다준 기대치 않은 결과가 오래 간직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그날 저녁 식사까지 거를 정도로 양이 많은 만둣국을 꾸역꾸역 먹은 기억도 잊지 못할 일이지만 낯선 곳에서 느낀 타인의 정이 참 정겨웠다. 게다가정확한 의사 전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