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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Mar 06. 2023

찝찝함이 죄책감을 부를 때

간혹 아직 관계가 무르익지 않은 이들에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계속 그렇게 덜 익은 채 서로 풋내 나는 사이로 남을지 아님 잘 익은 관계로 오래 유지될지 그것도 아니면 지나친 숙성으로 변질된 관계가 될지 그건 지나고 봐야 알 일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안 되는 관계도 있다. 눈을 위로 치켜뜬 채 오른쪽 왼쪽으로 눈알을 굴려가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유리 안을 들여다보듯 빤히 속을 내비치던 예전의 멍청한 내 모습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근래 요 몇 년간 인간관계의 쓰라림을 경험하고 나서 깨달은 바가 있다. 내가 아는 진짜 내 모습과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완전히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위선을 부리는 건 아니다. 굳이 모든 걸 다 보여주려 하지 말고 적당한 선까지 그저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극시킬 정도까지만 드러내려 한다. 법정 스님이 그랬다. 내 패를 모두 보여줄 필요는 전혀 없다고.



일단 머릿속에 두 개의 방을 만든다. 한 곳에는 쥐어짜듯 생각해야 겨우겨우 떠오르는 장점들로 하나씩 채워 넣고 나머지 한 곳엔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그 방을 가득 메울 수 있는 단점들을 집어넣는다. 그다음, 상대를 봐가며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지 조용히 저울질해 본다. 나와의 관계에 그다지 진실되고 싶지 않은 그저 무늬만 다정만 사람인지는 반드시 확인해봐야 하는 사항이다. 그런 이들에게 내 약점을 발설한 까닭으로 잘못하면 코가 꿰여 질질 끌려다닐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는 중간값을 염두에 두고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게 두 개의 방에서 장단점을 적당히 끄집어낸다.



그런데... 이 방에도 저 방에도 집어넣기 애매한 것들이 있다. 장점인 듯 단점인 그렇다고 내 인생의 장애물이라기보단 오히려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모호한 것이다. 어쩜 그것들이 다른 사람과 확연히 구분되는 나의 정체성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가장 대표적인 게 강박증이다. 20년 넘게 같이 산 부인이 강박증이 있다고 하면 남편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 부인할지도 모른다. 남편뿐 아니라 날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 그리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강박증은 오로지 나 자신만 피곤하게 할 뿐 다른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깐.



할 일이 분명 있음에도 합당한 이유 없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다음으로 미룰 때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 나쁜 찝찝함이 있다. 그것의 정체가 무언지 난 정확히 알고 있다. 바로 죄책감이다. 다른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닌 그저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다. 내가 가진 강박증으로 인해 야기되는 증상이다. 암묵적으로 나 자신과 약속된 반드시 매일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뭐라도 하나 빼먹는 날이면 어김없이 찝찝함이 먼저 찾아온 후 뒤이어 죄책감을 향해 어서 오라 손짓한다. 그렇다고 내 몫으로 주어진 모든 일들이 해당되는 건 아니다.



김치를 담으려 배추를 사 왔으나 막상 쳐다만 봐도 너무너무 귀찮아질 때가 있다. 해야 될 숙제를 미뤄놓은 것 마냥 배추를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애초에 사 오지 않았음 될 것을 나 자신은 부지런하다 과대평가한 죗값이다. 이럴 땐 하루나 이틀 배추를 그냥 냉장고 속에 처박아둔다. 냉장고 문을 열지 않는 이상 내 눈엔 보이지 않으니 잠시 잊고 지낼 수 있고 설령 그 문을 열어 배추가 보이더라도 찝찝함은 들지언정 죄책감까지 느껴지진 않는다. 오로지 나 자신을, 가만 놔두면 더 이상 아무런 발전이 없을 늙은 이 아줌마를 채찍질할 때만 두 녀석이 짝을 지어 찾아와 날 괴롭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날씨가 허락하는 한 집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산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여름에는 폭우만 쏟아지지 않으면 비가 오더라도 우의를 챙겨서 가고 겨울에는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알람소리에 맞춰 이불을 걷어차고 나선다. 이른 해가 뜨는 여름과 달리 춥고 어두운 겨울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은 내겐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한파주의보나 겨울답지 않게 제법 많은 비가 내릴 때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나름 합법적인 이유가 있으니 아무런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모처럼의 늦잠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평소와 달리 왠지 몸과 마음이 묵직하다. 타당한 이유가 있으니 죄책감까진 들지 않지만 찝찝함은 여전하다. 언제부턴가 내 안은 숲의 내음과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 채워져야 그날 하루 열심히 살아갈 연료가 충전된다. 속 좁은 스스로를 위해 숲 길을 걸으며 전날 꽉 채워진 복잡한 마음의 방들을 모두 비워내어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하루치의 잡생각들이 들어갈 자리가 마련되기에.



큰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그동안 같이 공부하며 외워둔 어려운 수능 영어 단어들이 그대로 잊히는 게 너무 아까웠다. 쓰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 아이가 보던 2개의 단어책을 가지고 매일 200 단어 이상씩 복습한다. 그리한 지 만 3년이 넘었으니 이젠 머릿속에 책이 그대로 복사되어야 하지만 나쁜 머리 탓인지 나이 탓인지 매번 헷갈리는 것이 나온다. 그러나 노력과 꾸준함에는 그에 따르는 성과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이래 봐도 영어 단어 실력이 제법이다. 언젠가는 써먹을 때가 꼭 있을 거라 믿는다. 딸아이마저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치앙마이에 가서 한달살이도 해보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떠나보고 혼자 머릿속으로 열심히 세계지도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단어는 그저 단어일 뿐 실제 외국인과 대화할 실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말하고 듣는 영어 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라 특히 리스닝엔 쥐약이다. 도움이 될만한 게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 브런치 다른 작가님의 글을 통해 'Malama Life'를 알게 되었다. 스피킹 속도와 영상 내용이 나에게 적합한 것 같아 매일 일정한 시간 듣고 공부하러 노력 중이다. 그런데 이게 가장 날 죄책감에 빠지게 만든다. 분명 소리가 들리는 데도 그걸 따라 흉내 낼 수가 없다. 귀에 영어가 들어오는 족족 무언가가 마구 휘젓는 느낌이다. 실력이 잘 늘지를 않으니 점점 흥미도 잃게 되고 조금만 바빠도 합법적인 이유인양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끔 빼먹는다. 단어를 알면 소리가 잘 들린다는데 나에게는 예외인 듯하다. 그 혀 꼬꾸라지는 미국식 연음은 익숙한 단어조차도 생전 처음 듣는 낯선 단어로 만든다.



시작한 지 15년이 다 되어가는 간단한 나만의 집 운동도 반드시 꼭 해야 되는 것이다. 운동이라긴 보단 오히려 스트레칭과 요가에 가깝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대부분의 또래들이 가지고 있는 나잇살은 찾아보기 힘들다. 늙어 점점 오그라들고 있는 근육들을 사정없이 당기다 보면 한결 몸이 가볍고 유연해짐이 느껴진다.



뭐든 시작하면 대체로 꾸준한 편인 내게 가장 최근 강박증이 유발되는 일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다. 1주일에 한 편은 어떻게든 발행을 하려 하지만 그리 만만치는 않다. 결코 게을려서가 아니라 실력이 부족한 탓에 글을 쓰다 보면 수시로 막힌다.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시간을 두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이 모든 걸 다 하려면 매일 4, 5시간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하루가 그리 빠듯하진 않다. 작년까진 아이들과 수능 수학과 국어, 영어까지 같이 공부했기에 거기서 손을 뗀 지금은 오히려 시간이 많이 남는 편이다. 일단 아침 숲 산책은 잠을 줄여 시간을 만들고 어느 정도 탄력이 붙은 영어 단어 공부는 점심식사 후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는 시간을 이용한다. 가끔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하루의 임무를 완벽히 완수하는 내 모습을 기특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숨 쉴 구멍 역시 필요하다. 정신 건강을 위해 숲 산책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1주일에 한번 정도 죄책감 없이 과감하게 패스해 버린다.




주위에 비슷하게 나이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이제 아이들이 하나 둘 대학에 입학하니 모두들 예전 같은 일상의 빡빡함은 사라졌다. 뭘 하겠다 굳이 안 나서도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 쌓이던 그 전과는 삶의 방식이 조금씩 달라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퍼지려면 한없이 퍼질 수 있고 게으르다고 당장 눈에 띄는 문제도 생기지 않는 그런 나이다.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던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제껏 항상 나 아닌 가족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았다면 드디어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맹숭맹숭한 나날을 보내는 건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각자의 선택이지만 그저 그런 중년의 아줌마로 늙어갈지 끊임없는 자기 계발로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일지 나의 길은 정해져 있다. 물론 이 강박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 매번 날 가만 놔두지 않고 옥죄게 만들지만 한편으론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채찍질을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글을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되니 보다 명확한 답이 나왔다. 약간의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강박증은 단점이 아닌 장점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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