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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Mar 16. 2023

고장 나면 다시 고쳐 쓰면 되지

뒷 베란다에서 날 부르는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무의식적으로 그 경쾌한 리듬을 따라 흥얼거리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 마냥 계속 소파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지금 내 안에선 본능적인 게으름과 스멀스멀 올라오는 찝찝함의 기싸움이 한창이다. 결국 찝찝함의 등살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통돌이 세탁기가 있는 뒷 베란다로 향한다. 건조기가 없는 탓에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야 하는 수고를 거쳐야 하지만 건조기의 필요성은 딱히 느끼진 못하고 있다. 판상형의 남향 아파트라 빨래가 잘 마른다. 물론 장마철에는 조금 아쉽긴 하나 1년 중 고작 며칠이나 된다고 그 부피 큰 가전에 거금까지 들일 필요는 없다.



옷걸이에 겉옷들을 하나씩 거는데 면 니트 하나가 신경에 거슬린다. 며칠 전부터 어깨 솔기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 눈에 띄더니 이젠 모두 다 터져 일부러 트임을 준 듯하다. 옷걸이 한쪽이 그 부분으로 삐죽 빠져나오는 게 보고 있으니 기가 찬다. 어지간한 건 나름 금 손인 내 손으로 뚝딱 손대면 되지만 이건 어차피 수명이 다 되었다. 니트 소재의 옷이라 늘어나기도 많이 늘어났고 닳아 해어진 곳도 여럿이다.



"이제 이 줄무늬 옷 그만 버리자"

빨래를 널다 딸아이를 향해 외친다.

"안돼!"

예상했던 대답이다.

"그냥 엄마가 꿰매줘"



물론 마음만 먹으면 꿰맬 수야 있지만 그러기엔 손 볼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어깨 솔깃 뿐만 아니라 겨드랑이 솔깃, 허리 시접, 소매 시접과 끝단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게다가 신축성 있는 니트 소재라 손에 힘을 빼가며 살살 손바느질을 해야 하고 몇 군데는 아예 손 쓸 방법도 없다. 돋보기를 쓰고 구부정하게 앉아 오랜 시간 허리 아프게 꿰맨다 한들 죽어가는 옷에 얼마간의 생명 연장만 더 해 줄 뿐이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중노동이다. 아이도 낡았다는 걸 아는지라 그저 집에서 실내복으로만 입지만 자신에겐 나름 애착 옷이다. 하지만 이해가 좀 안 되는 게 그 옷은 원래 아이의 것이 아닌 바로 내 옷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30년 전, 대학 4학년 3월 무렵 그 옷과 나의 반려는 시작되었다. 목련 만발한 대학의 마지막 봄 교정에서 새로 산 그 옷을 입고 활짝 웃는 모습이 사진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보세옷 가게에서 싸게 산 옷이지만 맘에 쏙 드는 색상에 퀄리티도 괜찮아 정말 마르고 닳도록 입고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도 해외 출장, 배낭여행을 갈 때도 그 옷은 항상 나와 함께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도 여전히 나의 편한 일상복이 되어 주었다. 어느 순간 소매 끝단에 닳아 구멍이 생기자 실내복으로 전락되는 신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의 손길은 끊이지 않았다.



그 옷을 입은 상태로 딸아이를 안고 잠이 들 때면 어린 아가는 항상 내 소매 속으로 자기 팔을 쑥 집어넣었다. 오래 입어 많이 늘어났기에 자기가 원하는 깊이만큼 손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슴까지 다가오진 않았다. 그저 내 팔뚝 언저리쯤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대고는 조용히 엄마의 온기를 느끼다 그대로 잠이 들곤 하였다. 아마 초등학생 저학년까지 계속 그리 했던 것 같다.

"엄마, 나는 이 옷이 제일 좋아"

그 옷을 입을 때면 아이는 이런 말을 하며 평소보다 더 깊이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신기하고 고마웠다. 이제껏 딸아이만큼 날 간절히 원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부모든 남편이든.



하지만 시간 앞에선 인간도 미물도 다 어쩔 수 없는 존재들이다. 25년 넘게 줄기차게 입었더니 여기저기 터지기 시작하여 실내복으로 입기도 좀 그랬다. 입을 만큼 입었기에 미련 없이 버리려고 하자 아이가 갑자기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본인에겐 다소 큰 듯한 낡은 그 옷을 입기 시작했다. 몇 번 그러다 말겠지 했던 것이 벌써  년 째다. 빨래를 갤 때마다 실밥 터진 곳이 점점 늘어나 있었지만 매번 못 본 척 넘어갔다. 어차피 떠날 존재에 그리 정성을 쏟고 싶진 않았다. 아이가 꿰매달라고 할 때마다 이젠 그만 버리자는 소리를 했더니 더 이상 나보고 고쳐달란 소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옷의 앞, 뒤 그리고 소매 두 짝이 모두 분리될 지경이다. 여전히 아이는 버리지 못하게 하니 결국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대 수술을 해주자 마음먹었다.



다음날 빨래가 마르길 기다린 후 옷장에서 수술 도구들을 찾아 끄집어냈다. 환자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휴대폰으로 음악도 선곡해 틀어 놓고 돋보기를 콧등에 얹은 후 드디어 몇 년간 미뤄온 수술에 들어갔다. 바느질이 이미 터진 곳뿐 아니라 이왕 시작한 김에 터질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은 아예 다 원천봉쇄 해버렸다. 꼼꼼한 성격 탓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모든 수술이 끝나니 1시간 반이나 훌쩍 지나 있다. 뒷목도 당기고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한 것이 보통 수고를 들인 게 아니다. 다행히 치료를 끝낸 환자를 바라보니 앞으로 몇 년은 거뜬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진작 고쳐줄 것 그랬나 보다. 이렇게 고쳐가며 쓰고 또 고장 나면 다시 고쳐 쓰고 그리 하면 되는데 단지 오래되었단 이유만으로 퇴물취급 한 건 아닌가 미안한 감도 든다.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는 내 인생 많은 것들을 공유한 오래된 친구인데.



옷을 바닥에 내려놓고 가만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콧 끝이 시큰 해진다. 3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나와 동행해 준 탓에 낡을 대로 낡아 버렸다. 그 모습이 가족들을 위해 그저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왔던 지난날의 나와 여기저기 낡고 고장 나기 시작한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구석구석 예전 같지 않은 몸상태에 나 자신도 매번 깜짝 놀란다. 오늘도 치과를 다녀온 후 심란해진 마음을 애써 추스르고 있는 중이다.

'아니, 벌써 이 정도란 말이야? 그럼 앞으론 도대체 얼마만큼 더 나빠진다는 거지? 어떻게 매번 고장 난 곳이 새롭게 생기는 건지. 이렇게 나도 저물어 가고 있는 건가'

때론 서글프고 우울하다. 동시에 이렇게까지 내 몸에 무심했나 싶어 미안하기도 하다.



며칠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의 수상 소감이 날 또 울컥하게 한다.

'Don't let anybody tell you are ever past your prime'

나의 전성기는 과연 언제였나 가만 생각해 본다. 지나고 보면 아이를 낳고 키워 고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전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고등학생이 되자 하나같이 모두 내 얘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사실 아무도 나에게 전성기가 지났다는 소리를 감히 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지. 거울을 바라보니 지난 몇 년 사이  늙어버린 중년의 부인 역시 날 처량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다짐한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제부턴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몸을 소중히 여길게. 그리고 만약 큰 고장이 난다 해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실력 있는 선생님 찾아가 고치면 또 몇 년을 끄떡없이 잘 지낼 수 있으니 그리하며 살자. 고칠 때까지 고쳐 쓰면 되잖아. 다들 그러고 살 거야. 아직 몇십 년이나 남아 있는 내 몫의 인생에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려봐야 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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