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니 Mar 29. 2023

유니크한 집 냄새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 그건 분명치 않지만 온몸의 감각 기관이 다소 민감한 편이다. 그로 인해 살아감에 피곤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남들은 그냥 넘어가는 사소한 것들이 나에겐 크게 부각되어 혼자 불편하다. 하지만 때론 그게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들을 유심히 살펴 나만의 깨우침으로 이끈다. 이를테면 맛집이라 찾아간 비빔 국숫집에서 같이 간 일행이나 그곳을 가득 메운 손님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그저 맛있게 잘 먹는다. 하지만 나는 국수 위에 잔뜩 얹어 나온 야채들의 굵기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다양한 야채들을 아낌없이 듬뿍 넣은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다소 두껍고 뻣뻣한 양배추나 적채, 라디치오등이 바빠서인지 별생각 없어서인지 너무 크게 썰려 있다. 가늘게 채썰기를 으면 비슷한 굵기의 소면과 잘 어울렸을 텐데 너무 굵어 입안에서 따로 논다. 이미 위속으로 사라진 면발과 달리 여전히 입안에서 겉돌고 있는 양배추를 질겅질겅 씹으며 앞으론 비빔면을 만들 때 뭘 유의해야 할지 혼자 조용히 따져 본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사실 나에겐 민감하고 예민한 캐릭터가 딱인 것 같기도 하다. 맘 편하게 둔감한 상태로 사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세상 모든 걸 예사로이 보지 않는 나의 삶도 알고 보면 그리 나쁘진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정체성의 주요 부분인 이 민감한 감각들도 어느 정점에 도달한 이후 내 육신과 함께 점점 닳아 무뎌지고 있다. 미각, 시각, 청각 어느 하나 예전 같은 게 없다. 달라지고 있는 내 모습에 나름 적응하려 애쓰고 있지만 때때로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 예리함이 더 날을 세우고 있는 부분도 있으니 그건 바로 후각이다.


 

외출 후 집에 들어설 때 제일 먼저 날 반기는 건 우리 집만의 독특한 냄새다. 만약 누군가 내 눈을 가리고 이 집 저 집으로 끌고 다니더라도 어느 집이 우리 집인지 냄새로 100% 찾을 수 있다. 계속 집에 머무르거나 잠깐 나갔다 올 경우에는 이미 그 냄새에 코가 무뎌져 별 반응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바깥에 머문 시간이 길어질수록 중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듯 낯선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원래부터 이 냄새였는지 처음부터 이렇게 선명했는지 아님 어느 순간 달라진 건지 그것조차 헷갈리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집 냄새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언제부턴가'가 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뭐라 말하기도 애매한 이 냄새의 근원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으나 때때로 어색하기도 하다.



된장찌개, 생선구이, 갓 추출한 원두커피 아님 은은한 모과향처럼 뭔가 딱히 떨어지는 그런 냄새가 아니다. 그저 중년의 남편 몸에서 넘쳐흐르는 진한 아저씨의 냄새, 딸아이가 뿜어내는 갖가지 성장 호르몬과 바디 용품들의 냄새, 내 몸이라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그리 상쾌하진 않을 나이 많은 아줌마 냄새, 오래된 살림살이에서 흘러나오는 세월의 냄새 이 모든 것이 마구 섞여 나온 평균값일 게다. 각각 얼마만큼의 지분이 있는지 이걸 만들기 위해선 과연 어떤 비율로 어떻게 섞여야 할지 지저분하지만 잠시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농후한 체취의 소유자인 아들이 집을 떠나고도 이 평균값이 그리 달라지지 않은 걸 보면 머릿속이 다소 복잡하다. 만약 소설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이 냄새를 맡으면 과연 뭐라고 표현할까.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50대 부부들이 갖는 삶의 공허감과 처량함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신경 쓸 정도까지는 아니다. 일부러 인위적인 향으로 가릴 필요도 없는 그저 어느 집이나 가지고 있는 나름의 유니크한 냄새일 뿐이다. 유독 거슬린다면 환기만 좀 더 시켜주면 될 뿐 사실 다른 가족들은 잘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것에 대한 관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물론 일상에서도 냄새 하나로 어느 정도의 가산점이나 감점을 줄 수 있는 상황은 허다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아예 닫게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2년 후쯤 이사를 생각하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최대한 많은 집을 보러 다니고 모든 걸 잘 따져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은 게 바람인데 막상 시작해 보니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날을 잡아 한번 움직일 때 여러 집을 보다 보니 우선 체력적으로 너무 힘에 부친다. 미리 사전 조사를 하지 않고 방문하거나 아님 방문 후 정리를 제때 안 해두면 머릿속에 여러 집들이 마구 뒤섞여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제출할 보고서가 있는 것 마냥 매번 사진을 비롯한 여러 자료들을 정리해둬야 한다. 게다가 제일 머리 아픈 자금 준비와 우리 집 매도 시기도 저울질해봐야 하니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집 보러 다니는 게 마냥 신나고 재밌다는 사람도 있는데 아무래도 내 적성은 아닌 듯하다. 심지어 어떤 때는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울렁임의 대부분은 바로 다소 거북한 남의 집 냄새 때문이다.



현관문이 열리면 멋쩍은 미소를 띠고 부동산 중개인의 안내를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바로 그때 온갖 다양한 냄새들이 나의 민감한 콧속으로 한꺼번에 훅 밀려 들어온다. 집주인 얼굴을 미쳐 보지 못해도 신발을 채 벗지 않아도 냄새만으로 대충 짐작되는 것들이 있다.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베이비파우더 냄새로 갓난아기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냄새로 집주인이 노부부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렇다 할 냄새가 감지되지 않는 집은 어린아이가 없는 중년으로 막 들어선 부부가 사는 곳이라는 것도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가끔 구경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픈 집들도 있다.



나이가 들면 몸 이곳저곳에서 냄새가 나니 특별히 신경 란 말을 있는데 요즘 집구경을 다니면서 그 말을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몸뿐 아니라 온 집안 구석구석에 냄새가 배겨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집은 그 냄새를 가리려 일부러 현관 입구에 디퓨져의 향을 쏟다 붓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숨겨진 집 냄새에 싸구려 향까지 합쳐져 머리만 더 아플 뿐 나중엔 속도 불편해진다. 집이 눈에 제대로 들어 올리가 없다. 게다가 분명 시간 약속을 잡고 방문하는데 아이가 집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그 시간대에 자극적인 음식냄새를 풍기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창문이라도 좀 열어 놓던지 마치 이 집은 환기가 잘 안 되는 집이라 광고하는 듯하다. 냄새 하나 때문에 될 계약이 취소되는 정도까진 아니라 해도 비슷한 물건들이 다수 나와있음 일단 관심밖에 놓인다.



여러 집을 보고 온 날이면 우리 집 냄새가 더 진하게 다가온다. 힘들게 돌아다니다 익숙한 그 냄새를 맡으면 편안함이 우선 앞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순간 남들에겐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단 생각에 집에 들어서자마자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환기부터 시킨다. 가만 보면 음식 냄새나 살림 냄새보단 사람몸에서 나는 냄새가 집 냄새를 결정짓는데 보다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남편과 나는 몸에서 특유의 나이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 냄새의 주요인인 '노넨알데하이드'라는 성분은 나이가 들어 피부에서 분비되는 '9-헥사데센산'의 양이 증가하여 산화분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고 한다. 우리 집에선 결코 그 '나이 냄새'의 흔적을 찾지 못하게 하리라 다짐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우리 집만의 유니크한 냄새의 근원이 뭔지 그 실체가 어느 정도 파악되기 시작했다.



큰 애 대학 졸업연주회 을 겸해 남편과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막 집에 들어섰다. 딸아이 하교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려 했는데 도로가 많이 막히는 바람에 아이는 이미 샤워까지 마치고 방 안에서 공부 중이다. 중문을 열고 아이 이름을 부르며 들어서려는 순간... 이상하다. 내가 인지하고 있던 우리 집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순간 홈즈가 되어 이제껏 그 냄새를 뿜어내던 용의자의 범위를 줄여 나간다. 바로 남편과 나 이렇게 두명으로. 당장 입고 있던 모든 옷을 세탁기에 다 집어넣고 내 몸도 빨기 위해 화장실로 발길을 재촉한다.



남편이 일이 있어 며칠째 집을 비우고 있는 사이 오래간만에 지인을 만나 티타임을 가졌다. 아이 하교 시간을 맞춰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온 후 작정하고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 코를 킁킁거려 본다. 3시간 정도 집을 비웠기에 이미 코는 예민해져 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내가 얼마 전부터 우리 집 냄새라 인지하고 있던 그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드디어 범인의 윤곽이 잡혔다. 곧장 남편의 이불과 베개 커버 그리고 집에서 입고 다니던 츄리닝을 몽땅 집어 들어 세탁기로 향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장 나면 다시 고쳐 쓰면 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