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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May 07. 2023

관찰자가 아닌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작정하고 무언가를 정하여 생각하지 않는 이상 고요한 아침 숲길을 혼자 걷다 보면 머릿속에 별 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갖은 상념에 푹 빠져 아무런 의식 없이 걸어도 이미 숲 지리에 익숙한 두 다리는 용케 길을 잘 찾아간다. 게다가 이른 아침부터 날 방해할 그 어떤 것도 없다 보니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기 일쑤다. 자연스런 연상작용이라 해야 하나 의식의 흐름이라 해야 하나 별 수고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이 절로 떠오르고 전환된다.



오솔길 옆 산딸기 덩굴에 어느새 꽃봉오리가 하나 둘 맺히기 시작했다. 조만간 아침마다 한 움큼의 산딸기를 수확할 맘에 살짝 설렌다. 유독 크고 새빨간 것만 골라 딸아이 입에 넣어줄 생각을 하니 절로 흐뭇해진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자마자 이번 중간고사 성적은 어찌 되었을까 슬슬 걱정이 앞선다. 조금이라도 미끄러지면 안 되는데. 2학년인 올 해도 작년만큼 성적을 받아야 목표하는 학과에 지원할 수 있다. 순간 매번 걱정 속에 파묻혀 사는 어리석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고쳐야지 수시로 다짐을 하건만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 건가 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이번엔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생각의 꼬리 물기는 계속 이어진다.



오늘 숲 산책길에서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만 책이 불현듯 떠올랐다. 낮에 짬을 내어 간만에 절을 찾자 생각하던 참에 내일까지 반납해야 된다는 사실이 기억난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다 읽기에는 다소 빠듯할 듯하다. 항상 반납할 날이 다 되어서야 책을 펼치는 습관 또한 참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사서분이 특별히 추천해 준 것이기에 꼭 다 읽고 짧은 감상평이라도 한마디 해야 한다. 그나마 술술 잘 넘어가는 소설책이니 밤에 어떻게든 다 읽어보자 다짐해 본다.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불러 모은다. 곧이어 생뚱맞은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소설의 시점은 무언지 다소 학문적인 의문이 날 헷갈리게 만든다. '나'라는 서술자가 존재하니 1인칭 시점은 분명 하나 주인공시점인지 관찰자시점인지 그게 좀 아리송해진다. 전부는 아니지만 반이상을 읽어보니 자기를 포함한 가족 얘기를 술술 하고 있어 주인공 시점인 듯하다. 동시에 책 제목에도 언급된 제삼자의 얘기 또한 많이 하고 있고 전개상 제법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니 관찰자 시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글의 반 이상이 본인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철없고 이기적인 그의 가족을 주변의 도움으로 정신 차리게 만드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니 주인공 시점에 가깝지 않나 싶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에서.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이번엔 비슷한 종류의 다른 글을 비교하고 싶어 진다. 별 고민 없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가 당첨되어 내 도마 위에 놓인다. 이 소설에도 '나'라는 꼬마 서술자가 등장하지만 앞 전 소설과 차이점이 있다. 책을 읽을수록 꼬마보단 좀머 씨의 모습이 훨씬 강하게 머릿속에 남게 된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주위에서 들은 대로 어린 서술자가 해대는 말들이지만 그 속엔 많은 단서들이 들어가 있다. 좀머 씨가 왜 그런 삶을 택했으며 마음속 깊이 자리한 두려움은 무언지 충분히 짐작가능케 한다. 아울러 기행적인 그의 모습을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언지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꼬마가 아닌 좀머 씨이고 관찰자시점이 확실하다며 혼자 멋대로 단정 지을 때였다. 이번엔 다소 철학적인 의문 하나가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담 이제껏 나는 내 인생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살아왔을까 아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살아왔을까?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에 대해 놀랍기만 하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태껏 이렇게 심오한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진 건 처음이다. 잠시 엉터리 철학자가 되어 나의 지난날들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결혼이란 큰 이정표를 사이에 두고 자연스레 시간이 둘로 나눠진다. 한 번도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불안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지내야 했던 결혼 전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벗어나고 싶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합법적인 이별을 하기 위해 택한 결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후의 삶에서도 주인공이진 못했다. 남편, 아이들 그리고 새로 맺게 된 다양한 관계들 속에 여전히 곁눈질만 해대는 관찰자가 되어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그들이 만족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위안 삼아 게 바로 내 행복이다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안쓰럽기도 하다. 겁쟁이가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다. 주인공이기에 맞서야 될 많은 비난과 새로운 변화들이 점점 더 두려워져 그저 관찰자로서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젠 나도 내 인생에서 만큼은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야 하지 않냐는 목소리가 내 안 어디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지금껏 묵묵히 엄마로 아내로 주어진 의무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덕분에 이뤄놓은 것도 많다. 하지만 이 허한 마음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내 인생에서조차 주인공이지 못한 채 주변 눈치만 살펴온 관찰자의 슬픈 뒷모습이다. 더 늦기 전에 두렵긴 하지만 변화를 시도할 조금의 용기라도 남아 있을 때 내 인생의 시점을 바꿔보자 다짐해 본다. 그리고 과감하게 결혼 후의 시간들을 지금 이 시점을 중심으로 다시 둘로 쪼개버린다.



남은 생의 주인공은 어떤 캐릭터가 좋을지 또다시 생각에 잠긴다. 이왕이면 밝은 성격에 적극적이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면 좋겠다. 비극이 아닌 희극의 주인공으로 나로 인해 주변이 행복으로 물들 수 있음 더없이 기쁠 테다. 게다가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소설의 결말은 없을 듯하다. 그렇게 내 인생의 후반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때쯤 어느새 다시 숲입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로 아내로서의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지금 이 산을 내려가면 어제와 똑같은 일상들이 펼쳐지겠지만 분명 조금은 달라져 있을 내 모습을 은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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