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니 Jul 14. 2023

자식이 둘 뿐이라 참 다행이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간, 어느새 세 번째인 오늘의 마지막 샤워를 끝냈다. 큰애 손에 들려 보낼 음식 준비에 하루종일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푹신한 방석을 하나 집어 들어 바닥에 툭 던지고는 그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낮에 벽장에서 꺼내 놓은 선풍기를 끌고 와 젖은 머리를 맡긴 채 잠시 숨을 고른다. 20년이 넘은 무거운 구형의 선풍기지만 그 손놀림은 제법 날렵하다. 기분 좋게 살살 날 어루만지는 게 어느새 눈꼬리는 점점 아래로 쳐지고 입은 헤벌레 벌어지게 된다. 내친김에 말랑말랑한 음악까지 검색해 틀어 놓으니 온몸이 나긋해진다. 참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지난 1주일과는 비교가 안되게.




6월의 마지막 주는 5일 내내 딸아이의 기말고사가 있는 주간이었다. 이제껏 받아온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6월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곧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우리 가족 아무도 받아본 적 없는 성적이기에 아이가 가지는 부담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지. 시험 치기 3주 전부터 서서히 시작된 아이의 짜증은 날짜가 다가올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 조금만 말을 잘 못해도 타박이어서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삼가고 본인이 해달라는 것만 신속히 들어준 채 쥐 죽은 듯 지낸다. 학원도 독서실도 스터디 카페도 가지 않고 오로지 집에서만 공부하는 아이를 위해 하교하는 그 순간부터 남편과 난 기꺼이 그림자가 되어준다.



타지에서 자취를 하는 대학 4학년인 큰애는 기말고사가 끝난 후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11월에 있을 초등 임용 시험이 정말 코 앞이라 아무리 공부와 담쌓고 놀기만 하던 놈이라도 이젠 책을 펼쳐야만 한다. 이번 추석 때는 집에 오지 않는 걸로 이미 정해졌다. 방학을 틈 타 잠시 집에 와 내가 해주는 밥도 며칠 먹고 이것저것 먹거리들도 챙겨 갈 계획이었다. 언제 오든 상관은 없지만 동생 시험은 끝나고 오라 당부했고 익히 들어 분위기를 알고 있는 아이도 당연히 그때를 피하고 싶어 했다.



"엄마, 나 6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집에 갈 것 같아"

큰애의 전화를 받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 동생 기말고사 기간은 피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왜 갑자기 그때 온다는 건지. 얘길 들어보니 친구들과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그때밖에 시간이 맞지 않는단다. 큰애를 포함해 8명이나 되는 무리의 시간들을 일일이 맞춰야 하니 더 이상의 날짜 조율은 힘들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만 내려놓고 바로 친구들과 합류한 후 다음날 집에 온다 했다. 조심스레 동생 시험얘기를 꺼내자 살짝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꾸한다.

"자기 공부하는데 방해 안되게 그냥 내 방에서만 조용히 있다 갈 테니깐 걱정하지 마라고 해"



사실 집만 넓다면야 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그리 좁지도 않은 4인 가족에 딱 맞는 기본 평수이지만 사생활 보장이 잘 안 되는 구조라 그게 문제다. 판상형에 거실을 중심으로 한 3 way구조라 아이들이 어릴 땐 마냥 좋았다. 하지만 거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각자의 영역이 필요한 시기가 되자 이런 개방형 구조에 불편한 점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거실이나 부엌에서 무슨 말을 하든 방에서 전화 통화를 하든 모기 소리로 얘기하지 않는 이상 모든 가족이 그걸 공유하게 된다. 심지어 딸아이의 방은 부엌 바로 옆이다. 식탁 옆에 놓아둔 작은 소파는 가족들 모두 거실보다 더 좋아하는 공간이다. 남편과 나야 우리 새끼이니깐 뭐든 감수할 수 있지만 간만에 집에 오는 큰애에게까지 동생 눈치를 보게 하긴 미안하다. 더군다나 시험기간엔 점심 급식이 없어 12시만 되면 딸애가 집에 오는데 큰애가 편히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평소에 없던 오빠가 하필 시험기간에 집에 있으니 딸아이 입장에서도 불편한 점이 여럿일 게다. 잠시 쉴 땐 거실 소파에 편하게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는데 나이 터울 많은 서먹한 오빠가 있으니 함부로 눕기도 쉽지 않다. 에어컨이 없는 집이라 여름엔 문을 다 열고 지내는데 조심한다 해도 본인 귀에 거슬릴 때도 종종 있을 것이다. 이번에 단단히 주의를 주겠지만 밤마다 큰애방에서 흘러나올 온라인 게임 소음은 나 역시 질색이다. 무엇보다 자기에게만 고스란히 집중되던 내 신경이 오빠에게 분산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성격이 다소 유별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딸아이는 지 오빠 못지않게 무척 순한 편이다. 평소 내게 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 살가운 아이지만 시험기간만 되면 유달리 까칠하고 예민해진다. 그만큼 성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 그렇다고 내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뿐이다. 그런데 하필 시험기간에 큰애가 집에 온다고 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안 그래도 현실 남매 사이에다 지금 각자 앞가림하기 급급한 시기라 서로에 대한 배려도 다소 야박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정말 별 일 아닌 것으로도 감정이 상할 수 있다. 자칫 서로에 대한 불만이 생겨 사이가 더 벌어지진 않을지 중간에서 양쪽 눈치를 살펴야 될 내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큰애가 온다는 날짜가 다가오자 걱정은 점점 더 해 갔다. 딸아이에게 오빠의 귀환 소식을 알려야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며 눈치만 살폈다.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에 속 편한 남편은 혼자 도 닦는 소리나 하고 있다.

"참 이상하지. 아이가 집에 온다는데 반기질 못할 망정 도대체 왜 그리 걱정을 해. 그냥 오면 오는가 보다 가면 가는가 보다 하면 되지."  

답답하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왜 그러냐고? 내가 왜 머리 아파냐고?



이제껏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그리 여유롭게 아이들을 키우진 못했다. 100%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편안하다고는 여기겠지만 집이라면 떠오를 포근한 느낌을 그들 맘속에서 찾아보긴 어려울 것이다. 부모라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못해준 것은 가슴에 맺히게 된다. 보다 아늑하고 따뜻한 둥지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뭘 위해 그리 아끼고 살았는지 왜 그리 아이들을 포근히 감싸주지 못했는지 돌이켜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가득이다.



지나온 일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더 이상 후회되는 일을 만들고 싶진 않다. 이제 곧 내 품을 완전히 떠날 아이들이다. 그들만의 새로운 둥지로 향하기 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 즉 정성만은 누구 못지않게 새끼들에게 쏟아붓고 싶다. 옆에서 토닥거리고 따뜻한 격려도 해주며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있음 지체 없이 도와주고 먹고 싶다는 것들 아무리 손이 많이 가도 다 해줘 가며 그렇게 남은 시기동안 내 새끼들을 보듬어 주고 싶은 게다. 초등 임용을 앞둔 대학 4학년 큰애, 내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고2 작은애 지금 이 순간 둘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겹치지 않게 오면 정말 각각 더 잘해 줄 수 있는데. 능력이 안 되는 탓에 큰애가 오기도 전부터 과부하에 걸릴 것 같다.




어느새 전쟁 같던 6월 마지막 주가 지나고 큰애는 저녁을 먹은 후 고속버스로 타고 다시 자취방으로 떠났다. 그동안 아이들이 서로 불편해하지 않게 온 신경을 써가며 양쪽을 열심히 챙겼더니 우려하던 일들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딸애는 이번 시험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냈고 까칠 공주에서 다시 다정한 엄마 껌딱지 딸로 돌아왔다. 집에 있는 동안 잘 먹고 잘 쉬었던 큰애는 1주일 만에 몸무게가 2킬로나 늘어서 돌아갔다. 그새 살이 더 빠진 나와 달리 아이들 덕에 덩달아 잘 얻어먹은 남편 역시 2킬로가 늘었다. 모두들 조금씩 불편한 걸 잘 참아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지난 1주일 동안 나 자신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정말 오롯이 엄마로만 지냈다. 얼마 전까진 런 내 모습이 지긋지긋해 이젠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만 살고자 다짐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직 조연으로 해야 될 일이 남아 있다. 그리 많이 남지도 않았기에 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 주어진 숙제를 모두 끝낸 후 그때 조연에서 주인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이상 아무런 미련이 없어  훨씬 더 편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인생 후반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부족한 점도 있었겠지만 아이들 분위기를 살펴보니 나름 괜찮았던 한 주였던 것 같다. 큰애는 공부하는 동생을 배려해 최대한 조심해서 행동했고 아울려 잠시 쉬러 온 집에서도 책을 펼치고 공부하는 기특한 모습을 보였다. 딸애는 별 다른 불만 없이 그저 묵묵히 자기 공부에만 집중했고 남편은 충실한 내 조수역할을 자처해 주었다. 몇 년 만에 함께 한 가족 나들이와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했던 외식은 또 다른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 모든 일들이 끝난 지금 힘든 과제를 무사히 수행한 것처럼 내 마음은 아주 편안하고 뿌듯하다. 그래도 자식이 둘이기에 망정이 셋이나 넷이면 어쨌을까 싶다. 낳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닌 이 세상, 돈으로만 안 되는 그 무엇이 더 있다는 걸 정책가들은 과연 알기나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신데렐라와 나사이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