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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Aug 14. 2023

아직 고개에 다 오르지도 않았는데

교대 4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의 요즘 심정

자정이 막 지난 늦은 시간, 자리에 누워 오는 잠을 천천히 반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둠을 뚫고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늦은 시간 내게 전화 걸려 올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다. 혹시... 급히 휴대폰을 집어 들어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역시 큰애다. 낮에 통화를 했으니 앞으로 1주일간은 연락이 없을 데 대체 무슨 일인지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요즘 큰애가 영 신경 쓰이던 참이다. 불안한 마음에 얼른 통화 버튼을 누른다.

"엄마, 엄마 자?"

"아니, 이제 자려고. 근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복숭아를 샀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갈아먹을까 하고. 엄마는 복숭아 갈 때 뭐 넣고 갈아?"

평소 연락도 잘 않던 놈이 오밤중에 전화로 물어보기엔 너무나도 싱거운 질문이다. 몇 초 되지도 않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간을 조렸는지 알기나 하려나.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앞선다. 별 일 아닌 것도 그렇고 이깟 일로 잠자리에 들었을 나에게 전화하는 그 단순함마저도 모두 반갑고 고맙다. 그래, 아이는 심각한 것보다 이렇게 단순한 게 더 잘 어울린다.



교대 4학년인 큰 애는 초등 임용 시험을 석 달가량 앞두고 있다. 공부에만 집중해도 모자라는 이 판국에 요즘 쟁점화 되고 있는 교권 침해에 관한 갖은 이슈들로 아이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자취 생활을 하는 아이는 집에 자주 전화하는 편이 아니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수도 없다. 그렇다고 다 큰 놈에게 내가 수시로 전화해 이것저것 캐묻는 것도 보기 흉하다. 대학생이 되고 난 뒤로는 기본적인 용돈 주는 것을 제외하곤 완전히 미국 스타일로 독립적으로 살게 하고 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자취방과 학교 도서관만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단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 믿을 내가 아니다. 게다가 도서관에 앉아 있는다 해도 다 똑같지도 않다. 그 천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수능 직전까지 내가 직접 아이의 학습 지도를 했기에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공부에 그리 흥미 있어하는 아이는 아니다. 사실 재미있어 공부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싶지만 그래도 하는 애들은 나름의 당위성을 찾아가며 악착같이 한다. 어른으로 치면 밥하고 출근하는 일이 끔찍하게 싫지만 가족들 생각에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만약 아이가 성적이 시원찮았으면 서로서로 편하게 일찍 감치 특성화고로 방향을 틀었을 다. 하지만 대부분 기대할만한 성적을 받아왔다. 순한 성격이라 중학생 때까진 엄마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 몸속엔 공부를 거부하는 유전자가 넘쳐흐른다. 다재다능한 편이라 공부 외에 예체능이나 다른 쪽으로 진로를 이끌었어도 충분히 지 앞가림은 할 아이였다. 그래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그렇다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천재성까진 갖춘 건 아니기에 굳이 그 길에 발을 내디딜 이유 또한 없었다. 우리 형편엔 공부가 제일 싸게 먹히는 그야말로 가성비 좋은 양육 방식이었다.



그런 아이가 중 3 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먼저 꺼냈을 때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제껏 선생님이 된 아이의 모습을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지만 본인에게 너무나 잘 맞는 옷을 고른 듯했다. 철없고 놀기 좋아하고 순하면서 다정한 아이 성품에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야말로 딱인 것 같았다. 순수한 아이들에 둘러싸여 같이 몸으로 놀아주고 있는 큰애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가 전혀 생각도 못한 걸 먼저 얘기해 준 아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올라야 할 고개가 있었다. 지금이야 교대가 인기가 없어 미달 사태도 나고 커트라인 점수도 대폭 낮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 아이가 고등학생 때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문과에서 공부를 잘하면 남학생 여학생 상관없이 교대 지원이 많았다. 1등급이 되어야 수시 지원이 가능했고 교대에 가기 위해선 아이 역시 1등급을 유지해야 했다.



어느 순간 본인의 천성을 깨달은 아이는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까지 더해 2학년이 되자 공부와 엄마에 대한 보이콧에 들어갔다. 나중엔 대학도 가지 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하며 살겠다 선언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견뎠나 싶을 만큼 맘고생 심했던 그 시간들이 한참이나 흐른 뒤 아이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까먹은 성적 때문에 결국 전국 교대에 지원한 6장의 수시 원서는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교대에는 가지 못했지만 다행히 지방 다른 교대에 정시로 합격하여 바라던 선생님이란 꿈을 이어가고 있다.



드디어 한 놈 처리했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에 몸과 마음이 너무나 홀가분했다. 이젠 하나만 남았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다섯 살 터울 동생에게만 신경을 쓰면 된다. 게다가 동생인 딸아이는 아무리 싫어하는 공부지만 해야 한다는 걸 본인 스스로 잘 안다. 가족들 아무도 의대에 가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내 역할도 축소되어 이젠 그저 학습 도우미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아들, 의대생이 될 딸 생각에 한동안 아주 흐뭇했다.



대학 3년을 탱자탱자 신나게 잘 보낸 큰애는 지난겨울부터 시험에 대한 부담을 갖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 잡고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가면 다들 이를 악물고 공부하고 있으니 그 모습에 이미 주눅이 든 것 같았다. 도서관에 있는 것만으로 숨이 막혀 한동안 스터디 카페에서 혼자 공부한다고 했다. 불안감과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할 자신도 없는데 별 다른 뾰족한 방법 또한 없으니 아이는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항상 즐거운 아이였는데 언제부턴가 목소리가 가라앉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급기야 지난 설날에는 왜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켰냐고 내게 따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도 이젠 하나씩 깨우쳐 가야 한다. 내게 있어선 언제까지 철없는 아이지만 이미 20대 초반의 어엿한 성인이다. 단순히 부모와 떨어져 살고 간섭을 안 받는다고 독립이 아니다. 곧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사회인이 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나가야 한다. 부모 찬스를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이더라도 반드시 해야 되고 쉽지 않은 일이라면 남다른 노력 또한 필요하다는 걸 알 때가 되었다. 이번이 안되면 다음 기회를, 또 안되면 그다음을 도전하면 된다. 아무도 단 한 번에 합격해라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주눅 들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꿈은 가까이 와 있게 된다. 그 미래가 눈부실지 안개처럼 희미할지는 오롯이 본인 하기에 달려 있다. 그게 진정한 독립이다.



그런데 공부만으로도 힘든 요즘 생각도 못한 사건들로 아이를 비롯해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많은 학생들의 의욕에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큰애가 수험생일 당시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음 아이의 교대 진학을 내가 따라다니며 말렸을 게다. 이젠 우수한 학생 그 누가 교대에 지원할 건가 싶다. 물론 공부만 잘한다고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건 전혀 아니지만 초등교육의 질이 저하될 건 당연지사다. 아이는 이미 교생 실습 때 학교 선생님들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고 했다. 사명감 같은 것은 필요도 없고 그저 워라밸 할 수 있는 직장정도로만 여기라는 소리를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이 교생들에게 대놓고 하는 이 현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다.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들이니 감히 그들을 탓할 순 없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 잘못되었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 아이가 교대에 다니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하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이 얘기를 꺼내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아이가 교대에 다닌다는 걸 아는 주위 사람들 역시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 마디씩 던진다.

"큰 애가 교대 다닌다고 했죠? 요즘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나도 선생 하다 명퇴했지만 그래도 나 때는 괜찮았지. 요즘은 선생 해라고 해도 난 못해"

왠지 아이에게 미안했다. 내가 좀 더 멀리 볼 수만 있었다면 힘들게 공부해서 굳이 교대에 지원하는 일은 말릴 수 있었을 텐데.



열심히 오르막을 올라 정상에 도착하면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질 뿐 아니라 이 힘든 내가 걸어왔다는 성취감에 뿌듯해하고 이어질 길도 내리막이라 영 수월할 줄 알았다. 그래서 힘든 것도 무릅쓰고 열심히 한 발 한 발 내디딘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리는 얘기들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아직 다 오르도 못한 고갯길에서 '도착해 봤자 별 볼 게 없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을 거다'라는 소리나 들으면 애써 오를 마음이 싹 가시게 된다. 그저 돌아올 수 없으니 그냥 계속 나아가는 거지.



그렇게 꽉 막힌 나라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들이 정치한다고 저렇게 나서고 있으니 분명 어떤 식으로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또한 모든 진상들이 낱낱이 밝혀지길 소원한다. 하지만 그전에 하나 바라는 게 있다. 시끄러운 정치권이 아닌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바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식이 있진 않지만 모두 그 누군가의 자식들이다. 내 새끼가 소중하면 다른 집 아이들도 소중하고 즉 이 세상 사람 모두 그런 존재들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소중한 내 자식과 직접 관련된 일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 최소한의 존중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일이 가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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