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단둘이 떠나는 캠핑

by 코니

9월이 되었다. 그 말은 즉 딸애의 방학이 드디어 끝나고 이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방학 시작 전 앞으로 이어질 약 한 달 반 동안의 노고를 위해 미리 에너지 충전용으로 3박 4일의 캠핑을 다녀왔었다. 그 후 꼼짝없이 집에서 딸애와 같이 공부한다고 많이 지쳤고 모든 에너지는 이미 방전된 상태다. 다시 에너지를 충전시켜놔야 앞으로 또 힘내어 열심히 살아간다. 다행히 딸애의 방학 동안의 학습 목표는 거의 다 달성한 것 같다. 수고했다.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이 늙은 머리로 핑핑 잘도 돌아가는 두뇌를 가진 딸애와 같이 공부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누. 마지막 미적분 인강 때 선생님의 인사말을 들으며 눈물 훔치던 내 마음을 누가 알까? 그래 애썼다. 그동안 고생한 나 자신을 위해 뭔가 선물을 줘야 한다. 캠핑을 떠나자. 나에게 큰 선물이자 에너지 충전은 캠핑을 가는 거다.




딸애는 캠핑을 싫어한다. 벌레도 싫고 걷는 것도 싫고 더운 것도 싫단다. 내가 그리 곱게 키운 편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캠핑을 그렇게 많이 데리고 다녔건만 초등학교 5, 6학년쯤부터 가기 싫은 내색을 쳤다. 그래도 그땐 혼자 집에 놔둘 수가 없어 억지로라도 끌고 갔는데 이젠 중3이고 나름 보안이 잘된 아파트라 그냥 혼자 놔두고 남편과 나 단둘이 간다. 가기 싫은 애 억지로 데리고 가봤자 본인도 짜증 나고 나는 나대로 애 눈치 보기 바빠 모처럼 가는 캠핑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그동안 먹을거리를 냉장고에 잘 챙겨 두고 공부할 분량을 미리 정해준다. 아침에 나름 애교 섞인 모닝콜로 깨워주고 하교 후 몇 번의 전화통화를 하면 딸애는 혼자 며칠을 잘 지내주었다. 나도 캠핑까지 와서 애들 챙기지 않아도 되니 남편과 단 둘이 가는 게 사실 더 좋다.




이번에 갔다 온 휴양림도 예전에 애들하고 이미 몇 번 갔다 온 곳인데 그동안 점점 시설이 좋아져 모든 데크에 전기가 다 들어오고 와이파이도 가능해졌다. 게다가 샤워실에 따뜻한 물도 나오고 화장실도 깨끗하고 널찍하다. 이 정도면 딸애도 갈 듯해서 집에 돌아와 딸애에게 그 얘기를 하며 담에 같이 한번 가자했더니 딸애 왈

"엄마, 집에도 따뜻한 물 나오고 전기도 들어오고 와이파이도 돼"




3박 4일의 여유로운 캠핑이라 집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울진으로 향했다. 사실 7월 초에도 울진으로 갔다 왔지만 그때의 매 순간순간이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이번에도 아무런 고민 없이 다시 울진으로 향했다. 남편은 또 그리 멀리 가냐는 반응이지만 예전처럼 남편 혼자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반반씩 나눠하니 더 이상 별다른 소리는 하진 않는다. 너무 추울 때만 제외하면 캠핑엔 바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부산 앞바다 같은 화려하고 요란법석 시끄러운 곳이 아닌 소박하고 조용한 바다가 좋다. 그렇다고 습하고 끈적이는 바다 바람맞으며 캠핑하는 건 또 싫어해 항상 휴양림을 이용한다. 휴양림에서 캠핑하고 아침 일찍부터 바다로 향한다. 물때를 봐가며 고동이나 조개를 잡고 나머지 시간엔 하루 종일 낚시를 한 뒤 저녁때가 되어서야 다시 돌아온다. 물론 어떤 날은 다른 관광지나 산을 찾을 때도 있지만 이번 캠핑은 바다에서 낚시만 하기로 작정했다.



조용한 밤바다에서 하는 낚시는 그 자체가 힐링이다



남편과 나는 교집합이 거의 없다. 차집합을 말하려 한다면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지만 공통된 걸 말하려면 한참을 생각해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캠핑도 남편이 먼저 애들과 가자며 텐트까지 샀지만 사실 남편은 캠핑을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이 여행 좋아하는 나를 만나 억지로 휴가시즌마다 끌려다니다가 숙박비 아낄 요량으로 텐트를 구입한 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하나 잘 맞는 게 있다. 일단 산이나 바다를 가면 석기시대의 원시인들처럼 무언가 잡고 채집하는 걸 좋아한다. 산으로 가면 계절에 따라 두릅이나 고사리를 꺾고 산딸기, 오디도 따고 바다에 가면 조개, 고동, 성게, 군소 등을 잡고 낚시도 즐긴다. 도시 태생의 까막눈이라 뭐가 뭔지 잘 몰라 봐도 그냥 스치고 지나갈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항상 주위에 뭔가 먹을 만한 게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다닌다. 이번 캠핑에선 남편이 말굽버섯을 발견했다고 급하게 나를 불렀다. 말굽버섯이 뭐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 TV에서 봤단다. 가보니 영지버섯처럼 생긴 것이 나무 밑동에 층층이 붙어 있었다. 시원찮은 지식으로 냅다 따먹다가는 객사할 것이 분명하여 혼자 먹어라 했더니 본인도 불안한지 아쉬워하면서도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조개들을 잡기 위해선 반드시 미리 바다 물때를 확인해야한다



그러나 이 어설픈 도시인의 수렵과 채집에도 우리만의 룰이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려고 하는 거지 그냥 재미로 하진 않는다. 동물들도 먹기 위해 사냥을 하고 재미로 다른 동물을 죽이진 않는다는데 동물보다 못한 행동을 해선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간혹 낚시를 가다 보면 잡은 후 죽은 물고기를 다시 바다에 버리고 가거나 옆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는 필요 없다고 나눠주는 사람이 있는데 먹지도 않을 거면서 재미로 하는 살생은 결코 하지 않는다.




산을 걷다 뜻하지 않은 수확물을 발견하게 되면 남편과 나는 엔돌핀이 마구 뿜어져 나온다



캠핑은 뭐니 뭐니 해도 평일에 가는 게 제일 좋다. 일단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조용히 캠핑을 즐길 수 있다. 화요일은 대부분의 휴양림이 쉬는 날이라 우리 부부는 주로 수요일에 출발한다. 두 달 전에 왔을 땐 70대 노부부와 우리 부부만이 그 넓은 휴양림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분들은 텐트 주위에서만 모습을 드러냈고 게다가 우리 데크와 많이 떨어져 있어 사실상 남편과 내가 휴양림 전체를 전세 낸 거나 다름없었다. 마스크도 없이 자연의 냄새를 실컷 맡을 수 있었던 게 얼마나 좋았던지...




평일 조용한 휴양림에서는 주말과 달리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 부부의 모든 캠핑 장비는 허접하다. 그렇게 비싼 것까진 아니더라도 돈을 좀 들여서 제대로 된 걸 갖추고 싶으나 남편은 항상 싼 것만 찾는다. 오직 부채나 미니 선풍기에 의존해서 숯에 불 피우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 토치 하나 사자고 노래 부른 지가 벌써 10년이 다되어가는데 그래도 필요 없단다. 그러더니 이번 캠핑 땐 무슨 일로 토치를 하나 샀다고 자랑스레 내밀기에 반가이 들여다봤더니... 만원 정도면 나름 괜찮은 거 사서 집에서 요리할 때도 불맛을 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데 기껏 사 온 거하고는 뭐든지 다 있는 곳에 가서 단돈 3천 원짜리를 사 온 것이다. 사용할 때마다 따로 라이터로 불을 붙여야만 해서 겁 많은 나는 무서워 손댈 수도 없다. 또다시 허접한 장비만 하나 늘어났다. 텐트도 10년이 훌쩍 넘은 중저가 제품이라 이젠 방수력이 많이 떨어졌고 디자인이나 색상도 촌스럽다. 코펠 냄비는 손잡이가 하나 부서졌으며 낡디 낡은 침낭과 그 밖의 모든 캠핑장비들도 우리 부부처럼 나이 들고 고장 나고 있지만 그래도 쉽게 바꾸진 못한다.




울진 구수곡 휴양림은 주차장에서 데크까지 손수레로 짐을 옮길 수 있다. 가만 보면 흡사 전쟁 피난민 같기도 하다



온 가족이 마지막으로 함께 캠핑 간 게 3년 전 여름이었고 그 후 큰애가 고3이 되어 캠핑은 꿈도 못 꾸고 있었다. 게다가 딸애는 캠핑은 절대 안 가려하고 큰애도 대학 입학 후 타도시에서 자취 중이라 앞으로도 다 같이 갈 일은 거의 없겠지만 아이들과 함께한 모든 캠핑 추억들이 이 장비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4인용 텐트라고는 하나 애들이 커감에 따라 180센티가 넘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자기에는 많이 좁아 모두들 구겨서 자야 했는데 이젠 우리 부부가 넉넉히 쓰고도 공간이 남는다.




몇 년 전 만 오천 원 주고 산 낚싯대 역시 많이 허접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처럼 먼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힘껏 던져 큰 놈을 기대하는 게 아니고 가까이에 던져 주로 잔챙이들만 노린다. 솔직히 둘 다 진득함 또한 없어 기다림의 여유를 즐길 줄 모르고 입질이 없음 지겨워 바로바로 성급히 자리를 옮긴다. 그래서 어떨 땐 미끼 값도 못 건질 때도 있지만 잔챙이든 뭐든 무언가 걸려들었음이 느껴지고 힘껏 줄을 당길 때의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하여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무슨 강태공처럼 낚시를 가야 한다.




고맙게도 우리의 사냥감이 되어 준 물고기들



이번 캠핑은 수확이 조금 시원찮다. 앞전에 왔을 땐 볼락을 많이 잡아 회로도 매운탕으로도 심지어 숯불에 구워서도 먹었는데 이번엔 볼락은 겨우 한 마리에 쥐치와 전갱이만 잡힌다. 맑고 깨끗한 바다라 물속 풍경이 고스란히 다 보이는데 이놈의 쥐치는 식탐이 보통 많은 게 아니라서 다른 물고기보다 잽싸게 와서는 미끼만 계속 빼먹고 간다. 한참을 그렇게 쥐치 밥만 먹이다 눈먼 놈 몇 마리를 잡긴 했는데 어째 나보다 한 수위인 남편의 낚싯대가 이번엔 유난히 조용하다. 같이 잡아야 서로 재미있어하는데 누구 혼자만 잡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결국 이번엔 그냥 매운탕으로만 만족한다.



구이도 하고 회도 한점 뜨고 매운탕, 조개탕에 고동무침까지 바다 사냥의 풀코스 요리다



우리 부부는 사실 집에선 대화가 별로 없다. 남편은 원래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며 리액션이나 반응이 전혀 없는 감정표현이 서툰 사람이다. 그런 남편하고 20년 넘게 살다 보니 처음과 달리 나 역시 남편에겐 똑같이 그의 방식대로 대하게 된다. 다른 사람한테는 살갑게 굴다가도 남편 하고 몇 마디 안 되는 대화를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톤이 달라진다. 게다가 뭐든 애들 위주로 하다 보니 남편은 항상 뒷전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의 근원은 그동안 같이 살면서 차곡차곡 쌓인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 때문이지만. 그러나 단 둘이 떠나는 캠핑은 이런 일상들을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켜준다. 3박 4일 동안 애들 없이 둘이서만 계속 붙어있으니 서로를 챙겨줄 수밖에 없다. 이번 캠핑 때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에 물풀이 잔뜩 낀 걸 모르고 걷다 그대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크게 찧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는지 걸음은 걸어지는데 뭔가 많이 불편했다. 그때 걱정하며 뒤에서 조심스럽게 날 일으켜 세워주는 남편이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후 남은 캠핑 동안 어딜 가든 조금이라도 경사 지거나 힘든 길이 나오면 꼭 손을 잡아 이끌어 주었다. 이럴 때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남편이란 존재에 대해 고마움, 안도감, 편안함 등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캠핑 때는 수렵과 채집 활동에서 서로 협동하고 같이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 집단이 되기 때문에 집에 있음 결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올해 벌써 남편과의 4번째 캠핑이 끝났고 아직 두 번의 캠핑이 더 계획되어 있다. 2년 전 큰애가 고3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다. 어느 정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끝내고 나름 만족스러운 결실을 맺고 나니 우리 부부에게도 뭔가를 누릴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아직 중3인 딸애가 남아 있긴 하지만 큰애 하나 끝낸 것만으로도 마음의 부담감이 확 줄어들었다. 게다가 확실히 딸은 아들과 달라 매사 야무져서 큰애 때만큼의 노심초사는 없다. 이제부터 애들 때문에 누리지 못했던 걸 하나씩 남편이랑 해 나가려 한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거창하게 뭘 하지는 못해도 짠돌이 남편과 나 둘이서만 느낄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만들어 가려한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우리 부부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시간도 많아지고 있으나 아쉽게도 이젠 나이 또한 점점 많아져 앞으로 건강하게 이 자유를 누렸음 한다. 두 달 전 휴양림에서 만난 70대 노부부에게 서로를 아끼고 챙기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아 그날 잡은 고동 중 유달리 큰 놈들만 골라 드렸다. 근데 자세히 보니 할머니가 거동이 많이 불편하셔 그저 의자에 가만 앉아 있기만 하시고 할아버지 혼자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물론 할머니도 사랑하는 남편과 와서 무척 행복하셨겠지만 그래도 이 좋은 캠핑도 역시 건강해야만 더 즐길 수 있다.




숯불을 피우고 남은 불로 예전의 우리 아이들처럼 불장난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나에게 제법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앞으로 하고 싶은 거 배우고 싶은 거 돈 걱정하지 말고 다 해라고 쓰고 살아라고. 와, 캠핑이라는 게 이런 매력까지 또 있는 줄 몰랐네. 돈은 그저 통장 속의 숫자로만 존재하는 것이지 쓰는 것임을 모르는 짠돌이 남편이 저런 소리까지 하게 만들다니. 물론 내일 되면 본인이 그런 소릴 한 줄 까맣게 잊고 있겠지만 다음 캠핑 때는 또 무슨 소릴 듣게 될지 은근 기대하면서 10월 우리 부부의 다섯 번째 캠핑을 설레며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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