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계획된 남편과의 여행 중 그 마지막인 6번째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여느 때처럼 텐트에다 온갖 피난살이 같은 짐들을 바리바리 꾸려서 가는 캠핑이 아니라 우아하게 캐리어를 끌고 가 숙박업체에서 자는 거라 비교적 가뿐하게 갈 수 있었다. 게다가 숙박 대전 기간과 겹쳐 숙박비도 많이 할인받을 수도 있어서 마음 역시 가뿐하였다. 집에서 좀 멀리까지 가볼 요량으로 3박 4일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근데 이전 여행까진 별 말없이 보내주던 딸애가 이번엔 유독 투정을 많이 부린다. 밤에 무서워서 또 어떻게 3박 4일 동안 혼자 자냐고 가지 말라면서... 그럼 같이 가자고 해도 엄마 아빠랑 함께 가는 여행은 힘들다고 싫단다. 이번엔 힘든 거 하나도 없이 그냥 차 타고 돌아다니고 텐트에서 자는 것도 아니라 해도 여행 코드가 우리 부부와 다른 딸애는 싫다면서 무조건 나보고 가지 말란다. 원래 이렇게 땡깡 부리는 애가 아닌데 가만 보니 엄마가 미안해하고 당황해하는 걸 보는데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그렇게 아주 미안한 척 딸애를 달래 가며 출발한 이번 여행에서 우리 부부가 특히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있다. 바로 사진이다.
남편은 참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다정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다. 형제만 4명인 집안에다 전형적인 경상도, 공대 출신 남자이다. 부인 배려않고 무조건 자기 뜻대로 하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에 그 역시 본인 의향과 상관없이 알게 모르게 그런 아버지의 냄새가 곳곳에 배겨 있었다. 만약 한 살만 더 일찍 그를 만났더라면, 결혼 전 내 후각이 정상 작동하여 그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만 있었더라면 시대에 맞지 않는 그런 남성미에 질려 아마 일찍 감치 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미팅도 아닌 중매로 그를 만났을 땐 내 나이도 이미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던 터라 이것저것 따질 형편은 못되었다. 당시 엄마는 본인 생각에 자식 4명 중 가장 야무지고 자기 비위를 잘 맞춰주던 날 잡고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랑 되도록 오래 사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런 엄마와 합법적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결혼이기에 난 기꺼이 독신을 포기하고 중매라는 다소 촌스러운 방법으로 그를 만났다.
똑같은 커피숍에서 동네 통장집 아주머니가 소개해준 남자들과의 만남이 1시, 4시에 나란히 잡혀 있었다. 하지만 1시에 만났던 사람으로인해 모든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이 이젠 겨우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싶었다. 이미 그 아주머니에 대한 신뢰감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자동차 회사에 다닌다는 4시의 남자도 그저 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일 거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환히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날 반기던 그는 180센티가 넘는 키에 얼굴도 잘생겼으며 정말로 대기업 자동차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네 명의 아들 중 셋째라는 사실에 마음이 확 끌렸다.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 내내 이런 남자가 뭐하려 나랑 계속 만날까 싶어 오히려 기분이 울적했었다. 나는 1시의 남자 같은 사람밖에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후 연애 같지도 않은 1년의 연애 후 결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이 모든 게, 정말 이 모든 게 허울만 좋은 쓸데없는 것들임을 곧 깨닫게 되었다. 내가 뭐하려 이런 남자랑 계속 살아야 되나 싶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남편은 나랑 참 많이 안 맞다. 아니 안 맞았었다. 그러나 20년 넘게 한 지붕 밑에서 산 요즘, 맞추려고 많이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아니, 남편이. 운전하는 것도 활동적인 것도 돈 쓰는 것도 싫어하던 사람이 내가 여행 가자 하면 군소리 없이 기꺼이 동행해준다.
무뚝뚝한 남편은 다른 집 남편들이랑 다르게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한다. 이제껏 주위에서 잘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외모에 항상 자신감이 차 있다. 사진 속에 찍힌 본인의 모습을 무척 즐긴다. 사진 찍기 그럴싸한 곳을 지나칠 때면 대체로 남편들이 가족들 사진 찍어주려 하는데 우리 집은 정반대다.
"여기 나 좀 찍어봐라."
그러면서 어느새 포즈를 잡고 서있다. 그때 충실한 사진기사가 되어 맘에 드는 사진을 많이 쏟아주면 남편은 그 여행에 아주 흡족해한다. 아울러 다음 여행까지 어느 정도 보장받는다. 나 역시 사진 찍는 걸 꽤 즐기는 편이다. 예전에 점점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싫어 어느 순간부터 사진 찍기를 회피했었는데그런 내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래도 오늘이 내일보다 더 젊어요. 다음에 보면 '그래도 이때는 젊었네' 할걸요"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았다. 나이 들어 보인다 여겼던 사진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서 다시 보면 정말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이후 어딜 가든 부지런히 그 기억을 사진으로 남긴다. 게다가 사실 가족과 함께한 여행이라면 힘들고 안 좋았던 기억조차도 '시간의 경과'란 양념이 첨가된 후 그 맛이 사뭇 달라진다. 다시 돌이켜보면 그런대로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다못해 두고두고 얘기할 거리가 된다. 그러기에 그 기억을 소환시킬 임무를 가진 사진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내 사진에도 단풍 나무 사이에 걸린 태양을 담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은 추위 때문에 숙박시설을 이용했지만 우리 부부는 주로 여행을 캠핑으로 간다. 그러다 보니 옷도 항상 제일 편한 복장에 화장기 없는 민낯에다 머리 또한 엉망이어서 사진의 결과물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점점 나이를 먹다 보니 사진 속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다. 거울을 통해 비친 내 모습은 꾸질 하고 처량해 보일 때도 있지만 한껏 멋을 부려 봐줄 만할 때도 있다. 당연히 내 머릿속엔 보기 싫은 모습은 지워버리고 좋은 모습만 저장해둔다. 하지만 깊어진 팔자주름이나 전반적으로 쳐지고 있는, 필터 없는 사진 속 내 얼굴은 영구불변 그대로 남아있기에 더 객관적인 현재의 모습으로 와닿는다. 그래서 이번엔 최대한 신경 써서 고데기도 챙겨가고 마스크로 가려지지만 화장도 매일 했다. 옷도 해외여행 갈 때나 쓰는 대형 캐리어에 꽉 차게 챙겨 멋진 작품 사진을 남길 준비를 나름 철저하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딴 곳에 있었다. 사진에서 모델과 의상, 배경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사진작가의 감각이다.
남편 사진과 달리 내 사진에서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 마냥 내가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나 역시 그리 감각적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디자이너로 10년 넘게 일을 했고 취미로 그림도 계속 그려 그런대로 나쁘진 않은 편이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요즘 애들처럼 다리를 길어 보이게 찍어주지는 못할 망정 실물보다 항상 짧아 보이게 찍는다. 나는 남편의 다리를 최대한 길게 찍어주는데 말이다. 내가 사진을 보고 불평을 하면 원래 내가 짧아서 그렇다는 얄미운 소리나 한다. 사실 키가 크긴 해도 자기도 등이 긴 편이지 다리는 그리 길지 않으면서. 한 번은 우리 부부의 여행사진을 보면서 딸애가 이런 말을 했다.
"왜 항상 엄마 사진은 전부 짜리 몽땅해 보이고 아빠 사진은 길쭉해 보여?"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내가 가진 기술을 그에게 전수해야 했다. 휴대폰을 배꼽 정도까지 내리고 몸을 약간 뒤로 젖혀서 찍어라고 알려줬다. 처음엔 휴대폰을 내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조차 이해를 못 하더니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다리 연장 수술은 그런대로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남편과 나의 구도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는 사진
다음은 구도 잡기였다. 항상 그렇듯 내가 먼저 남편을 찍어준 뒤 결과물이 제법 괜찮으면 나도 찍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분명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인데 같은 곳 같지가 않다. 포커스가 전혀 다르다.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닌데 어째 찍는 것마다 내 생각과 다르게 찍어준다. 이 좋은 가을 풍경을 제대로 배경으로 담고 싶은데, 언제 다시 여길 올지도 모르는데 남편이 찍어준 사진은 점점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게다가 사람을 이상하게 잘라서 찍는다. 전신컷을 찍으려면 발끝까지 전부 넣든지 하지 꼭 발목을 자른다. 상반신을 클로즈업하려면 적당한 선에서 자르면 되는데 어정쩡하게허벅지 부분에서 자르고. 땅바닥은 또 왜 그리 사랑하는지 하늘은 조금만 들어가 갑갑해 보이고 무슨 땅바닥만 잔뜩 찍는다. 오히려 나보고 하늘을 뭐하려 많이 넣으려 하냐고 큰소리다. 하지만 항의가 빗발치자 남편도 내 눈치를 살피며 찍고 나면 꼭 확인을 받는다.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어줄게"
그래서 내가 먼저 찍어준 사진을 보여주며 배경은 이렇게 들어가게 사람은 이 정도 사이즈로 찍어 달라고 상세히 얘기를 한 뒤 포즈를 잡는다. 그러면 제법 그럴듯하게 따라 해 주지만 섬세한 부분까진 안된다. 예를 들면 이각도에서 사진기사가 조금만 몸을 움직여 찍거나 아님 모델인 나보고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라 얘기를 해주면 좀 더 완성도 있는 사진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게 안된다. 글쎄... 내가 좀 까다롭다면 또 그럴 수도 있고.
땅바닥을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
생각해보면 지난 22년 동안 그와 나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어 왔지만 그것들은 같은 듯 같지 않았다. 같은 방향이라도 그 포커스가 달랐다. 그게 누구의 것이든 분명 더 나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서로에게 물어보고 그 말에 귀 기울였으면 분명 둘 다 좋은 결과들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 같은 경우 그저 방향만 제시하고 남편이 내 생각대로 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남편은 보다 정확하고 디테일한 작업지시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방향뿐 아니라 구도와 배경, 사람의 크기 비율까지도. 아마 도대체 뭘 원하는 건지 모르던 남편도 지난 세월 동안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같은 장소이나 같은 듯 같지 않은 그와 나의 포커스
그래도 열심히 찍은 덕분에 300장에 가까운 사진 중 맘에 드는 것이 여러 개 있다. 삭제할 것을 삭제하고도 제법 그 수가 될 것 같다. 남편과 나의 50대 초반의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담긴 소중한 추억들이다. 또 하나의 남편과 공유할 얘깃거리가 생겼다. 여행 좋아하는 날 위해 기꺼이 동행해준 남편과 3박 4일 동안 혼자서 밥 잘 챙겨 먹고 학교에 다닌 우리 딸내미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아울려 제대로 된 가을 여행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우리 부부를 위해 11월 중순이 지났건만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준 단풍과 따뜻했던 날씨에게도.
애들 키우고, 나랑 전혀 맞지 않았던 남편이랑 살면서 힘들고 외로웠던 3,40대... 그 시간들을 꿋꿋이 견뎌내고 어느새 50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요즘 그 보람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