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같이 가는 카페는 늘 정해져 있다. 별다방... 그 외에는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별다방 마니아도 아니고 거기 커피가 유독 맛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남편은 아예 커피를 즐기지도 않는다. 게다가 내 입맛엔 맞지 않아 한 번도 그곳의 아메리카노를 한잔 다 마셔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그 아메리카노가 맛있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어차피 뭐 커피는 기호 식품이기에 자기 취향껏 즐기면 되는 거니깐. 그래서 난 항상 시럽을 잔뜩 넣은 달달한 모카를 남편은 라테를 각각 주문해 마신다. 사실 데운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싫어해 라테 종류는 마시지 않고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하지만 쓴맛과 탄맛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보단 입안이 즐겁다. 더구나 초코 시럽과 시나몬 파우더가 우유의 느끼함까지 잡아주니 나에겐 딱이다. 대신 한잔 마시고 나면 우유로 인한 더부룩함은 여전히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별다방을 굳이 가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 남편은 어디서 그렇게 구해오는지 나와 큰 애에게 가끔 별다방 쿠폰을 보내준다. 예전엔 지인들하고 그 쿠폰을 참 요긴하게도 잘 썼지만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래도 편하게 함께 카페에 갈 수 있는 동생이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허리 수술로 당분간 외출이 힘들게 되었다. 결국 쿠폰 유효기간이 다되어갈 때면 어쩔 수 없이 남편보고 같이 가자고 한다. 그럼 별 말없이 옷을 챙겨 입고 따라나선다. 이번에도 나는 모카 남편은 라테를 각자 앞에 한잔씩 놓고 서로 마주 보며 자리를 잡았다.
집에서도 대화가 드문 우리 부부가 나란히 카페를 찾는 건 공짜 쿠폰만 아니면 참 드문 일,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이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런 것에 돈 쓰는 걸 싫어한다는 걸 잘 알기에 같이 가서 차 한잔 마시자는 말을 아예 꺼낸 적도 없다. 별다방을 제외하곤 결혼 후 단 한 번도 단 둘이 카페에 간 적이 없다. 무엇보다 별 할 말도 없는데 굳이 카페까지 가서 서로 마주 보고 있노라면 조금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지인들과 가면 보통 2시간씩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끊임없이 떠들고 나오는데 남편과는 단 한 번도 1시간을 넘긴 적이 없다. 모카 한잔 마시고 휴대폰 좀 보다가 몇 마디 서로 주고받으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그만 집에 갈까?"
남편은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다. 형제만 4명인 집안에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거의 말이 없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게 자기에게는 하나도 불편하다거나 이상하다고 여겨진 적이 없고 주변 사람들이 또 어떻게 생각할지 역시 관심사도 아니다. 신혼초 집들이를 할 때 술에 취해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모습이 내가 유일하게 본 말문이 트인 순간이다. 아이들을 위해 식탁에서 대화가 넘치는 가정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는 밥 먹을 땐 오히려 말 한마디 없고 누구에게 뺏길세라 전투적으로 음식을 먹는다. 아마 형제 4명이서 같이 하는 식사는 그렇게 하지 않음 먹을 게 없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그런 삭막한 분위기를 아이들이 느끼지 않게 하려고 참 부단히 애썼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 혼자 떠들었다.
남편은 리액션마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열심히 떠들고 있어도 '응', '어', '그래서?', '진짜?" 이런 추임새 한번 없다. 이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안 듣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조차 없다. 그러니 더더욱 같이 대화할 맛이 뚝 떨어진다. 매일 아침 찾는 산에 가면 나이가 많은 부부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다. 아주머니들은 열심히 떠들고 아저씨들은 1미터쯤 앞서 걸으며 입 한번 벙긋 안 한다. 그런데도 뭐가 좋다고 저렇게 열심히도 이야기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과거의 내 모습이기도 하고. 한번 그 점에 대해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뿐이었다. 이미 포기한 채 살고 있지만 얼마 전 나름 타이르듯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다시 한번 그 얘기를 꺼냈다.
"사람이 얘기를 하면 어떻게든 듣고 있다는 반응을 보여줘야지. 그래야 상대방도 무안해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지"
이번엔 저번보단 좀 약효가 오래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나이가 드니 참 많은 게 귀찮아졌다. 그렇게 혼자 떠드는 것도 귀찮아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말수가 줄어 집에 남편과 있음 정말 몇 마디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말없던 남편이 별 중요하지도 않은 걸로 한 마디씩 말을 붙여 오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과 나 우리 둘 다 이젠 안다. 앞으로의 삶에서 서로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지되는 사람이 누구라는 걸. 그래서 나도 다시 예전의 살가운 아내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모카를 마시며 끊임없이 남편에게 아이들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 부부의 가장 주된 관심사가 아이들이니 남편 역시 궁금해한다. 말수 적고 그리 다정하지도 않은 아빠이다 보니 아이들 역시 남편에겐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에 관한 대부분의 것들을 나를 통해 남편은 알게 된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남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좀 서운해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으나 도통 신경 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아이들은 엄마랑 더 가까운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내게 말한다. 누군가 이런 남편에 대해 마음은 그게 아닌데 표현이 안되어서 그런 거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구차한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표현하기 귀찮은 게 그게 바로 마음이 없는 거다.
이번 별다방 데이트에선 3월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딸애 얘기가 주된 대화 소재다. 남편이 아주 흐뭇하게 내 얘기를 듣고 있다. 뜬금없이 남편에게 한마디 해본다.
"오빠, 나한테 고맙다고 해라"
왜 그러냐는 식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본다.
"빨리"
"왜?"
"이렇게 아이들 공부 잘하게 키워준 나한테 고맙다고 해라"
남편은 마지못해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그래, 고맙다"
예전에 사주 역학에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읽으면서 나랑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몇 번씩 깜짝깜짝 놀랐다. 그저 운이니 미신이니 그리 생각했는데 이건 무슨 막대한 데이터를 구축해서 내린 과학적 결론들 같았다. 그때는 결혼 전이라 남편과 자식 운에 대해 나온 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겐 남편 복은 없는데 자식복은 있다 했다. 그 얘길 남편에게 해주자 씩 웃는다. 갑자기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오빠, 그럼 남편복이 없다는데 자식 복 얻으려고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아리송한 질문에 말없는 남편은 그저 씩 웃으며 그 답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