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저씨가 아지매 오빠요?

by 코니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그게 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니 더 시끄러울 수밖에. 부인의 삭발 머리를 조크 삼아 언급한 한 시상자를 향해 따귀를 날린 윌 스미스의 행동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에게 많은 동정표를 주는 한국과 반대로 대부분 비판적인 미국 사회의 정서, 문화, 전통의 차이부터 시작해서 복잡한 그의 집안 속사정, 애정과 질투에 대한 인간 내부의 치부, 페미니즘까지. 듣고 있음 하나같이 모두 수긍이 가는 말들이지만... 다 필요 없고 내 마음은 이미 윌 스미스에게 한 표다.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였기에 조금만 더 자제했음 좋았을 테지만 그런 행동을 하기 전까지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허나 그 깊은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내 눈엔 누가 뭐래도 최고의 남편이다.






내 인생 처음 윌 스미스란 존재를 알게 된 건 영화 '맨 인 블랙'을 통해서이다. 어느 주말 오후, 소개팅으로 만났던 그저 그랬던 사람에게서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연락이 왔다. 같이 영화나 보자는데 솔직히 마음이 안 내켰다. 별 호감 가는 스타일도 아니면서 그동안 연락 한번 안 온 것에 자존심이 좀 상해 있었다. 게다가 다 늦은 오후에 갑작스러운 연락으로 나가기 귀찮은 것도 그 이유였다. 끈질긴 설득 끝에 나가긴 했지만 억지로 나와줬다는 걸 굳이 표 내기 위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집 근처 극장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본 영화가 바로 윌 스미스 주연의 '맨 인 블랙'이었다. 만약 내가 당시 그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더라면 어쩜 모든 것이, 내 삶의 중요한 순간 모든 것이 다 달라졌을 게다. 하지만 이 역시 운명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채 난생처음 본 윌 스미스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푹 빠져 흡족한 기분으로 그날의 데이트를 마쳤다. 집을 나설 때의 마음과는 달리 그와 저녁밥도 먹고 커피까지 마신 후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워낙 재미있게 본 영화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만남의 끝이 내 청춘 마지막 비극이기에 좀 더 특별한 영화로 기억되어 있다. 그와의 이별 후 심경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지독스레 서로를 저주하던 부모 밑에서 못 볼 꼴 다 보고 자란 탓에 비혼을 부르짖던 내가 생각을 달리 하게 된 것이다. 그래, 결혼을 하자. 미팅은 무슨 개뿔. 중매로 선을 봐서 얼른 결혼하자.




그렇게 중매로 선을 보고 1년의 연애 같지 않은 연애 후 남편과 결혼했다. 그와 나는 같은 대학 선후배 관계였기에 첫 만남 이후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을 한동안 선배라고 불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여보'니 '자기'니 이런 말은 낯간지럽고 어색해서 싫었다. 큰애를 낳고 몸조리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 큰언니와 엄마가 있는 인천에서 한 달 정도 남편과 떨어져 지낼 때였다. 지금은 남편과의 통화가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 그것도 용건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당시는 그래도 매일 통화를 했었다. 어느 날 술이 좀 된 상태로 걸려온 전화에서 갑자기 나보고 자기를 오빠라고 한번 불러봐라 했다. 그게 뭐 대수일까 싶어 그리 불려주었더니 듣기 좋단다. 별 수고스러운 일도 아니고 듣기 좋다는데 그럼 계속 그리 해주자 싶어 선배라는 호칭 대신 오빠라는 아주 얄궂은 단어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오빠라는 호칭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좀 의아해한다. 당장 아이들이 좀 크고 나서부터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엄마는 왜 아빠 보고 오빠라고 불러?"

오빠란 호칭 뒤에 숨은 깊은 뜻을 이해하기엔 아이들이 아직 너무 어렸다.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들을 붙들고 그리 심오한 답변은 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가능한 단순하게 답해주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너는 오빠 보고 왜 오빠라고 부르는데? 오빠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깐 그런 거잖아. 아빠도 엄마보다 나이가 많으니깐 엄마가 그렇게 부르는 거야"

이렇게 대답해주니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면서도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반박하진 않았다. 맞긴 맞는 말이니깐.




사실 맨 처음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을 땐 그 단어 뒤에 숨은 다른 뜻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게 호칭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을 쯤엔 이미 모든 걸 단념한 상태였다. 그냥 몇 년을 그렇게 부르던 것이 습관이 되고 입에 붙어 있기에 계속 그리 부를 뿐이었다. 그러나 밖에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이를 색안경을 끼고 본다. 젊은 색시도 아니고 다 늙은 중년의 여자가 남편인듯한 사람보고 오빠라 하니 뭔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한 번은 거제도 공곶이를 찾았다가 그곳 안주인인 할머니가 노루 새끼를 우리에 넣고 기르는 걸 봤다. 노루 새끼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어서 신기한 맘에 뒤따르던 남편을 향해 큰소리로 불렀다.

"오빠, 오빠, 빨리 와봐"

순간 그 할머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아저씨가 아지매 오빠요?"




물론 어른들 앞에서는 가급적 남편을 찾지도 부르지도 않고 혹 그럴 일이 생겨도 애들 아빠라고 한다. 그러나 집에서는 언제나 한결같이 오빠다. 남편도 그냥 내 이름을 부른다. 다정하지도 않은 나이 50 넘은 남편이 아직 내 이름을 불러줄 때면 가끔 듣기 좋다는 생각도 든다. 이 나이에 누가 내 이름을 그리 편하게 불러줄 수 있을까. 별로 살갑지 않은 우리 부부에겐 사실 조금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찾고 부를 때만 그렇게 하지 대화하다 서로를 지칭할 일이 있을 땐 그냥 성까지 붙여서 말한다.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시작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때 OO가 그렇게 했잖아'가 아니라 '그때 O OO가 그렇게 했잖아'

성까지 붙여 서로를 지칭하는 부부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몇 년 후 큰애가 여자 친구를 소개해주는 자리가 생기면 그땐 호칭을 바꿀 생각이다. 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다 늙은 여자가 남편을 오빠라 부르면 얼마나 소름 끼칠까. 그때는 'OO 씨'라고 부를 생각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호칭만 오빠라고 부를 뿐 나는 남편에게 애교 많고 살가운 마누라는 결코 아니다. 예전엔 그러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아니다. 얼마 전 남편과 해운대에 들렀다가 한 호텔 앞을 우연히 지나게 되었다. 그러자 24년 전 어느 겨울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연애 시절 남편이 하는 행동이 하도 얄미워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었다. 소심한 방법으로 크리스마스이브날 그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일부러 한 시간이나 늦게 나갔다. 가지 않고 끝까지 날 기다리고 있음 계속 만나는 거고 만약 가고 없음 그걸로 끝내기로 나름 작정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뒷문으로 향했을 때 차창 너머로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의 호텔 정문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궁상맞은 모습으로 한껏 웅크리고 서 있었다. 추운 겨울, 바닷바람이 거센 그곳에서 별로 따뜻해 보이지도 않는 잠바 하나 입고 벌벌 떨며 서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게 어찌나 쌤통이었는지 그동안의 섭섭함이 한방에 날아가는 듯했다. 그때 얘기를 꺼내자 남편도 내게 평소 쌓인 게 많아서인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이런 소릴 한다.

"내가 그때 그냥 집에 갔어야 했었는데"

제발 좀 그렇게 하지.




그렇게 고운 정보단 미운 정이 조금 더 많이 쌓인 듯한 남편을 오빠라 부른 지 어느새 21년이나 되었다. 같은 '오빠'라는 단어지만 여기에 오디오를 살짝 덧입히면 21년 전의 '오빠'와 지금의 '오빠'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을 거다. 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을 초창기에는 단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리 불렀던 건 아니다. 물론 본인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한 것도 있지만 그때의 '오빠'는 언제 어디서나 날 지켜줄 것만 같은 듬직한 사람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였다. 그럴 거라 믿으며 아니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거라 스스로 세뇌시키며 참으로 열심히도 애정을 담아 오빠라고 불러댔었다. 하지만 지금의 '오빠'는 눈치라곤 하나 없고 사람 귀찮게만 만드는 나이차 또한 얼마 나지 않는 만만한 막내 오빠 같은 사람을 일컫는 단어가 되었다. 21년 전과 비교해보면 지금 '오빠'라고 부를 때 목소리톤이나 소리의 크기는 확연히 달라져 있을 거다. 현실 남매 사이에서 누가 오빠를 다정하게 불러.






내가 남편에게서 꿈꾸고 바라던 오빠의 모습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가 보여주었다. 깊은 내막이야 알 수없지만 그 중요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인의 아픔을 농담으로 언급하는 일에 대해 남편으로서 극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 부인을 지켜주는 듬직한 남편이야말로 나에겐 진정한 오빠다. 같은 탈모인으로 그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는 말인지 나는 잘 안다. 만약 누군가 허전한 내 정수리 머리숱을 보고 비슷한 농담을 한다 하더라도 남편은 아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거다. 나중에 내가 그 말에 기분 나빴다고 화를 내면 오히려 이런 소리나 할걸.

"그냥 웃자고 농담으로 한 소릴 가지고 괜히... 나쁜 의도로 한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이번 일로 할리우드에서 그를 손절하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와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다. 할 수만 있다면 맨 인 블랙에 나왔던 기억을 지우는 장치를 사용해서 그 짧은 순간의 모든 기억들을 세상 사람들로부터 대신 지워주고 싶다. 그저 일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해결되어 다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가 가정에서든 영화에서든 항상 행복하길 바라며 이역만리에서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윌 오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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