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고 딸애가 개학을 하자 새로운 계획을 하나 세웠다. 일주일에 하루 시간을 내어 남편과 소풍을 가는 건 어떨까 생각한 것이다. 작년에 작정을 하고 단둘이 여러 번 여행을 다녀왔었다. 큰애가 자취방을 구해 집을 떠나게 되자 이제껏 누리지 못한 많은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다. 야무진 딸애는 내가 며칠 없어도 잘 지냈다. 먹을 것을 잘 챙겨놓고 전화만 수시로 해주면 별 불만이 없었다. 물론 작년 마지막 여행 땐 무슨 여행을 그리 자주 가냐고 한소리 듣긴 했지만. 남편과 단둘의 여행은 서로에게 무뚝뚝한 우리 사이를 은근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눈치를 보아하니 남편도 나랑 다니는 걸 꽤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여행은 아무리 자주 가도 미성년 자녀가 집에 혼자 있는지라 한 달에 한번 이상은 무리다. 사실 한 번도 힘들다. 그래서 여행은 여행이고 매주 소풍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언가를 먼저 제안한 적이 거의 없는 남편에게 의향을 물어보자 20년 넘게 들어온 한결같은 소리를 한다.
"마음대로. 나는 상관없다"
그 말인즉 반대는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맘에 내키지 않으면 뒤에 '그런데'가 뒤따라온다. 주말에는 딸애 때문에 집에 꼼짝없이 있어야 하니 대신 평일에 가기로 했다. 다행히 남편은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있다. 그가 근무하는 부서는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그가 소속된 조가 출근할 차례면 밤이나 주말이나 상관없이 회사에 가야 한다. 대신 다른 조들이 출근하게 되면 남편에겐 자유 시간이 주어진 셈이 된다. 그래서 출근일을 잘 따져 하루 휴가까지 써서 계획을 세우면 제법 긴 여행도 가능하다. 평일에 가는 소풍이나 캠핑은 주말에 가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단 사람이 붐비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한층 여유롭고 뭐든 편하게 즐길 수 있다. 특히 평일 아무도 없는 휴양림에서 즐기는 우리 부부만의 캠핑은 그 자체가 바로 힐링이고 행복이다. 이렇게 항상 평일의 외출에 익숙하다 보니 번잡함은 견디기 힘들어 주말엔 주로 집에 있는다.
전업주부이긴 하지만 나름 나도 바쁘다. 수업 들으러 가는 요일이 일주일에 3번이다. 게다가 하루는 복지관에 수업을 해주러 가야 한다. 그래서 남편과 시간이 영 맞지 않을 때도 생기지만 일단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한 달에 3번 정도는 소풍을 가게 된다. 여행을 가거나 무언가를 할 땐 계획을 세우는 건 언제나 나였다. 집 밖을 나가는 것도 돈 쓰는 것도 싫어하는 남편을 끌고 나가기 위해선 그 정도의 수고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남편도 나랑 놀러 다니는 게 재밌는지 같이 의논할 때가 많다.
바로 앞전 소풍은 수렵활동에 목적을 두었다. 일단 오전에 올해 첫 쑥을 캐고 그 후 장소를 옮겨 바다낚시를 하기로 했다. 쑥 캐기 최적의 장소는 작년에 물색해 두었다. 해마다 쑥을 캐러 가긴 가지만 작년에 알아낸 곳만큼 제대로 인 곳은 없었다. 덕분에 딸이 좋아하는 쑥절편과 내가 좋아하는 들깨 가득 들어간 쑥국을 지난해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온 천지가 쑥밭이라 1시간만 캐도 비닐 가득이다.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랫동안 쪼그려 앉으면 안 되지만 남편은 나를 위해 열심히 쑥을 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좀 기특하기도 하다. 매년 부인을 위해 함께 쑥 캐러 가주는 남편은 그리 흔치 않을 거다. 아마 대부분 그냥 마트에서 사 먹자고 할걸. 키가 180센티가 넘으니 주로 올려다보지 내려다 볼일이 잘 없다. 근데 지금 보니 집에 가서 염색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흰머리 검은 머리 반반에 정수리도 꽤 허전하다. 큰 키와 잘 생긴 얼굴로 항상 눈에 띄는 사람이었는데 왜 이리 팍 삭았는지. 이젠 돈 생각 않고 본인을 좀 가꾸고 살면 좋으련만.
쑥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곧장 바다로 향한다. 우리가 가는 낚시 포인트는 대략 3군데쯤 된다. 테트라포트에 올라서서 먼바다를 향해 힘껏 낚싯대를 던지... 는 게 아니라 그저 방파제에 서서 바로 앞에 툭 하니 낚싯대를 던진다. 좀 기다려도 입질이 없음 미련 없이 장소를 옮기고 또 옮기고 그렇게 하는 게 인내력 없는 우리 부부 멋대로의 낚시 방법이다. 주로 잔챙이들을 목표물로 삼지만 그래도 한 끼 반찬은 매번 건져 온다. 낚싯대를 던져 놓고 집에서 만들어간 삼각 김밥과 컵라면을 곁들여 먹는다. 이렇게 소풍을 가면 항상 도시락을 싸 다닌다. 도시락이 빠진 소풍은 소풍이 아니라 그냥 외출일 뿐이란 게 내 생각이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배 고플 때 바로 꺼내 먹으니 시장이 반찬이란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내가 만들었지만 그 맛에 매번 감탄하며 좋은 풍경을 반찬 삼아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식사 후 마실 커피도 미리 집에서 추출해 가거나 그냥 인스턴트 봉지 커피를 이용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캠핑용 의자에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의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건 또 다른 맛이다. 모두가 아주 조금만 부지런을 피우면 누릴 수 있는 호사들이다. 물론 누군가에겐 호사가 아니라 굳이 필요 없는 귀찮음이 될 수도 있지만.
남편이 제법 큰 쥐노래미를 잡았다. 내가 잡은 게 아니라도 기분이 좋다. 누구든 잡으면 되니깐. 가만 생각해보면 이럴 땐 부부 일심동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뒤이어 나도 좀 작긴 하지만 손맛을 느낄 기회가 왔다. 남편도 기뻐해 준다. 그까지... 더 이상의 어복은 오늘 우리 것이 아니었다. 언제든 지렁이 삼천 원 치만 사서 오면 가능한 바다낚시이기에 미련 없이 철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잡은 쥐노래미를 서툰 솜씨로 회를 떠보니 6점이나 나온다. 내가 잡은 건 꼴랑 2점. 남편과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그 맛에 흐뭇해한다.
이번 주는 또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5시간 이상 산행을 생각하기에 도시락을 든든히 준비했다. 오늘의 메뉴는 소고기 분쇄육이 듬뿍 들어간 유부 초밥이다. 밖에만 나가면 계속 배가 고픈 날 위해 간식거리와 과일 도시락에 추출한 커피까지 잔뜩 챙겨 배낭을 하나씩 메고 집을 나선다. 산은 그새 벚꽃이 다 지고 그 뒤를 이어 진달래와 철쭉이 산 능선을 따라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180이 조금 넘는 남편과 160이 조금 안 되는 나는 다리 길이에서 압도적 차이가 나니 걷는 속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매번 허겁지겁 따라다녔는데 오늘은 제법 비슷하니 천천히 풍경을 즐기며 걸을 만하다. 얼마 전 소풍 가서 좀 천천히 걸어달랬더니 그래서인가 내 속도에 맞춰 걸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하고 힘든 것 같다. 무릎이 슬슬 아파오자 아무도 없는 오솔길 한쪽에 둘이 나란히 자리 잡고 철퍼덕 앉는다. 슬슬 장난기가 발동하여 과일을 먹는 남편 얼굴을 바라보며 짓궂은 질문을 한다.
"오빠, 솔직히 얘기해봐라. 이렇게 나랑 같이 매주 소풍 나오니깐 어떻노?"
이 무뚝뚝한 남자가 뭐라 할지 대충 짐작은 된다.
'뭐 어떻긴 어때'라며 쑥스러워할 거다. 아님 그런 건 굳이 왜 묻냐는 식으로 소리 없이 웃으며 그냥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든지. 그런데 오늘 의외의 말을 사뭇 진지하게 한다.
"나야 좋지"
뜻밖의 말에 기특하다 느껴져 남편 엉덩이를 두드려 준다.
"에구에구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마누라 비위 맞춰준다고 따라나서려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번 같이 다녀보니 생각 외로 재미있는가 보다.
"일어나서 다시 갈까?"
잠시의 휴식 후 남편의 손에 의지하며 다시 우리만의 소풍 길을 계속 이어간다. 다음 주는 이 남자랑 또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