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등신으로 사진 찍어주는 남자

by 코니



또 사람을 5등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진을 한두 번 찍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누구보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정작 남의 사진은 왜 이렇게 찍는 건지 참 이해가 안 된다. 작년에 큰애가 자취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아이들 키운다고 못 다닌 부부여행을 여한 없이 다녔다. 유독 사진 찍히는 걸(사진 찍는 것이 아님)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적잖은 사진들이 추억으로 남겨졌다. 허나 찍히는 사람이나 찍는 사람 모두 똑같은 위치에서 서로를 찍어주건만 그 결과물은 어째 이리 다른지. 살짝 밑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에게 요즘 사진 찍는 스타일을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말로만 떠들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찍어준 남편의 사진과 남편이 찍은 내 사진을 교재 삼아 비교해가며 비법을 전수했다. 그러나 남편은 실눈을 뜨고 곁눈질만 할 뿐 별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차이점을 잘 모르겠단다. 자기 눈엔 다 똑같아 보인다며 나보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원래 짧아서 어떻게든 안된단다. 역시 타고난 것도 중요한가 보다. 내 다리 길이? 아니 예술적인 감각이나 센스 말이다.






남편은 뭔가 새로운 것에 부딪쳐 보거나 도전하고자 하는 의욕이 그닥 없는 사람이다. 만약 조선말에 태어났음 흥선 대원군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가족들이 신문물을 접하는 걸 금했을지도 모른다. 매번 익숙하고 편안한 것, 부담 없는 것만 찾는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의견을 고분고분 따르는 편도 아니다. 여행이나 캠핑을 가면 안 가봤던 곳, 안 해봤던 것을 시도해봐야 하는데 그런 것에 항상 회의적이다. 가봤자 뭐가 있겠냐 해봤자 무얼 하겠냐는 식으로 애써 계획했던 사람 김 빠지게 만든다. 어차피 모든 것엔 처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가 흡족해하며 다시 찾는 많은 것들 중 다수는 그런 불신 속에서 내가 우겨서 이루어낸 결과물들이다. 직접 부딪혀봐야 좋은지 안 좋은지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다. 설령 결과가 맘에 안 들더라도 적어도 다음엔 다시 찾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지난달 남해로 떠난 2박 3일 캠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다가 있는 곳으로 떠나는 캠핑에서는 으레 낚시가 우리 부부의 주요 활동이다. 허접한 낚싯대를 사용하는 초보 낚시꾼에게는 안전과 편리가 보장되는 방파제 낚시가 딱인 탓에 미리 적당한 방파제를 검색해두었다. 남편은 작년 가을 제법 큰 노래미를 잡은 방파제에만 줄기차게 있으려 했지만 그날의 행운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낚시란 게 물때 등 여러 요건에 따라 잘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는 법이지 항상 잘 되는 곳은 없다. 결국 장소를 몇 군데 옮긴 후 마지막으로 밤에 볼락이 잘 잡힌다는 방파제에 가자고 했다. 남편은 캠핑을 가면 항상 저녁 전에 휴양림으로 들어가 일찍 쉬기를 원하는 사람이라 이쯤에서 마무리했음 하는 눈치다. 그러나 그리 대화가 없는 우리 부부는 밤에 별 할 일이 없어 10시쯤부터 이른 잠을 청하게 된다. 딸아이 비위 맞춰가며 애써 허락받아온 귀한 캠핑을 그런 식으로 시간 낭비하는 게 싫었다. 이번엔 꼭 밤낚시를 하고자 하니 따라는 와주었지만 썩 내켜하지 않는 그의 마음이 뻔히 보였다. 나 역시 종일 낚시에 공친 남편이 밤낚시에서도 별 수확이 없을까 신경 쓰여 마음이 편치 못했다.




물고기를 잡으면 더 좋겠지만 못 잡아도 상관없다. 고요한 바다를 바라 보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하지만 웬걸. 하루 종일 조용하던 남편의 낚시추가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 길이가 50센티는 족히 되는 대형 물고기가 걸려들었다. 우리 주위에 있는 프로 낚시꾼들의 값비싼 장비와 미끼는 다 무시하고 시원찮은 지렁이에 홀려 남편의 낚싯바늘을 물다니 고 놈도 참 특이하다. 나중에 지인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쥐노래미란다. 세상에 이렇게 큰 쥐노래미가 있다니. 사진을 본 지인들은 모두 낚싯대가 부러지지 않았냐 신기해했다. 잠시 후 작지만 난생처음으로 눈먼 문어까지 그의 낚싯대에 걸려들었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공쳤지만 막판 운이 따라 주니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흐뭇한 기분으로 휴양림으로 돌아오는 길 깜깜한 논에선 개구리들이 떼창을 하고 있다. 낮에는 좀체 듣기 힘든 마음을 편안히 어루만져주는 소리다. 차를 세워 놓고 아이들에게도 이 느낌을 전해주고파 남편과 함께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영상을 받은 딸아이와 큰애는 이게 무슨 소리냐며 재미있어한다. 이제껏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 여행 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만 떠올랐지만 이젠 남해의 어느 밤이 먼저 생각날 터이다. 평일이라 휴양림 데크에는 우리 부부의 텐트밖에 없다. 어둠이 깔린 조용한 숲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로 회를 떠서 먹는 그 맛은 우리 부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정겨운 개구리 소리며 대어에 문어까지 만약 귀찮아하는 남편의 말을 따라 그대로 휴양림으로 들어왔음 결코 경험하지 못할 것들이다.









거제도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기에 자주 가는 곳이다. 물론 다리를 건너는 대가로 왕복 2만 원의 거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자주 가는 곳이다 보니 그만큼 많은 게 익숙하다. 그래서 이번엔 가보지 않은 곳을 한번 찾아 가보려 했다. 요즘 인기 있는 사진 찍기에 좋은 동굴이 있다기에 남편에게 해 질 무렵 한번 들르자 했다. 남편은 또 시큰둥 거리며 별거 없을 거라 단정 짓고는 예전에 낚시가 잘 되었던 곳으로 가 낚시나 하길 원했다. 이번엔 내가 그의 말을 따랐으나 그 흔한 복어조차 입질이 없다. 한참을 그렇게 허탕을 친 후에야 남편은 무안한 지 동굴로 가보자며 급히 차를 몰았다. 그러나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그곳에 도착해야 하는데 이미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동굴 밖을 바라보며 찍는 사진이기에 일몰은 최고의 배경이 될 수 있다. 차를 내려서도 제법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자칫 타이밍을 놓쳐버릴 것 같아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진작 가보자는 내 말을 듣지 않은 남편 때문에 심사가 조금씩 꼬여지기 시작했다.




3개의 동굴 중 제일 사진이 이쁘게 나온다는 동굴은 바로 앞서 걸어가던 커플이 차지했다. 저녁놀이 다 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했으므로 기다리지 않고 아쉬운 나마 옆 동굴로 향했다. 역시 소문대로 사진 맛집이다. 차림새가 둘 다 낚시 복장이라 좀 아쉬웠지만 어차피 실루엣만 나오는 사진이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배경에서 남편이 찍어주는 사진들은 하나같이 또 짜리 몽땅 5등신이다. 어지간하면 적당히 포기하고 넘어가는데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저녁놀과 배경이 너무나 아까워 나도 모르게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진작 이리로 향하지 않은 원망도 담겨 있었고.

"나도 모르겠다. 못 찍겠다"

결국 남편이 짜증을 내고 동굴 밖으로 나간다.




아저씨, 내 다리를 돌리도



어째 보면 남편 입장에선 최선을 다 한 것일 게다. 까다로운 내가 그의 수준 이상의 욕심을 좀 부렸던 거지. 게다가 내가 입은 바지는 밑위가 길고 쳐져있어 힘껏 당겨 입지 않으면 다리가 좀 짧아 보이기도 한다. 놀러 와서까지 얼굴을 붉히는 건 둘 다 용납지 못하기에 적당히 화해하고 동굴을 벗어났다. 제일 좋은 동굴을 차지하고 있던 커플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그곳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냥 가려다 배경이 너무 아까워 사진 한 장을 부탁하자 반색을 하며 자기네도 찍어 달란다. 먼저 찍어주겠으니 포즈를 취해라 하니 처음 보는 사람 앞이라도 거리낌 없이 다양한 포즈를 취한다. 그들에게 아름다운 청춘의 멋진 순간을 기억하게 해 주려 열심히도 찍어줬다. 사진을 확인해본 커플은 환하게 웃으며 너무나 만족해한다. 나이 든 꾸질꾸질한 아줌마가 이렇게 멋진 사진을 찍어 주리라고는 기대를 못했는가 보다. 사실 젊고 싱그러운 커플과 멋진 저녁놀은 어떻게 찍어도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을 터이다. 다음은 우리 부부의 차례다. 좀 전 아가씨가 허리를 뒤로 꺾은채 한쪽 다리를 올리고 남자 친구와 마주 보던 모습이 너무나 예뻐 나도 따라 했건만 역시 모델과 의상에 문제가 있다. 짧은 치마에 늘씬한 다리가 포인트인데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에 뻣뻣한 몸사위는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모두에게 커다란 웃음을 던져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으며 포즈를 취한 뒤 우리 부부도 멋진 사진을 남기게 되었다.







밤에 휴양림으로 돌아와 남편과 막걸리를 한잔씩 한다. 사이다와 반반 섞은 막걸리는 달달한 게 술이 약한 나와 남편에겐 딱이다. 이번엔 낚시가 시원찮아 안주가 부추전에 번데기뿐이지만 뭐 상관없다. 동굴 사진을 화제로 안주거리가 제법 풍성하다. 이 넓은 휴양림 데크에 오직 남편과 나 둘만 이 고요를 즐기고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5월의 어느 편안한 밤, 숲 내음에 취해 바람의 감촉에 취해 그리고 사이다에 취해 기분이 촉촉해진다. 50대가 되어서야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두 남녀는 각자의 방식대로 조용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다. 동굴에서 만났던 청춘 남녀의 풋풋한 애정은 우리 부부에게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무시 못할 끈적끈적한 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사실 5등신으로 사진을 찍어주든 4등신으로 찍어주든 이렇게 같이 캠핑 다니고 낚시 다닐 수 남편이 있어 정말 감사하다. 무뚝뚝한 남편도 아마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게다. 그러나 조금 욕심을 내자면...

'오빠, 8등신까진 바라지도 않을게. 그냥 내 다리 있는 그대로 찍어 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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