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 곶감을 말리며...

게으름 극복기

by 코니

나이가 들수록 달라지고 있는 나의 모습 중 요사이 유독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 그건 두 볼에 자꾸 빵빵하게 바람을 불어넣게 하는 깊어지고 있는 팔자주름이나 앞머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이마주름도 아니다. 염색 주기를 점점 짧게 만드는 늘어나는 흰머리도 차마 맘 놓고 고개 숙이지도 못하게 하는 정수리의 머리숱도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도 당연히 날 서글프게 만드는 인정하기 싫은 현재의 모습이긴 하다. 그러나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려니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외적인 모습은 그저 당당하고 멋스럽게 늙어가면 되는 거니깐.



난 요즘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 주위에 이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그들의 증세는 나아지기는커녕 날로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들처럼 될까 봐 무섭다.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에서 돼지로 변해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마구 집어 먹던 주인공의 엄마, 아빠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돼지로 변한 줄 아니 원래 사람이었던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은 그들처럼 나도 이미 게으른 짐승으로 변한 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내가 이병에 걸린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처음에 내 몸의 움직임이 뭔가 달라졌다 느꼈을 뿐이었는데 약 한두 달 전부터 본격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껏 너무 치열하게 살아 오히려 가끔씩 쉼표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순식간에 상황이 바꿔버렸다. 이 망할 놈의 게으름병...



50대에 막 들어서 나니 게으름병의 증세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40대까진 봐주고 지켜야 하는 가족이라는 무거운 책임 내 몸 아플 새도 없이 정신력 하나로 겨우겨우 버티게 해 주었다. 내가 아프거나 지치면 누가 우리 아이들을 챙길 것이며, 특히 게으르고 아무런 생각도 없던 큰애 대학도 보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남편은 별 도움도 안 되었고. 그러나 이젠 어느 정도 그 무게가 가벼워지고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자 내 안 어딘가에 움츠려 있던 게으른 본성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늘 부지런히 해오던 것들이 언젠가부터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고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나 같은 주부의 경우 특히 밥하는 게 제일 그러하다. 매 끼니마다 뭘 해야 할지 고민한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매번 '뭘 할지 모르겠다, 할 게 없다' 이러면서도 참 성실하게도 그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 만약 10등급 아니 20등급으로 나누어 그 성적을 매긴다 해도 1등급은 당연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요즘은 장 보러 다니는 것도 귀찮다. 요란한 바퀴 소리가 나는 핸드 카트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싼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장을 보는 게 싫어졌다. 어깨, 팔도 시원찮은데 차차리 대충 먹고 말자 싶어 반찬이 점점 간소화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입맛이 까다로운 큰애는 학교 때문에 집을 떠나 자취 중이고 딸애는 워낙 식사량이 작아 신경 쓸 일도 크게 줄었다. 그래서인가? 주위에서는 나잇살이 찐다는데 나도 남편도 몸무게가 오히려 줄었다.



원래 난 꽤나 부지런하고 계획적이며 뭐든 꾸준한 편이었다. 그래, 그랬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지 가만있지는 못했으며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을 봤다. 소파 커버는 물론이고 원피스나 스커트, 그 외 필요한 것들을 부지런히 재봉틀을 돌려 내 취향껏 만들었고 시기에 맞춰 저장해야 할 먹거리들도 빼먹지 않고 준비해놓았다. 워킹맘임에도 불구하고 된장, 고추장, 김치 및 김장도 30대 초반부터 직접 담았다. 애 둘씩이나 맡길 곳이 없어 둘째 출산 후 일을 관둔 후부턴 애들 공부도 학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모두 엄마표로 시켰다. 결과물도 나쁘지 않다. 영어, 그림 등 나 자신을 위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 운동 역시 열심히 하여 아직도 출산 전 몸무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하다못해 별 바쁜 일이 없음 애들을 위해 케이크이나 쿠키를 구워 일을 만들었다. 그러나...



언젠가 인테리어 잡지에서 진소재의 천만 원짜리 일본 패브릭 소파를 본 후 청지를 사서 직접 만들었다



두 달 전부터 점점 하기 싫은 것들이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다행히 딸애는 큰애와 달리 진정한 자기 주도 학습이 가능한 아이라 신경을 덜 써도 되지만 그래도 아직 옆에서 같이 해야 하는 수학, 국어 비문학 등은 정말 하기 싫다. 열심히 해오던 영어공부도 이걸 해서 뭘 하나 싶기도 하고 비문증과 안구건조증으로 눈이 많이 피곤해져 그림 그리는 것도 힘겹다. 억지로 억지로 붓을 들고 뭐라도 그리자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비싼 종이만 날린다. 집에 있는 화초들도 내가 신경을 덜 쓰고 있는걸 눈치챘는지 그동안 정성스레 길렀던 몬스테라에 응애가 알을 잔뜩 까놓았다. 구피 어항은 마치 누군가 물에 연한 올리브색 물감을 타 놓은 것처럼 되어도 가만 놔두고 다시 읽으려고 꺼내 놓은 '연금술사'는 이제 겨우 몇 장만 읽었을 뿐이다. 지난겨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같은 긴 장편 시리즈들은 어떻게 다 읽었나 몰라.



예전엔 조금이라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자체 제작한 다이어리에다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하루 일과를 빼곡히 적었다. 그리곤 하나씩 해나갈 때마다 볼펜으로 줄을 짝짝 지워갔는데. 하루를 마감할 때 모든 스케줄에 줄이 다 쳐진 것이 확인되면 오늘 하루도 알차게 잘 보냈구나 싶어 뿌듯해했다. 그러나 다이어리를 쓰지 않은지 한 2년쯤 된 것 같다. 큰애가 고2, 고3이던 당시 아무것도 제대로 아는 게 없던 초보 수험생 엄마였던 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 지쳐버린 탓에 스스로를 너무 옥죄지 말고 여유를 좀 찾자 싶어 일부러 외면했었다.


딸애 그림으로 만든 다이어리들, 주부로서 엄마로서 참 열심히 살았던 지난날의 흔적들이다



요즘 이런 나태하고 게으른 나 자신을 바라보는 건 영 어색하고 낯설다. 솔직히 불안하기까지 하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이렇게 살면 어떡하나 싶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사육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게으른 증상이 중증은 아니라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올 것 같기도 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나만큼 부지런했던 사람도 드물었다. 어쩜 예전의 내 모습을 더듬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내가 어떻게 하루를 알차게 보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처럼 하루가 지겹다는 생각은 1도 못했던 그저 하루가 28시간이길 간절히 바랬던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그리고 하나씩 멈추었던 것들을 다시 해보기로 한다. 하다 보면 예전의 그 부지런하고 에너지 넘치는 나 자신으로 돌아와 있지 않을까? 그래, 다른 롤모델이나 지침서는 찾을 필요가 전혀 없다.






예전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대봉이나 단감을 사서 곶감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단감으로도 곶감이 되냐고 하는데 당연히 된다. 물론 대봉 곶감보다 당도와 모양새는 좀 떨어져도 가격이 저렴하여 오히려 단감 곶감을 더 많이 만들었다. 시장에서 감을 한 박스나 사 와선 껍질을 벗기고 일일이 실로 묶어 베란다에다 매달았다. 공간 부족으로 다 매달수 없는 것들은 채반에 놓고 말렸는데 행여나 바닥에 닿는 부분에 곰팡이가 생길까 봐 공기가 통하게 부지런히 뒤집어 주어야 했다. 게다가 바람에게도 중요한 임무가 있어 베란다 문은 항시 열어 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해 가을 날씨가 유달리 따뜻하면 베란다 곶감 농사는 아쉽지만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다. 아무리 농부가 열심히 하더라도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그 뜻을 따르지 않고 어기면 아파트 베란다 곶감의 대부분은 마르기도 전에 따뜻한 날씨로 곰팡이가 생겨 헛고생만 하게 되었다. 대롱대롱 매달린 감들이 얼마나 이뻤는데... 바라보는 것만으로 흐뭇해졌다. 그 후 바싹 말리기 않고 먹기 좋은 약간 말랑한 상태가 되면 그해 베란다 곶감 농사의 수확시기가 된 것이다. 지퍼백에 넣어 냉동 보관해두어 겨우내 우리 가족의 특별한 간식으로 사랑받게 했다. 그러나 이것도 큰애가 수험생이 된 후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서 멈추게 된 나의 부지런했던 과거의 한 모습이다.


10월이 오면 설레는 맘으로 부지런히 곶감을 매달았다



이놈의 게으름 병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그때를 기억하며 '곶감 만들기'로 정했다. 하지만 한 박스나 사서 깎을 정도의 마음의 준비는 아직 덜되어 집에 있는 소량의 감만 우선 깎아본다. 그것도 매달기는 또 귀찮아 그냥 채반에다 두고 말린다. 이놈의 게으름병이 본인의 위태한 상황을 짐작했는지 자기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곶감도 만들 수 있는 시기가 그리 길지 않다. 얼마 있으면 단감이 많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물러져 곶감용으로도 적당치 않고 가격 또한 올라간다. 우선 요것부터 해보고 어느 정도 부피가 쪼그라들면 얼른 감을 사서 다시 채반을 채울 요량이다. 채반에 널린 감을 보고 남편이 반가워한다.

"와, 곶감 말리네. 근데 왜 매달지는 않고"

껍질 깎는 거는 도와줘도 한 번도 줄에 매단 적이 없는 남편은 그게 얼마나 손이 가는 일인지 모른다. 물론 요즘 나오는 곶감 말리는 도구들을 구입해 곶감을 말릴 수 도 있지만 그 정도로 일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여기까지. 더 이상은 무리다. 아직까지 내 몸속의 게으름을 완전히 이길 여력은 없다. 여기까지 한 것도 나름 대견한데. 며칠 있다 만원 어치만, 딱 그만큼만 더 사서 깎는 걸로 곶감은 그만.






이제 또 부지런했던 나의 기억을 더듬어 무슨 일을 해 볼까 생각 중이다. 다행히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지난해 2월부터 멈춰버린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영어회화 원어민 수업이 다음 주부터 재개한다. 오랜만에 수업이라 뭔가 약간 설레기도 한다. 신기하다. 별것 아닌 감을 깎아 말리는 일을 시작한 걸로 이미 내 몸의 에너지가 다시 뜨거운 피를 타고 돌기 시작함이 아주 조금씩 느껴지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서서히 엑셀레이터를 밟아 뜨거운 열정으로 50대를 즐겼음 한다. 아마 30, 40대는 결코 모를 이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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