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전쯤 깎아 말리고 있던 곶감이 어느새 수확을 앞두고 있다. 감을 깎던 당시 나의 게으름은 절정에 치닫고 있었으며 그 병을 치유하고자 시작한 곶감 만들기가 어느새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원래의 목적도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고 게다가 맛 좋은 곶감까지 덤으로 얻고. 아침 햇살 머금은 곶감은 너무나 싱그런 오렌지 빛깔을 띄고 있다. 꽃만큼 아니 꽃보다 이쁘다. 곶감은 먹는 것도 좋지만 대롱대롱 매달리거나 채반에 널린 그 풍경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고 푸근하게 만든다. 앞선 글에서 이 감들이 어느 정도 마르고 나면 만 원어치만 감을 더 사서 곶감을 만들겠다 했다. 그리고 어제 정말 딱 만 원어치만 더 사서 다시 채반을 채웠다. 사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감이 조금 비싼듯해 있는 것만으로 끝낼까 생각도 했었다. 근데 아직 채 마르진 않았지만 너무나 매혹적인 먹음직스러운 빛깔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하나를 집어 들어 말았다. 그리고 그 맛은... 아니, 이렇게까지 맛있었나? 농축된 감의 진한 맛과 향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별 수고롭지도 않은 걸 그동안 왜 핑계를 대고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그 길로 밖으로 나가 만 원어치 감을 사서 자전거에 싣고 왔다. 내 안의 부지런함이 드디어 잠을 깬 것이다.
예전에 '인간극장'이란 한 TV 프로그램에서 귀촌한 어느 젊은 부부가 가을에 감을 깎아 처마 끝에 매다는 걸 봤다. 그 부부의 모습도 매달린 곶감도 모두 이뻐 나도 그들을 따라 곶감을 만들었다. 그 후 기대 이상의 만족스러운 첫 수확으로 해마다 가을이면 연례행사처럼 곶감을 베란다에 매달고서는 흐뭇해했다. 그러다 지난 몇 년 동안 큰애 대학입시 문제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자 잠시 잊고 지냈다. 그리고 요사이 점점 게을러지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해 다시 부지런해지고자 그 첫 번째 시도로 예전처럼 감을 깎았다. 사실 내가 만드는 베란다 곶감은 하나도 어렵지도 손이 많이 가지도 않는다. 감만 깎을 줄 알면 된다. 곶감을 말릴 때는 공중에 실로 매다는 게 제일 좋지만 솔직히 좀 번거롭다. 요즘 인터넷에서 팔고 있는 곶감 만드는 도구를 사용하면 감을 깎아 그냥 꽂기만 하면 되지만 굳이 짐스럽게 그런 걸 사는 것도 좀 그렇다. 그냥 채반에다 말려도 충분하다.
나도 이번엔 아직 내 안의 게으름을 채 이기지 못하고 억지로 억지로 시작한 일이라서 그냥 채반에다 널어 말렸다. 그러나 실에다 감을 묶어 매달 경우 그냥 베란다 창문만 열어놓으면 특별히 그해 가을 기온이 높지 않은 이상 별 신경 쓰지 않고도 맛있는 곶감을 수확할 수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손길이 필요 없다. 그러나 채반에 널어 말리는 건 공중에 매다는 것과 달리 바닥에 닿는 부분이 생겨 조금은 신경을 써야 한다. 세상에 마냥 수월한 건 없다.
대봉은 부피감이 있어 실에 매다는 건 몰라도 채반에 말리기엔 좀 부적합하다.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하고 납작한 단감이 건조에 더 용이하다. 크기가 큰 단감보다 중간 정도의 크기의 단감을 선택하여 깎은 후 채반에 널어 말리면 끝이다. 그 후 바닥에 닿는 부분에 바람이 안 통하여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니 하루에 한두 번 위, 아래를 뒤집어 준다. 겉면이 어느 정도 말라 지 속의 여린 것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되면 꾹 눌러 납작한 찹쌀떡 모양을 만들어 준다. 겉은 말라 있어도 속은 물컹거리기에 너무 꾹 누르면 터질 수 있으니 겉면이 터지지 않을 만큼의 힘만 가한다. 겉만 잘 마르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해 수확은 어느 정도 보장받는다. 그리고 다시 하루에 한두 번 정도 위, 아래를 뒤집어 말려준다.
어찌 보면 부모라는 자리도 지금 마르고 있는 저 곶감의 겉면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 자신이 이 세상 바람과 따가운 햇살에 맞서 굳은살이 생기고 언뜻 보기에 거칠고 딱딱해져야 그 어리고 여린 내 새끼들을 지켜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어 보이기만 할 뿐 실제로는 그다지 세지 않고 조금만 힘을 줘 누르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는 걸 아는 사람만 아니깐. 견딜 만큼은 참고 견디겠지만 심지어 내 새끼들조차도 제멋대로 날뛰며 얇은 그 껍질이 터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니...
그 후 너무 딱딱하지 않게 먹기 좋은 만큼 촉촉하게 마르면 그대로 지퍼백에 넣어 냉동 보관해서 먹으면 된다. 날씨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2주 정도면 완성될 수 있다. 혹 비가 자주 온다던지 특별히 유독 따뜻한 가을이면 여느 해보단 미흡한 수확물을 얻을 순 있다. 그리고 아파트 베란다의 경우 바람이 잘 통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으니 항상 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곳에 채반을 놔두어야 한다.
거의 다 된 상태로 하루나 이틀 정도만 더 말리면 완성이다
남편에게 맛보라고 하나 건네주자 정말 맛있다며 감탄을 한다. 이리 좋아하는데 진작 좀 할 것을. 감을 사서 껍질을 벗겨 채반에 너는 게 무슨 큰 일이라고 그동안 그렇게 게으름을 피웠는지 모르겠다. 나도 따라 하나 집어 먹어 본다. 음.... 이 진한 맛과 향을 파는 것은 도저히 따라 올 수가 없다. 햇살과 바람 그리고 나의 부지런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아무래도 감을 다시 만 원어치 더 사서 깎아야 할 것 같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까지 몇 번이나 감을 더 사서 깎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 짙어 갈수록 우리 집 베란다 곶감의 맛도 짙어지고 나의 부지런함도 다시 그 빛깔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이라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