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크리스마스 전통

by 코니

한 달 전부터 딸애가 노래 노래 부르던 크리스마스트리를 드디어 창고에서 꺼냈다. 딸애는 좀 더 빨리 트리를 꾸미고 싶다고 성화를 부렸지만 나는 들은 척 만척하였다. 원래는 12월 초쯤 트리를 끄집어내어 꽃단장을 시킨 후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바로 그다음 날 철거하여 다시 창고에 집어넣는다. 너무 냉정하다는 딸애의 불만이 해마다 반복되어 한 번쯤 딸애 소원을 들어주자 싶었다. 그래서 작년엔 딸애의 소원대로 11월 말쯤 조금 일찍 트리를 꺼내 좀 더 늦게 12월 말까지 5주 정도를 곁에 두었다. 원하는 대로 해주고 나니 예상치 못했던 일이 내게 생겼다. 크리스마스가 오기도 전에 반짝이는 전구가 주는 동화 같은 설레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 맘 속 순수한 동심의 주머니가 나이와 반비례하여 작아지고 있는 건지. 그러나 아무리 잘생긴 사람도 자꾸 보면 무덤덤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너무 오랫동안 거실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던 탓에 청소할 때도 자꾸 걸리적거리고. 트리를 다시 창고에 집어넣은 날, 뭔지 모를 후련함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올해는 내 사랑이 식지 않을 적당한 시간 동안 충분한 사랑을 주고자 딸애와의 협상 끝에 3주의 동거 기간을 정했다.




우리 집에서 1년 중 가장 큰 행사는 크리스마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든 건 바로 나이지만. 손댈 수도 손댈 마음도 없는 명절의 그것과 달리 크리스마스의 전통은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파티 때 먹을 음식과 케이크를 온 가족이 함께 만들고 식사 후 간단한 게임도 하며 작은 선물도 나눈다. 게다가 선물과 파티 준비로 내 마음은 12월 내내 기분 좋은 부산함에 빠진다. 명절이 다가올수록 느껴지는 그 묵직한 부산함과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 크리스마스날, 함께 만든 음식과 내가 준비한 선물 등으로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면 나 역시 뿌듯하고 행복해진다. 애들 선물하나 준비 않고 말없이 음식만 먹는 남편까지도 조금 덜 얄미워지고. 그래, 내가 원했던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런 거지 하며.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국제 시장과 가까운 곳이었다. 지금은 구도심 냄새가 풀풀 나며 찾는 사람마저 많이 줄어들어 국제라는 이름이 무색하지만 예전엔 정말 대단했던 곳이었다. 이웃한 남포동, 광복동과 함께 크리스마스쯤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이곳으로 다 몰려들어 수많은 인파에 그야말로 밀려갔다 밀려오곤 하던 곳이었다. 코가 찡한 추운 날씨에 별로 따뜻하지도 않았던 솜패딩 잠바를 입고 언니들과 함께 깡통시장과 국제시장을 찾는다. 이미 시장 구석구석 모든 길은 다 꿰고 있다. 국제시장 한켠에 몰려 있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팔던 가게들은 참새가 방앗간 찾듯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일시적으로 품목이 바뀌는 그 가게들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1년을 꼬박 기다려야 볼 수 있는 기쁨이었다. 지금 보면 분명 촌스러웠을 알록달록한 색상의 장식과 전구들로 채워진 가게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아름답고 신비한 세상이었다. 20대 때 배낭여행 중 독일 로텐부르크의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가게에 간 적이 있다. 정말 산타와 요정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면 꼭 그런 곳일 것 같았다. 그러나 로텐부르크의 크리스마스 가게에서 받은 감동도 별 특별한 일이 없이 그날이 그날 같았던 어린 시절, 국제시장에서 받은 12월의 두근거림에 비길 바는 못된다.




엄마는 아기자기 한걸 좋아하고 손재주 또한 남다른 사람이었다. 처녀 적 도기 공장에서 이쁜 꽃무늬를 넣던 일을 자랑스럽게 한편으론 그리워하며 내게 종종 얘기해주곤 했다. 남편만 제대로 만났음 남다른 그 솜씨로 사랑받는 엄마나 부인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상황이 그녀를 억세고 거칠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그것이 그녀의 타고난 복이니... 어릴 적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린 4명의 자녀들을 위해 그녀는 색종이로 사슬을 만들어 엮어 한쪽 벽을 장식했다. 4명 중 가장 호응도가 좋았던 나는 몇몇 허접한 만들기들로 나머지 공간을 채웠다. 달걀에 작은 구멍을 내어 속을 빼낸 후 빨간 색종이로 긴 고깔 모양의 모자를 만들어 그 위에 씌우고 약국에서 파는 탈지면으로 수염과 모자를 장식한 산타를 만들곤 했다. 돈을 주고 산 것은 딱하나, 초록색 반짝이들 위에 웃는 산타의 얼굴로 꾸며진 그 장식품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공중에 매달아 놓으면 조그만 자극에도 혼자 빙그르 돌아가곤 했다. 그 모습이 마냥 좋아 입 벌리고 한없이 바라보던 어린 나와 입 다물고 쳐다봐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너무 뚜렷이 기억이나 왠지 울컥해진다. 그녀의 남편은 아이들과 부인이 좋아하던 그 장식들을 몇 해만 못 본 척 눈감아 주고는 언제부턴가 금지령을 내렸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 뒤 맞게 된 크리스마스, 난 엄마와 국제시장에 가서 그토록 갖고 싶었던 트리와 장식품들을 내가 원하는 만큼 당장 샀다.




나와 같이 나이를 먹고 있는 트리를 보면 뭔가 모를 동지애가 느껴진다. 벌써 26번째 크리스마스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그땐 중국산이 거의 없이 대부분 made in Korea 이였기에 아직 전구도 멀쩡히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도대체 수명이 얼마쯤 되는 건지 짐작이 안된다. 하긴, 이유가 있긴 하다. 트리에서 반짝이는 전구를 보면 남편은 그걸 꼭 끄고 싶어 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자기들 기준으로 밝은데도 불구하고 전구에 불이 들어와 있다 싶으면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다. 낮에 화장실 불 켜고 볼일 본다고 어린 큰애를 여러 번 나무랐다. 창문 하나 없는 화장실은 아무리 낮이라 해도 어둡다. 문을 활짝 열고 볼 일을 보더라도 큰애는 매번 조준에 실패했다. 그 변기 주변을 수시로 청소하기 위해 수도세가 더 든다는 사실은 왜 모르는지. 다행히 지금은 새마을 운동 시절의 절약 같은 그 궁상을 더 이상 가족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만 트리의 불을 끄자'는 얘기를 어린아이들에게 여러 번 한 후 애들 역시 오랫동안 불을 켜 두면 불편해한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나 역시 지금도 남편이 없을 때나 잠들 때만 트리 전구에 전원을 연결한다. 더 이상 남편이 뭐라 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유행이란 게 있어 지금 것과는 스타일이 조금 다르지만 트리 역시 제법 풍성하고 쓸만하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해도 설치와 철거 시 바닥에 한 움큼씩 떨어지는 잎들을 보면 꼭 탈모가 있는 내 머리 같아 왠지 감정이입이 되기도 한다. 너도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해보면 이렇게 장식하는 집을 한 번도 본 적도 없었을 그리고 그의 인생에 크리스마스가 전혀 중요치 않았을 남편은 그동안 내가 만들어낸 크리스마스 전통이 어색하고 제법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12월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는 집안을 둘러보고는 똑같은 소리들을 한다. 애들 어릴 때는 본인들도 이렇게 크리스마스 용품들로 집을 꾸미곤 했는데 애들이 크고 나니 더 이상 안 하게 된다고. 사실 아이들이 어리고 나 자신도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는 애들 핑계 대고 내가 좋아서 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요사이 나 역시 딸애의 성화에 의해 겨우 겨우 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기 전 온 집안의 불을 끈 후 딸애와 함께 바라보는 트리의 불빛이 예전과 다르게 와닿음이 느껴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소파에 앉아 그 반짝이는 불빛들을 한없이 바라보며 혼자 감성에 빠지곤 했는데. 감정이 메마르고 있는 건지 몸이 게을러지고 있는 건지. 아마 둘 다 이유 일게다. 딸애가 대학 입학을 하기 전까진 이렇게 매년 트리를 꺼내고 나름 분주한 12월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커서 집을 떠나게 되면 나 역시 다른 친구들처럼 별 의미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까 걱정이 된다. 당장 올해부터 예전과 다른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한다. 학교 때문에 자취 중인 큰애가 집에 올지 안 올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남편 역시 그날 출근을 해야 한다.





남편이 내가 예전에 녹화해 둔 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한동안 보지 않아 기억이 가물가물한 거였다. 영상 속 두 살의 어린 딸애가 크리스마스 선물상자를 뜯어 안에 있던 가방과 여러 가지 액세서리를 착용한다. 그리고는 역시 선물로 받은 공주님 것 같은 손거울로 비춰가며 너무나 좋아하던 모습이 담겨 있다. 큰애는 어젯밤 산타가 왔다 가는 수상한 소리를 들었다며 폭풍 수다를 하고 있다. 그들 뒤에는 나의 오래된 친구 트리가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나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아직 부모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는 아이들이지만 나중에 그들 역시 부모가 되어 이 영상을 보게 되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릴 적 내가 꿈꾸던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그동안 나의 노력으로 충분히 이루어졌고 나름 우리 집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따뜻하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음 하는 나의 바램은 지난 시간 그들과 함께한 크리스마스를 통해 어느 정도 결실을 보았다. 딸애는 1년 중 크리스마스가 제일 좋다고 한다. 아이가 느끼고 있는 그 설레임과 행복감들은 어릴 적 너무나 갖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나의 아쉬움이기도 하다. 어릴 적 내 것이 아니었던 크리스마스의 행복이 지금 딸애의 것은 될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뿐이다. 큰애 역시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자기만의 크리스마스 전통을 만들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일지 나는 짐작이 된다. 우리 아이들 기억 속에 크리스마스가 따뜻하고 행복하게 남아 있을 수 있어 나 역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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