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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Dec 03. 2021

무뚝뚝한 다정

얼마 전 브런치에서 다정섬세에 관한 어느 작가님의 생각을 적은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본인의 아버지를 상대로 그것들에 대해 풀어 나간 글인데 다정과 섬세라... 그 소재부터 무척 산뜻하였다. 글을 읽다 보니 그런 아버지를 둔 작가님이 참으로 부럽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 25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와는 너무나 다른.




도대체 작가님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시길래  이렇게  부러움까지 느꼈는가 하면 우선, 재택근무 중이신데 맞벌이하는 부인을 위해 저녁식사를 직접 준비하신다. 여기서 이미 많은 이들의 탄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부인이 퇴근하는 시간에 딱 맞춰 공복시간을 10분을 안 넘기게 하신단다. 이건 나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별 놀랍지는 않다. 단지 부러울 뿐이지. 내가 정말 혀를 내두른 일은 따로 있다. 부인이 점심때 먹은 메뉴를 매번 미리 확인하여 저녁에도 똑같은 걸 먹게 하지 않는 꼼꼼함을 보이신다. 나는 가끔 저녁밥을 먹을 때 딸애에게서 이런 소리를 듣는다.

"오늘 학교 점심 급식에도 이게 나왔는데... " 

그러면 그저 그런가 한다. 그렇다고 내가 무던하고 꼼꼼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다. 메뉴가 겹치는 일이 생기지 않게 급식표를 일일이 확인할 만큼의 그런 치밀함까지는 없을 뿐이다. 그리고 한 번쯤 같은 메뉴를 두 번 먹어도 별 대수로운 일은 아니니깐. 집에 있는 나는 어떤 때 식구들 남긴 걸로 매번 같은 걸 먹을 때가 허다하다. 아울러 그분은 부인의 요리사에 이어 6년 넘게 마사지사까지 자처하여 하루도 빼먹지 않고 그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시단다. 부인만 챙기는 게 아니라 온 동네 길고양이의 집사가 되어 일일이 사료와 물을 챙겨주신다. 그리고 일일이 이름을 붙여 구별까지 하시면서.




이쯤 읽다 보면 작가님의 아버지는 꼼꼼함과 다정함을 동시에 겸비한 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솔직히 작가님뿐 아니라 그런 남편을 둔 어머니마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나의 전생의 죄는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지면서. 그러나 의아하게도 작가님은 그녀의 아버지가 다정하지는 않은 분이라 단정 짓는다. 이유인즉 다른 사람의 얘기를 귀담아듣는  좋아하지도 않고 들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낸단다. 그리고 감정의 기복이 없어서 호들갑이나 주접은 물론 드라마 보면서 눈물짓는 건 상상도 못 하는 분이기에. 나는 그다지 다정한 사람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다른 사람이 날 다정하지 않다고 평가한다면 꽤 억울할 것 같다. 그리고 만약 우리 남편이 드라마를 보며 우는 걸 보게 되면 참 정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보단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될 것 같다.




구구절절 글을 적는 나와 달리 작가님은 깔끔한 글솜씨에 문장력마저 뛰어난 분이다. 덕분에 글을 읽는 동안 나의 머릿속엔 그녀아버지가 만들어내시는 풍경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그려졌다. 추운 날, 따뜻한 실내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호호 불어마시는 핫초코처럼. 27년 동안 그분의 딸로 살아온 작가님이 정확하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다정함의 평가는 동의할 순 없다. 아마 뜨거운 피를 가진 작가님 나이대의 평가 기준이 아버지 나이대와 비슷한 나의 것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아버지의 행동들에서 아내와 고양이에 대한 다정함이 뚝뚝 흐르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뚜렷이 보인다. 아무리 섬세하고 꼼꼼한 사람도 다정함이 결여되어 있결코 수 없는 일들이다. 단지 다정이 살가움이란 옷을 입고 있지 않은 것뿐이지. 진정이 담겨 있지 않은 살가움에 다정이란 이름을 붙이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내게 있어서 다정함이란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촉각을 세우고 적절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것보단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편안함을 변함없이 선사해주는 것이다. 




이쯤 되니 도대체 어디까지가 다정이고 어디까지가 섬세인지 혼자 생각하게 된다. 두리뭉실하게 섬세라는 단어 하나로 전부를 대신하기엔 그 친척 격인 꼼꼼과 예민의 영역도 적잖이 크다. 비슷한 것 같지만 그것들이 진가를 발휘하는 영역은 확실히 다르다. 부족한 내 생각엔 꼼꼼은 주로 일적인 부분에서 밀함과 함께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다. 여기서 일이라는 건 바깥 업무뿐 아니라 집안일, 인간관계, 공부, 취미생활 등까지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이런 부분에서도 꼼꼼은 자기 역할을 크게 다. 예민은 감정적인 부분 혹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feeling이 요구되는 부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같다. 꼼꼼과 예민의 가장 큰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꼼꼼에는 feeling이 그다지 필요치 다. 한편 섬세는 예민과 꼼꼼이 함께 있어야 감지될 수 있는 것인데 그래도 feeling적인 부분이 반드시 밑바탕이 되어야  찾아볼 수 있다. 내 기준으로 작가님의 아버지는 다정과 꼼꼼의 지수가 높으신 것 같다.




남편분을 몹시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한 언니가 있다. 언니는 이런 소릴 가끔 한다. 본인의 남편은 다 좋은데 딱 하나 단점이 너무 예민한 거라고. 예민해서 생일, 결혼 기념일등 이런 건 모두 잘 챙겨서 너무 좋은데 한 번씩 별일 아닌 것에 너무 예민하게 굴어 그게 하나 단점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예민한 남편의 의외의 모습을 봤다고 한다. 한 번은 언니가 눈썹 문신을 하고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첫날이라 짱구 눈썹처럼 보였단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분에게 먼저 선수를 쳐 뭔가 달라져 보이는 것 없냐고 물어보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단다. 당연히 예민한 남편이기에 눈썹 문신을 알아차릴 줄 알았는데 한참을 언니 얼굴을 바라본 후 남편분의 답변인즉

"머리 잘랐나?"

언니의 남편분은 섬세함이 조금 없으신 걸로...




그런데 꼼꼼, 예민, 섬세 이런 것들은 숨기려야 잘 숨겨지지 않을뿐더러 상대방이 정말 무딘 사람이 아니면 얼마 안 있어 결국 들통이 난다. 그에 비해 다정은 척하기가 매우 용이하다. 주위에 보면 다정하지 않으면서 다정한 척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인간은 원래 약아서 자기에게 득이 될 것 같은 사람에겐 친절을 베풀고 다정하게 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모두 사라지고 온전히 인간관계만 남게 되면 더 이상 다정은 필요성을 잃게 다. 만약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다정함을 느끼기 위해서 나 자신이 스스로 반드시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이 달아오르는 사랑을 할 땐 이런 얘기 자주 한다.

"그이는 내게 너무 다정해요"

하지만 그 사랑이 식어버리고 긴장감이 사라져 버리면 그 다정함 역시 서서히 빛을 바라게 된다.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란 노랫말처럼 다정한 사람이 아니라 다정했던 사람이다. 이처럼 다정은 운동성과 방향성이 있다. 언제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상대방과 내가 보여주는 다정함이다. 변치 않는 다정함이 있다면 바로 부모가 자식에게 보여주는 그것이 아닐까. 부인이나 남편에 대한 다정함도 사라지기 쉽다. 그러기에 작가님의 아버지가 부인에게 보여주는 한결같은 모습은 꼼꼼함에 다정이 잘 조화된 모습인 게다.




사람마다 다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다를 것이다. 겉만 번드르르한 겉절이 같은 다정과 달리 무뚝뚝한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묵은지 같은 다정은 나이가 들어 사람도 숙성이 되어야 잘 보이기도 한다.(물론 겉절이도 맛있긴 하지만) 무뚝뚝한 다정함이라니 모순 같기도 하지만 더 이상 호들갑스러운 다정에 현혹되지 않는 나이가 되어 한편으로 이 나이가 고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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