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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Dec 29. 2021

사랑한다고 존경까지 하진 않아요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멈춰진 원어민 영어회화수업이 약 2년 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언제든 상황이 나빠지면 다시 휴강될 수도 있기에 하는 동안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나 계인지 모르겠지만 성격 탓에 그리 쉽지는 않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긴 위해선 어느 정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얼굴에 철판을 깔고 끊임없이 대화에 끼어들어 엉터리 영어라도 자꾸 뱉어야만 한다. 적극성과 주착스러움 게다가 뻔뻔함까지 모두 적은 비용으로도 영어실력을 늘리려면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들이다.




 나의 경우 몇 년을 이 수업을 듣고 있지만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선 주어진 순서에만 가까스로 입을 떼곤 다. 그러다 보니 누가 봐도 못하지만 참 열심히 다니는 사람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렇게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서는 정말 틈만 나면 고 나와 다른 사람 순서까지 막아버리는 말 많은 사람들을 향해 속으로 끊임없이 투덜대곤 했다. 영어로만 하는 수업이다 보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지라 한두 명을 제하고 나면 대화의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런데 정말 무슨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그럼 너도 그렇게 떠들어. 그냥 가만있지 말고. 우리가 여기 영어로 떠들려고 왔지 너처럼 가만있으려고 왔냐?'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그렇게 떠들어대는 것도 어느 정도 실력은 갖추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들  못하지만 영어로 말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오는 건데 조금씩 시간을 나눠서 하면 참 좋으련만.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구석에 앉아 구시렁대기만 나에게도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만한 일이 생겼다.




지역 주민센터에서 하는 수업이라 수업료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다른 곳에 비해 강사가 수업을 잘 진행하여 항상 인기가 많은 강좌였다. 수강신청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신청하지 않으면 이미 마감되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다시 수업이 재기되면서 강의실 밀집도를 고려해 소리 소문 없이 단 14명만 수강신청을 받았다. 늘 그래 왔듯 수업이 몇 주 지나다 보면 신규 회원들은 좀 힘들어하며 중도 포기를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결석하는 사람들까지 있어 요즘은 항상 10명도 안 되는 소수 인원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수업이 모두 영어로만 하니깐 처음 오시는 분들이 어려워서 많이 포기하는 것 같아요."

"특히 우리 선생님 수업이 다른 곳에 비해 하이 레벨이라서."

쉬는 시간, 수업 듣는 인원이 너무 줄어든 것에 대해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

"나 같은 사람도 포기 안 하고 다니는데..."

겸손한 척 나도 한마디 거든다. 누군가 내 말에 대꾸를 한다면 이런 말을 들을 것을 기대하면서.

'코니 정도면 잘하는 거지"

솔직히 수업이 멈춰진 2년 동안 쉬지 않고 나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터라 수업이 굉장히 잘 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전에는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면서 그저 알아듣는 척하느라 많이 피곤했었다. 지금도 물론 강사가 흥분해서 빨리 말하거 호흡이 가빠질 때면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때 A가 무시해도 될 내 말에 굳이 정말 굳이 응수를 다.

"그래, 그렇게 그냥 다니면 되는데 사람들이 그 고비를 잘 못 견디는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소리래? 그러니깐 내가 영어를 잘 못하지만 묵묵히 그냥 잘 다니고 있다? 힘들고 부끄러워하는 시기를 꿋꿋이 견뎌 지금은 만성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에 잘 나온다? 눈치 빠르고 속 좁은 나는 A의 말에서 그녀가 아울러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나의 영어 실력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면 A의 말에 어느 누구 하나 반박하지 않았으니깐.




A는 수업시간 그렇게 많이 떠들어대지는 않는다. 하지만 밝고 적극적인 성격 탓에 한마디를 해도 항상 에너지와 존재감이 느껴진다. 어학에 관심이 많아 다른 언어도 배우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A의 영어 실력도 나보다 그리 나은 편은 아니다. 단지 성격의 차이일 뿐이지.




뭔가 달라져야겠다 다짐한다.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리 나대는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인상을 심어주면 좋겠지만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수업을 듣는 목적도 그게 아니다. 게다가 나만 많이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것에 너그럽다. 이제부턴 나도 주착스럽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댈 수 있는 만큼 나대자 굳게 마음먹는다. 다른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수준만큼은 나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싶었다. 자리부터 바꿔야 했다. 구석은 더 이상 나의 자리가 아니다. 한 번은 조금 늦게 왔더니 내가 앉던 구석자리를 누군가가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강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자리가 주는 용기가 있었다. 평상시보다 훨씬 많이 떠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 앞자리는 나의 고정석이 되었다.






그날 원어민 강사가 던진 질문은 'gratitude'에 관한 거였다. 감사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3가지나 말해 보란다. 그러면서 맨날 너무 쉬운 질문이라며 생각할 시간을 1분 주겠다 했다. 세상에... 한국말로 발표하라고 해도 생각을 다듬을 시간이 그보다 더 필요한데 어떻게 영어로 말하면서 그 시간에 모든 걸 정리할 수 있는지. 모두들 무리라는 듯한 표정을 짓자 선심 쓰듯 1분을 더 준다. 누가 먼저 발표하겠냐는 말에 항상 준비가 되어 있는 메디테이션 아저씨가 먼저 하겠다는 듯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는 일흔은 족히 넘은 걸로 보이는데 절대 본인의 나이를 밝히진 않는다. 발음도 조금 알아듣기 힘들고 문법도 신경 안 쓰고 심지어 다른 사람 말은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평소 항상 'meditation' (명상)을 강조하여 모두들 그를 메디테이션 아저씨라 부른다. 게다가 얼마나 영양제를 사랑하는지 아침 뭘 먹었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꼭 아침에 먹은 영양제들을 나열한다. 누군가 하루에 몇 의 영양제를 먹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그 수를 다 기억 못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영어로 말하는 걸 집중해 들어보면 나이에 비해 상당히 많은 양의 수준 있는 단어를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유머가 있는 재밌는 이기도 하다.




메디테이션 아저씨부터 시작된 답변은 옆으로 옆으로 다음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A차례가 되었고 그녀는 이 시국에 다른 회원들과 함께 건강하게 수업을 참여할 수 있는 것과 초등학생 아들이 아침마다 1시간씩 독서를 하는 점 그게 참 감사한 일이라 했다. 강사가 하나를 더 말해야 된다고 하자 A는 고민을 하더니 가족들이 모두 건강해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때 갑자기 메디테이션 아저씨가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Do you respect your husband?"

갑작스러운 엉뚱한 질문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지만 어째 보면 왜 남편에 대해서는 감사한 생각을 갖지 않느냐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그녀는 당황해하며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의 성격에 꼭 맞는 장난기 가득한 답변을 내놓았다.

"He is just my son's father."

모두들 큰소리로 웃었지만 난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치고 나올 타이밍이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치고 나오지 않게 틈을 보이지 않고 메디테이션 아저씨에게 당신은 부인을 존경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존경한다고 했다. 어떤 점에서 존경하냐 물었더니 뭔가 말을 하는데 어째 질문을 한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대충 사랑하니깐 존경한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했지만 언뜻 수긍이 안 갔다. 다시 그에게 그럼 존경과 사랑의 차이점이 뭐냐고 했더니 다시 길게 뭐라 하는데 역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때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 출신의 B가 본인도 그의 말을 동의한다며 사랑과 존경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면 존경은 절로 따라온다고 하였다.




메디테이션 아저씨가 부인을 존경한다고 말한 건 사실 의심의 눈초리가 좀 간다. '존경'이라 같은 소리로 발음하지만 각자 다른 뜻으로 해석하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싶기도 하다. 때때로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더 이상 상세 설명이 어려워 의도와 달리 자신에 대해 그냥 적당히 좋은 사람인 것 같은 수준에서 대화를 급 마무리할 때도 나의 경우 가끔 있기도 하니깐. 하지만 B의 말과 평소 남편에 대해 잠깐씩 수업 중 언급한 걸 종합해보면 B는 남편을 진정 존경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남편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제껏  명을 봤다. 그리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듣기 참 좋다. 하지만  사랑하면 존경하게 된다는 말에는 쉽게 수긍이 안된다. B의 경우 다행히 사랑하는 사람이 존경까지 할 만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지 않나. A가 우스갯소리처럼 남편에 대해 말한 것처럼. 내가 내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을 존경하지는 않듯이 사랑과 존경이 분리 가능한 경우가 얼마든지 많다. 존경은 안 하지만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은 안 하지만 존경할 수도 있다. 내가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을 꼭 사랑할 필요까진 없으니깐. 게다가 존경이 포함된 사랑이 그렇지 않은 사랑보다 더 낫다고 결코 말할 수도 없다. 물론 자식을 존경하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이래저래 부족하나마 내 새끼니깐 죽을 둥 살 둥 사랑하는 거고 그렇기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게 아닐까.




나 역시 남편을 존경까지 하지는 않는다. 아울려 남편이 날 존경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평소 서로에게 대해 가지는 마음이 뻔한데 어딜 가서 존경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가식이고 위선이다. 단지 서로 존중해주길 바라고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아침마다 가는 숲 산책에서 산아래 절이 보이면 항상 두 손을 합장하고 기원한다.

'남편과 저, 서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라며.

'서로 존경하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결혼생활이 30년을 이미 넘은 B의 경우 어쩜 서로에 대한 존경이 그동안 그들의 사랑을 더 지속적이고 결속력 있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정말 사랑이 그들을 서로 존경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경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사랑이란 틀에 끼워 맞춰 서로를 인내하고 받아주는 대부분 부부들의 흔하디 흔한 질경이 같은 이 내게 더 대단하게 와닿는 건 사실이다. 글쎄... 평소 남편에 대해 전생의 죄를 운운하던 나에게 건네는 그저 안타까운 위로일 뿐일까?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Absolutely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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