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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Jan 02. 2022

오십 대가 되면 달라지는 게 뭐 있냐고?

2021년 마지막 영어 회화 수업이 막 끝난 순간이었다. 그날따라 옆에 앉아 파트너가 되었던 A가 내게 장난스레 인사를 건넸다.

"언니, 내년에 봐요"

항상 이맘때가 되면 며칠 있다 다시 보겠지만 그새 해가 바뀌는 바람에 마치 1년이나 지나 보는 것처럼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맞네, 내년에 보게 되네. 제 자기도 오십이 되는구나"

순간 A가 정색을 한다.

"언니, 저 아직 오십 아니에요. 마흔아홉이 돼요!"




아차 싶었다. 매주 수업시간 때마다 A가 오십이 되면 일어 공부를 시작할 거라 떠들어대는 바람에 새해부터 일어 공부를 려고 하는 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A는 해가 바뀌면 마흔아홉이 되는 거였다.

"아, 미안... 내가 착각했네"

A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언니, 오십 되면 뭐 달라지는 게 있어요?"

마치 내가 A가 오십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오십이 되었으니 이제 곧 큰일이 일어날 거라 미리 일러 주려고 했던 것처럼 따져 묻는다.

"아니,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앞에 숫자가 달라지니..."

정색을 하는 A를 보자 무안해져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당황했다. 그 짧은 순간에 나의 50대 인생에 대해 얘기할 겨를 역시 없었을뿐더러 그런 얘기를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도 아니었다. 같이 강의실을 나섰지만 평소와 달리 A는 먼저 가보겠단 말도 없이 쌩하니 다른 사람을 부르며 앞서갔다. 나이를 한 살 많이 부른 게 무슨 큰 실수인가 싶기도 하지만 A입장에선 아직 오십 대가 되기까지 자그마치 1년이나 남았으니 화들짝 놀랄 만도 하다. 그러나 내가 48을 49로 잘 못 알고 있었다면 아마 그는 그렇게까지 반응하진 않았을게다. A의 태도에서 난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오십 대가 되는 게 두려운 거다.




2년 전 이맘때가 떠올랐다. 내 나이 마흔아홉, 며칠 있다 해가 바뀌면 오십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큰애는 대입 수시에 몽땅 떨어지고 수능 시험마저 역대 최악의 점수를 받아와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정시 지원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난 아이를 학원 하나 보내지 않고 어려서부터 쭉 같이 공부해왔으며 입시 컨설팅이나 다른 어떤 도움 없이 직접 큰애의 모든 입시를 준비했다. 만약 애가 대학에 떨어지면 모든 원망은 다 나의 몫이었다. 게다가 담임 선생님이 수시 지원에서 한 곳만 경영학과에 교과 전형으로 넣자고 하는 걸 수시 납치되고 싶냐고 결사반대했다. 그러고는 큰 애가 원래 목표했던 곳에 모두 넣은 후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수시에선 다 떨어졌지만 정시에선 어째 가능성이 좀 있어 보였다. 수학만 잘하던 큰애는 하늘이 도왔는지 그해 역대급 어려웠던 수능 수학 덕분에 상대적으로 높은 표준 점수로 다른 부족한 과목들을 다 커버할 수 있었다.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이는 2곳을 선택해 교육청에서 무료로 지원해주는 대면 입시 상담을 받아보았다. 역시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들었다. 본격적인 면접 준비에 앞서 면접 학원을 알아보니 큰 학원들은 이미 마감되었고 마감이 덜 된 좀 작은 학원들은 어째 전화상담부터 내 성에 차지가 않았다. 게다가 수강료는 또 왜 그리 비싼지. 라리 내가 직접 하자 싶어 결국 큰애와 둘이서 하나씩 준비를 해나갔다. 우선 면접용 책을 하나 고른 다음 남편에게 인터넷 주문 좀 해달라 부탁했다. 하지만 상황판단이 안 되는 구두쇠 남편은 2만 원도 안 하는 책값 아끼겠다고 종이책이 아닌 e-book을 주문하는 건 어떠냐고 해서 내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 게다가 애라도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따라주고 같이 열심히 면접 준비를 하면 괜찮은데 큰애는 더 이상 나랑 같이 뭘 하는 걸 싫어했다. 그동안 엄마랑 같이 공부하면서 진절머리가 난 것 같았다. 나중엔 그냥 담임 선생님 말대로 경영학과에 지원했음 됐을 건데 하며 날 원망할 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애 입시에 나 몰라라 전혀 도움이 안 되던 남편, 생전 안 해본 공장 알바까지 그 시점에 시작하고선 나에게 온갖 짜증을 다 부리던 큰애... 하지만 불합격되면 모든 책임과 비난은 오롯이 나에게로 향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당시 내 마음은 항상 100k 이상의 돌이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해가 바꿔 오십이 되면 어떻게든 결과가 날 거고 그냥 욕심부리지 말고 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면 된다. 큰애는 재수는 죽어도 안 한다 했으니 정시 지원 3곳 중 어느 하나에는 합격할 거고 거기까지가 큰애와 나의 복이려니 생각하자. 나는 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니깐'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내가 일을 관둔 6살 때부터 아이가 19살이 될 때까지 같이 한 대장정의 순간들이 별 성과 없이 끝날 수도 있겠다 싶으니 울적해지기도 하고 뭔가 내 인생이 너무 억울했다. 당사자인 아이를 포함해 옆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남편도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헛고생을 내가 도대체 왜 한 걸까? 차라리 내 행복을 위해서나 살 것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가는 오십이 하루빨리 되길 진심으로 바랬다. 누가 옆에서 이제 곧 오십이 될 건데 어떠냐고 물으면 난 오십이 되길 너무너무 바라고 있다며 하루빨리 오십이 되면 좋겠다 했다. 오십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건 새로운 설렘이었고 이제껏 고생한 나에게 주어질 보상의 시간들이 될 것이 확실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정시 세 곳에 모두 합격했고 지금은 모든 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아직도 난 당시를 잊지 못한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울컥 해진다.




이제 해가 바꿔 오십 둘이 된 나의 지난 2년간의 시간들은 어떠했을까? 과연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설레고 나를 위한 보상의 시간들이 되었을까? 그래, 정말 그랬다. 아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오십이 되니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게 되었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오긴 오는구나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요즘처럼 가족이란 굴레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간 적이 없었다. 큰애는 학교가 있는 도시로 독립이라 좋다고 떠났지만 나 역시 나랑 너무 생활습관이 다른 큰애에게서 독립이 되었다고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가장 힘든 숙제를 하나 끝낸 듯한 기분이었다. 그 큰 해방감에 오히려 방학이나 명절 때 큰애가 집에 온다 하면 갑자기 급 우울해질 정도다. 야무진 둘째는 지난가을부터 혼자서 공부하기로 해서 이젠 지긋지긋한 수학 미적분도 더 이상 안 풀어도 된다. 인강도 들을 필요가 없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ebs 영어 선생님을 볼 일이 없어 그게 좀 아쉽다. 아이들 없이 남편과 단둘이 여행도 맘껏 다녀왔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여행 스타일이 다르기에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행은 항상 신경이 많이 쓰인다. 혹시 재미없다 하지 않을까, 배 고프지 않을까, 다른 뭐가 필요한가 계속 아이들에게 주파수를 맞추느라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과 단둘이 가는 여행은 그야말로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었다. 남편도 그동안의 나의 노고를 어느 정도 알아주고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라 한다. 큰돈은 없지만 그동안 열심히 아끼고 산 덕에 하고 싶은 건 다 못해도 하기 싫은 건 안 해도 될 정도는 된다. 더 이상 무얼 더 욕심낼까? 이만하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오십 대에 거의 가깝다. 갖은 의무에만 둘러싸여 살얼음을 걷는 것만 같았던 마흔아홉 적 나의 삶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싶다.




스물아홉 때는 서른이 두려울 것이고 서른아홉에는 마흔이 그리고 마흔아홉에는 오십이 두려울 수 있다. 십 년 동안 사용해야 할 새롭고 낯선 타이틀이다. 마흔은 계속 서른아홉과 함께길 바라며 마흔아홉과 같은 사십 대임을 억울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흔아홉은 어떻게든 사십 대의 타이틀을 하루라도 더 지니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아직은 좀 까마득하게 여겨지나 오십 아홉이 되면 육십이 되는 그 순간이 두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나는 이미 지난 시간을 통해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나의 사십 대는 비록 힘들고 치열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내 역할을 묵묵히 해왔다. 어차피 겪어야 될 일들이면 피하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해 왔다. 내가 맞이 할 오십 대의 모습은 그 과정을 준비하던 사십 대에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역시 언제가 맞이 할 육십 대의 모습도 지금 내가 오십 대를 어떻게 꾸려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준비가 철저히 잘 되어 있음 두려울 게 없다. 오히려 기다려지는 새로운 설렘일 뿐이지.




아마 A는 이해하길 힘들 거다. 결혼이 늦은 탓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들도 자녀의 나이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아직 까마득한 아이를 놔두고 뭘 준비하고 대비한다는 게 실감이 잘 나지 않을 거다. 오십이 되어도 아직 아이가 초등학생이니 그저 나이 드는 게 두려울 수 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하교할 때가 되면 아파트 놀이터는 아이들과 엄마들로 어느새 가득해진다. 그 곁을 지나갈 때면 난 항상 그들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그들이 젊음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인제부터 모두들 고생 시작이겠구나. 부럽겠지만 나는 이미 많은 걸 마무리해놨거든. 숙제가 거의 끝나가. 언제쯤 되면 당신들도 나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맞이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 2022년의 마지막 영어 수업, A가 다시 내게 오십이 되면 뭐 달라지는 게 있냐고 묻는 그 순간이 오면 이젠 당황하지 않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사십 대에 비해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한데. 그전엔 그저 상상만 하던 순간들이야. 단, 그건 자기가 사십 대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달려 있지. 오십 대를 위해 사십 대를 열심히 보낸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이란 걸 잊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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