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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Jan 22. 2022

그런 날



그런 날이 있다. 이 세상에 나만 홀로 뚝 떨어져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차마 그 선을 넘지 못하고 끝없는 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아무도 나보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슬프고 외롭고 우울하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처량한 감정 속에 그냥 나를 가둬둔다. 만약 예술가라면 이 모든 감정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있겠지만 그런 축에 끼지도 못하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저 하루 종일 기분만 다운되어 있을 뿐이다. 웃고 떠드는 무리 사이에 끼지도 못한 채 몇 발짝 떨어져 그냥 입을 꼭 다물고 이 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길 조용히 기다린다.




이럴 때 날 잘못 건드리면 된통 당하게 된다. 주로 그 대상은 남편이다. 그래도 제일 만만한 상대인지라 다른 데서는 아무 소리 않고 있다 남편이 조금만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나 행동을 하면 겨우 억제시킨  감정들이 터져 나오게 된다. 2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남편 대한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이 꾹꾹 눌러 쌓여 만성 화병이 되어있는 늘 위태위태하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놓고도 한 번씩 속에서 욱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 요즘은 그리 달갑지 않은 시댁 일로 심사가 꼬여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내가  도움을 줄 거도 아니라서 그냥 상황만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남편에게 가장 많은 불똥이 튈 게 뻔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 괜히 마음만 심란하던 터다.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데 남편은 두 번 다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일을 또다시 하고선 눈치 없이 내게 보고까지 한다. 속이 확 뒤집어진다. 도대체 내 전생의 죄는 뭘까. 우울한 감정이 점점 몸집을 부풀려 서서히 날 압도하기 시작한다.


 


이럴 땐 왠지 졸린다. 신경 많이 쓰이는 일이 있거나 우울하고 슬플 땐 그만 생각하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라고 몸이 알아서 신호를 보내준다. 전기장판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는다. 몸이 그대로 녹아내리는 것 같다. 마음도 따라 좀 누그러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다시 울적해진다. 지금 이 순간 날 위로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전기장판의 따뜻함이라니. 뭔가 서럽고 억울하다. 가만히 누워 도대체 왜 이리 기분이 가라앉게 되었는지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본다. 그래, 맞다. 오늘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그래서 혼자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구나.




외로움, 아주 오래전부터 내 마음의 한구석을  녀석이 크게 차지하고 있다. 평소에 모습을 숨기고 있다가 한 번씩 불현듯 나타나면 오늘같이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든다.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점일 게다. 별일 아닌 일에도 쉽게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하지만 남편도 아이들도 그리고 내 주위의 아무도 내가 그런 줄 모른다. 다들 내가 씩씩한 줄만 안다. 한 번씩 내 속의 말하지 못한 깊은 외로움들을 밖으로 뱉어 내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말수가 적은 묵직한 사람도 아닌데도 정말 내 안의 지독한 외로움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말할 수가 없다. 그냥 속 시원하게 다 뱉어버리고 전기장판이 아닌 그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외로움은 짙을 대로 짙어진 채로 날 꼭 감싸 안는다. 나 역시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풀에 지칠 때까지 그대로 안겨 있는다.




푹 잔 거 같다. 이럴 때 항상 제법 오래 잔다. 하지만 자고 나도 여전히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누워서 다시 생각해본다. 우린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는데, 심지어 노래 가사에도 사랑과 이별만큼 많이 다루어지는 소재인데, 혹시 나만 외로움에  감싸 진 것 같은 유난을 떨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아마 누구나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외로움의 보따리를 마음 어딘가 하나씩 갖고 있을 거다. 나만 상처 입은 패배자 인양 이리 우울해 있을 필요는 없다. 그나마 이럴 땐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도 알고 있지 않은가. 끊임없이 내 속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토닥거려주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그랬구나. 괜찮아. 아마 나도 그럴 거 같아. 난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사실 혼자만의 대화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공감을 받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남편과의 대화는 외롭게 만든다. 내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고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내속의 것들을 털어놓아 봤자 오히려 외로움만 더 커지고 뜻하지 않은 상처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20년 넘게 남편과 살면서 깨달은 것들이다. 비단 남편뿐만 아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그런 사람임이 감지되면 늘 입을 닫게 된다. 하지만 내 속의 어두운 감정들은 뱉어져야 하고 비워져야 한다. 그래야 괜찮아진다. 결국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써보기로 한다. 앞서 '그 집 앞'이란 글에서도 더듬고 싶지 않던 어린 시절 기억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다 보니 뭔가 치유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  




두 시간 만에 방에서 나와 가장 먼저 시선이 향한 곳은 딸애의 방이다. 지난주에 방학식과 졸업식을 동시에 한 딸애는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열심히 공부 중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도 스터디 카페 같은 곳에도 다니지 않는 아이는 3월 고등학교 입학 전까진 꼼짝없이 집에서 혼자 공부해야 한다. 그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데 딸애는 기특하게도 잘하고 있다. 계획을 세우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열심히 하고 있다. 심지어 힘들다고 위로해달라고 내게 투정 부리지도 않는다. 졸업식날, 준비한 케이크에 촛불을 끄기 전 아이는 잠시 기다려 달라더니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무슨 소원인지 물어봐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어떤 건지 짐작할 수 있다. 저 어린것도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에서 어떤 감상에도 빠지지도 않고 묵묵히 잘 이겨내고 있는데 딸애보다 몇 배나 나이 많은 내가 이러고 있음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슬픈 내 감정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사실 나 역시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자칫 상대방을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 수도 있고. 결국 나의 외로움은 나 스스로 풀기로 한다. 이제껏 그리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더 따뜻하게 토닥여 줄 것이다. 그리고 이 우울한 기분을 글로 표현하다 보면 나름 괜찮은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고. 그래도 외로움이 감당 안될 땐... 그땐 남편이 있지 않은가. 남편에게 짜증을 부릴지 같이 낚시나 가자고 할지 내 변덕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독한 외로움이 날 감쌀 땐 눈치 없고 공감능력 점인 남편이 그래도 도움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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