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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Apr 29. 2022

제발...  절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될까요?



지난 3월, 지역구에서 진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당구 수업이 있었다. 당구란 게 남자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지만 솔직히 대부분의 여자들은 특히 나 같은 중년의 여자는 당구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좀 어색하다. 마침 구청에서 그것도 무료로 진행한다기에 빛의 속도로 온라인 신청을 했고 운 좋게 수강 신청에 성공하였다. 그렇다고 무슨 큰 그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뭔가 새롭고 재밌는 걸 해보자 생각하던 참에 그 강좌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지 원래 당구에 관심이 있었던 건 전혀 아니다. 몸을 움직여하는 건 뭐든 제대로이지 못한 타고난 몸치이기에 더더욱 욕심은 없었다. 단 4번의 총 8시간의 수업 동안 솔직히 배워봐야 뭘 얼마나 배울 수 있을까 싶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아주 조금 욕심을 내자면 기본자세와 룰이나 제대로 익히는 거였다. 그래서 한 번씩 남편의 도움을 받아 함께 포켓볼을 칠 수 있는 정도까지만 되길 바랄 뿐이었다.




수업 시간이 평일 오전이라 수강생은 단 한분만 제외하곤 모두 5,60대의 주부였다. 같이 수업을 듣는 분 중 한 분은 큐대 잡는 연습이나 할 요량으로 저렴한 큐대를 하나 구입했다 하였다. 관련 유튜브 방송도 몇 개씩 보고 본인이 보기에 괜찮은 방송을 나에게도 소개해 주었다. 당구에 대한 열정이 옆에서 지켜보는 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나 역시 한 끝장을 보는 성격인데 당구는 좀체 더 이상의 어떤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항상 너무 뜨거워 오히려 잠시 식힐 시간이 필요하던 내 안의 열정이 어째 가열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 자신을 너무 몸치라고 단정 지어서 그런 건지 원래 스포츠랑은 전혀 안 맞아서 인지...  그냥 수업 시간에 배우는 정도까지만 제대로 따라가자 싶었다. 그러나 배운 것만 익히기에도 1주일에 한번 당구장에 오는 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나 집에 당구 테이블이 있지 않은 이상 당구장을 찾지 않고는 달리 연습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나 같은 몸치는 남보다 훨씬 많은 연습을 해야 겨우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데 이건 연습 자체를 할 수가 없으니... 아마 같이 수업을 들은 분들 중 내가 제일 처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시간이 남보다 좀 많이 걸릴 뿐이지 뭐든 일단 맘먹고 시작하면 눈에 띌 정도까지 따라간다. 남들 눈엔 보이지 않는 숨어있는 노력이 그 이상은 아닐지라도 딱 그 정도까진 보상해주었다. 그래서 2시간 동안이라도 최대한 집중해서 연습을 하자 맘먹었다.




그러나 감질나게 살짝 입맛만 다신듯한 4회의 수업은 실력의 별 진척 없이 그대로 종강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 구청 직원분과 당구장 사장님이 귀에 솔깃한 제안을 내놓으셨다. 당구장 특성상 오전은 좀 한가한데 그때 여럿이 어울려 같이 오면 사장님이 수업도 해주시고 같이 수강한 회원에 한해 이용료도 할인해주시겠단다. 게다가 그마저 파트너와 함께 테이블을 이용하면 요금을 또 반만 부담하면 된다. 그냥 여기까지만 하고 수업을 끝내면 결국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될 텐데 조금만 더 해서 기본기나 제대로 익힐 때까지 더 할까 었다. 자주는 못 와도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시작한 4월의 당구 수업은 이번 주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제부턴 공짜가 아니고 조금이라도 비용이 들어가기에 어떻게든 내 안의 열정을 가열시켜보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복병이 하나 있었다.




사장님이 깨끗이 관리를 하시긴 하나 그 당구장은 동네 시장통 2층에 있는 오래되고 낡은 곳이다. 게다가 우리가 그곳을 찾는 시간은 낮시간 대라 어느 정도 사회 경제 활동을 마무리하신 분만 올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그곳에서 부딪히는 분들은 당구장만큼 연륜이 느껴지는 나이 든 동네 할아버지들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으신 분들의 공통된 가장 큰 특징은 타인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분들이 보기에 아직 큐대 잡는 것도 서툴고 기본 동작도 제대로이지 못한 우리는 그야말로 애송이 중에서도 왕 애송이로 밖에 안 보일 테다. 얼른 옆에 가서 가르쳐주고 동작도 봐주고 시범을 보여줘야만 하는 도움이 절실한 대상이다. 그냥 모른 척 눈감아 버리는 건 그분들 양심상 결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도와주겠다는 좋은 뜻으로 옆에서 훈수를 시는데 아무리 내가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라 하나 그걸 뿌리치긴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린 동방예의지국의 후손들이 아닌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장유유서가 무슨 의무처럼 머릿속 깊숙이 박혀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두 분이 아니다. 이분이 가시고 나면 다른 분이 오시고 그분이 가시고 나면 또 다른 분이 오신다. 심지어 동시에 두 분이 내가 연습하고 있는 테이블에 오셔서 서로 다른 교육법과 진도를 주장하신다. 이분은 이걸 연습해라 하고 저분은 또 저걸 연습해라 한다. 하지만 그건 모두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춘 사람들이나 하는 것들이지 나는 아직 완전 초짜다. 내가 제대로 연습하고 싶은 건 단 두 가지뿐이다. 기본 동작을 더 연습해서 큐대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일정한 높이와 속도로 나가게 하는 것과 공의 두께를 갸름하는 것이다. 그런데 밀어치고 끊어치고 회전을 주고 어쩌고 저쩌고 계속 그러니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연습하지 못하고 오늘 뭘 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대로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가까스로 2시간을 내어서 찾은 당구장에서 내가 큐대 잡는 시간이랑 어떤 때는 그분들 시범 보는 시간이랑 비슷한 때도 있다.




며칠 전 같이 만나서 연습하기로 했던 사람이 약속을 펑크 내는 바람에 혼자 당구장을 찾은 이 있었다. 머리털 나고는 당구 치겠다고 혼자 당구장을 찾은 적은 없는데 다 늙어서 이게 뭔 일인가 싶기도 했다. 집에 그냥 가려다 까지 온 게 아까워 당구장 안을 살짝 들여다봤다. 다행히 아무도 없고 사장님만 혼자 계셨다. 사장님은 혼자서라도 연습하겠다 찾아온 내가 기특했는지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자 내 옆에서 거의 떨어지시질 않았다. 단 5분도 나 혼자 연습하게 놔두지 않았다. 배운 걸 익힐 시간을 주셔야 하는데 계속 옆에서 끊임없이 설명하고 진도를 나가고 시범을 보여주시니... 너무 감사하긴 한데 나 같은 타고난 몸치에게는 보통 곤욕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라는 게 있다. 나의 경우 새로운 걸 익히는 데 남다른 시간이 소요된다.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처음부터 제대로 익히고 쌓아 나가야 된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순간 막혀버리면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더 이상 진척은 힘들다. 내 머리 구조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그래서 항상 남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그렇게 일단 내 걸로 만들고 나면 결과물이 확실히 다르다. 나는 이걸 '노력'이라 부르고 게으르거나 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재주'라고 부른다.

"정말 재주도 좋아"

내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그래서 난 무언가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 뒤에 보이지 않는 노력까지 같이 포함해서 후한 점수를 주곤 한다.




당구에 관한 한 내 속도는 여느 새로운 학습만큼 더디다. 지금 기본자세가 제대로 안 나오니 다음 진도로 넘어가는 게 꺼려진다. 게다가 혼자 노력을 더 하기도 애매하다. 이걸 잘해보겠다고 전업주부가 당구장을 수시로 드나드는 것도 좀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 많은 남자분들이 붐비는 낡고 오래된 그곳의 분위기가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다. 내가 지금 무엇보다 원하는 건 바로 '예의 있는 무관심'이다. 당구장에 매일 몇 시간씩 죽치고 연습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1주일에 딱 2시간 내어 오는 건데 실력이 늘어봤자 얼마나 늘 수 있을까. 내가 무슨 지역구 대표 선수로 뽑히는 것도 아니고 대회에 나갈 일은 더더욱 없다. 그냥 초보자가 와서 기본기나 익히는 구나하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봐주셨음 한다. 내가 연습하고 있는 테이블은 2시간만큼은 나의 영토로 인정해주고 가급적 접근도 최소화하며 그냥 의도된 무관심으로 내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대해주었음 좋겠다. 자꾸 캄보디아 출신 여자 당구 선수 '스롱 피아비'를 언급하지 마시고.




과도한 관심으로 4월 한 달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각자의 속도를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게 많이 힘든 일일까? 도움을 청할 때까지는 혼자 내버려 두는 게 쉽지 않은 일일까? 어쩜 이 모든 게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에서 비롯된 문제 일 수 있다. 안타깝고 힘든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한국 사람 특유한 뭔가가 있다. 덕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난 제발 혼자이고 싶다. 내 입으로 혼자 연습하게 그냥 내버려달라는 그런 쌀쌀맞고 얄미운 말을 뱉기는 결코 단연코 진짜로 원치 않는다.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하기 전까진 제발 날 투명인간 취급해주길 바라는 이 마음은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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