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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Jun 27. 2022

다정이 습관이군요



세상에. 어쩜 이리 다정할 수가. 입가에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두 귀를 쫑긋 상대방 얘기에 귀 기울여준다. 별거 아닌 것에도 동그랗게 눈을 뜨고 후한 리액션에 게다가 공감은 또 어찌 그리 잘해주는지. 그뿐 아니다. 네가 최고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치켜세워주기도 한다. 옆에 누가 있든지 잘 챙겨줄 뿐 아니라 배려심 또한 남다르다. 같이 있음 그렇게 달달하고 따뜻할 수가 없다. 마치 추운 겨울,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홀짝거리며 마시는 핫초코처럼. 우리는 이런 사람을 '다정한 사람'이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는다. 세상 누가 이렇게 달콤한 사람을 거부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자석에 당겨지는 쇳가루마냥 아무런 저항 없이 이끌렸다. 그저 본능적으로. 그러나 요즘 더 이상 '다정하다'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걸 두리뭉실 묶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 다정의 이름을 빗댄 아류작들이 너무 많았다. 좀 더 세부적으로 다정을 분석할 필요가 느껴졌다.




지나고 보니 실제로는 그저 예의 바르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하길 꺼리는 사람일 뿐인데 왠지 다정한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부드럽고 상냥한 예의바름을 다정과 혼동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그냥 상냥한 사람, 예의 바른 사람 이렇게 생각하면 별 문제가 없는데 다정한 사람이란 틀에 집어넣고 보니 몇 가지 오해와 크든 작든 상처를 주고받는 일도 생기게 된다.

 



지인 중 다정이 습관이 사람이 있다. 물론 그 다정은 진정한 다정이라기보단 앞서 말한 상냥한 예의바름에 가까운 것이다. 한편으론 너무나 부러운 좋은 습관이기도 하다. 그 사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한다. 같이 있는 모두에게 늘 따뜻하고 상냥하며 배려가 듬뿍 담긴 목소리로 조용조용 얘기한다. 당연히 모두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고 부담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곤 한다. 아마 제일 그러했던 사람이 나였지 않았나 싶다. 처음엔 그 사람이 다정한 사람이라 일말의 의심도 없이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관계를 돌이켜 볼 계기가 주어졌을 때 살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다정이란 정말 말 그대로 정이 많아야 하는데 그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정이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다시 표현해야겠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의 가족, 친척, 오랜 친구들. 그 외에 그 사람이 다정한 사람이라 믿고 있는 많은 이들에겐 그 정도의 정까진 내주진 않았다. 하긴 그럴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지만.




가만히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정은 과연 뭘까. 영어에서는 적당한 표현을 찾을 수도 없는 오직 한국어에만 있다는 그 단어, 당연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 '정'. 초코파이가 이렇게까지 장수 인기품목이 된 데는 누구나 다 아는 광고의 로고송 역할 또한 무시되지 못할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바로 이 대목이다. 마음속에 있어야 한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그 짧은 문구 하나로 정을 꼭 집어 표현할 수 있다니.




살짝 억울한 건 나는 그 사람을 내 마음속에 넣었고 그 사람 마음속에 역시 내가 들어가 있는 줄로 알았다. 순전히 나의 착각이 불러온 잘못인데 누구 한 사람을 다정하네 마네 하며 이렇게 뒤에서 투덜대다니 참 못났기도 하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뭔가에 꽂히면 모든 열정을 다 쏟아 넣는 내 성격 탓이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정에 많이 굶주린 나 같은 사람에겐 특히 치명적인 약점이다. 처음엔 혼자 좋아서 했던 모든 것들에 어느새 조금씩 크든 작든 바라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순전히 지가 좋아서 한 것이라 기대라는 걸 하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기대치가 점점 올라간다. 올라간 만큼 내려올 땐 가속이 붙어 더 빨리 내려오는 법이다. 기대치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결국 얻을 것을 얻지 못한 아쉬움과 실망감에 모든 정들은 롤러코스트처럼 뚝 떨어진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바쁘다.




그 사람은 가식적인 사람이 결코 아니다. 항상 만나는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돌아서는 순간 그 사람의 마음에서 사라진다. 이해는 된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리 복잡하지도 복잡한 걸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라 마음의 방이 많지는 않다. 방이 많아지면 그만큼 수고로워지기 마련인데 그것까지 감당하는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마련한 마음 한켠에 손님을 받고 잠시 후 다시 깨끗이 청소한 후 새로운 손님을 받는다. 방을 계속 비워두진 않는다. 간혹 방은 하나인데 손님이 동시에 올 때가 있다.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이런 충고를 하였다. 너무 어느 한 관계에 몰입하지 말고 여기저기 살짝 걸쳐만 놔야 한다고. 듣고 보니 세상을 살아가는 참 좋은 방법이긴 한데 내게는 좀 맞지 않다. 여기저기 쓸데없는 인연을 만드는 걸 헛된 거라 여기는 사람이다. 오히려 인맥 따지고 누군가 뒤에 줄 서고 하는 걸 재수 없어 여기는 지 잘난 맛에 사는 1인이다. 툭하면 말끝마다 '내가 아는 지인은'하고 말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 그 지인들은 뭔가 나은 배경이 있다. 배우자든 자식이든 경제력이든 내세울만한 게 뚜렷이 있다. 차마 친구라 부르지도 못하고 그저 지인이라 일컫지만 그들을 아는 것을 무슨 자랑인마냥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하고 안면 트고 깊이도 없는 대화 해가며 네가 얻고자 한 게 도대체 뭐야?'




나 자신이 쉽게 바꿔지진 않는다는 걸 잘 안다. 앞으로도 이런 일로 혼자 속앓이를 할 때가 또 있을게다. 그러기에 나름의 예방책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런 의도 없이 상냥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나 역시 상냥하게 받아주되 한 가지만 명심하기로 했다. 정까지는, 마음속에 누군가를 집어넣는 일까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로. 혹시 무늬만 다정한 옷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띄면 표 내지 고 조용히 혼자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당신도 다정이 습관인 사람이군요'




다정하리라 믿었던 예전 그 사람이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나 역시 상냥한 예의바름의 옷을 입고 그 사람의 마음 한켠이 비워질 때를 기다리다 다음 손님이 오기 전까지 조용히 놀다 올 것이다. 내 마음의 방 역시 깨끗이 청소한 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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