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간산 여행기 (4)
워터프런트 역(Waterfront Station)에 가면 묻혀두었던 그리움이 되살아난다. 역(驛)이란 원래 그런 곳이 아닌가.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되는 곳. 우리네 삶처럼 숫한 인연이 오고 가는 곳. 바라보면 어디론가 환상의 나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던 아득한 시절의 시골 고향 역이 생각난다. 60여 평생을 살면서 무수한 역과 역을 거쳐왔으며 마침내 이곳 밴쿠버 다운타운의 교통중심지 워터프런트 역까지 오게 되었다. 앞으로 또 어떤 역을 거쳐갈 것인가.
아직도 내게 역이라면 스쳐가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가벼운 흥분과 설렘으로 미지의 장소를 오고 가는 기차가 서는 곳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다가 온다. 그러나 이 역은 현재 기차역이 아니다. 버나비남부와 뉴웨스트민스터를 거쳐 써리로 가는 스카이트레인(Skytrain; 고가전철) 엑스포라인, 버나비북부와 코퀴틀람, 그리고 뉴웨스트민스터를 순환하는 밀레니엄라인, 리치먼드를 거쳐 밴쿠버국제공항까지 가는 캐나다라인의 시발역이자 종착역이다. 역사(驛舍)가 고풍스러워 나는 가끔 ‘서울역’이라 불러본다. 송추, 일영, 의정부, 동두천 등을 왕복하던 젊은 시절의 추억과 낭만이 어린 서울역 교외선처럼 출퇴근시간에만 운영되지만 밴쿠버 외곽도시인 포트무디, 코퀴틀람, 포트코퀴틀람, 핏메도우, 메이플릿지, 미션 등을 왕복하는 통근열차도 있어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든다. ‘웨스트코스트 익스프레스’라는 이 열차노선은 아직 한번도 타보지 못했지만 젊은 시절처럼 김밥과 삶은 달걀, 사이다 한 병 사 들고 아내와 함께 밴쿠버 교외선을 한번 타 보고 싶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다시 청춘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실 1914년 캐나다태평양 철도회사(Canadian Pacific Railway;CPR)에 의해 역사가 건설될 때만 해도 이 역은 캐나다 동부의 몬트리올과 토론토를 오가는 대륙횡단철도의 서부캐나다 종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7일의 운행을 끝으로 현재 터미널 전철역부근의 태평양 중앙역(Pacific Central Station)에 종점 자리를 내 주었다. 그러나 1977년부터 북 밴쿠버의 론스데일 부두(Lonsdale Quay)로 연결되는 배편(Sea Bus)이 운행되고, 밴쿠버에서 개최된 세계무역박람회(Expo ’86) 참가 객 및 관광객 수송을 위해 1985년 엑스포라인이 신설되면서 워터프런트 역은 차츰 광역밴쿠버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또한 1995년 기존의 캐나다태평양 철도회사 라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웨스트코스트 익스프레스가 개통되고, 다시 2002년 밀레니엄라인, 2009년 밴쿠버동계올림픽 (2010년 개최)승객수송을 위한 캐나다라인까지 개설되면서 이 역은 명실상부 광역밴쿠버의 관문역할을 하게 되었다.
“빌이 뒤에서 따라오고 톰은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목발을 잡은 채 계단을 내려 갔다. 한번 플렛 홈에 서자 양쪽에 목발을 끼고 몸을 바로 세웠다. 약간 휘청했으나 곧 중심을 잡았다. 찌르는 듯한 아픔이 두 다리에 몰려 왔고 등 뒤로는 땀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그는 북적대는 풀렛홈 너머를 쳐다 보았다. 거기에는 항상 마음속으로 그려 왔던 가족들이 있었다. 서로 손을 꼭 잡고들 있는 가족들 뒤 한 피트 비껴선 쪽에 엘렌이 서 있었다. 그녀는 기억했던 것보다 키가 더 컸고 눈은 더 푸르러 보였다. 흰 블라우스와 검은 셔츠를 입었고 목에는 붉은 스카프를 둘렀다. 그녀의 얼굴이 미소로 밝아졌다. 그녀는 그가 본 여인들 중 가장 아름다웠다.
톰의 가족이 웃으며 말을 걸며 그의 주변을 감정이 격해서 둘러쌓다. 그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고, 그는 행복한 즐거움으로 가슴이 터지듯 했다. 마침내 집에 온 것이다. 그것도 살아서. 안도와 행복의 눈물이 그의 눈에 흘러 내렸다.” (‘기마병’, 밴쿠버 소설가 로버트 맥케이의 소설 중 일부)
제1, 2차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발발했고 서부 캐나다, 특히 밴쿠버에서 참전하는 젊은이들은 이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동부로 향했다. 내 친구이자 캐나다작가협회(Canadian Authors Authorization; 캐나다 전국규모의 문협) 밴쿠버지부 회장을 역임한 로버트의 소설 주인공 톰처럼 한 발을 잃어버리고도 살아 돌아온 병사들도 있었지만 한 줌의 재로 돌아온 젊은이들도 많았다. 기적을 울리면서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가족들의 슬픔과 기쁨이 엇갈렸을 터. 신 고전주의 스타일의 건축양식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 내부는 이오니아 식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기둥들로 장식된 넓은 홀이 있어 마치 중세시대의 무도장 같은 느낌을 준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의 가족들은 얼싸안고 춤을 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나 자식을 잃은 가족들은 비탄의 눈물을 그 이오니아식 기둥에 뿌렸을 터. 그 회한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역사 건물은 밤마다 유령이 출몰한다는 괴상한 소문이 돌기도 한다.
역 건물 내부
사연인즉 역내외부를 순찰하는 경비원들이 목격했다는데 밤 2시에서 3시경 모든 교통수단의 운행이 끊긴 시점에 갑자기 왈츠 같은 댄스음악이 들리고 1920년대의 복장을 한 늙은 여인이 춤을 추다가 경비원이 나타나면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사라진다고 한다. 건물내부의 간이매점 의자나 테이블이 움직이기도 하고, 경비원들이 가는 길을 가로막기도 한단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관광객들도 덩달아 보태어 사람이 없을 때 위층에서 저벅거리는 발자국소리를 들었다는 둥, 세 명의 자그마한 늙은 여자가 역사 내 벤치에 앉아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는 둥 유령이야기가 보태어 진다.
건물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유령은 출몰한다. 1928년 어느 비 오는 날 밤 철로작업 공이 레일보수공사를 하다 몬트리올에서 오는 대륙횡단열차에 치여 목이 달아났는데 지금도 비가 오는 칠흑 같은 밤이면 손에 랜턴을 든 목 없는 수선공이 철로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목격된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역사를 순찰하는 경비원들이 심심풀이로 지어낸 이야기들이 하나 둘 보태어진 것이겠지만 일년의 반은 비가 내리는 음습한 밴쿠버는 그런 이야기들로 낄낄거리면서 일년의 나머지 반이 천국 같은 날씨에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유령이야기조차도 하나의 관광 상품화하여 괜히 밤중에 역사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밴쿠버도 인구가 증가되어 역사 주변으로 호텔도 많이 들어서고 음식점이나 술집도 제법 들어서면서 시끌벅적해지니 유령들도 더 조용한 곳을 찾아 워터프런트 역을 떠나야만 할 것이다.
승리의 천사(Angel of Victory) 동상
워터프런트 역 동편건물 앞에는 승리의 천사(Angel of Victory)라는 동상이 서 있다.
1차 대전에 참전하여 목숨을 잃은 1,100명의 캐나다태평양 철도회사 직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이 동상은 1922년 몬트리올의 코워 디 라이언 맥카시(Coeur di Lion McCarthy)가 조각하였는데 죽은 병사를 데리고 천국에 오르는 천사의 모습이 청동으로 부각되었다. 1940년에는 2차 대전 전사자를 기념하는 문구가 동판에 덧붙여졌다. 이와 똑 같은 모양의 동상이 똑 같은 목적으로 캐나다 중부의 위니펙 시와 동부의 몬트리올 시에도 세워져 있는데 밴쿠버의 것은 바닷가에 있어서인지 갈매기들의 배설물로 얼룩지고 천사가 손에 들고 있던 승리의 화환(wreath)도 일부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역사가 일천한 나라에서 이러한 문화유산(Heritage)은 잘 가꾸고 보전해야 할 터인데 이를 관리하는 시에서는 예산부족타령만 하고 있다니 오래 전의 한국을 보는 듯하다. 지금 한국은 문화유산 훼손의 심각성을 깨닫고 예전보다는 잘 관리하지만 국보급문화재 남대문에 불을 지르는 행위가 더 이상 생겨나지 말았으면 한다. 왜 이런 의미 있는 동상을 청소도 제대로 않고 잘 돌보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이 되돌아올까 염려된다.
밴쿠버에 처음 와서도 ‘워터프론트’라는 역 이름이 익숙했던 것은 말론 브란도와 에바마리 세인트가 주연한 엘리아카잔 감독의 1954년도 제작 영화 ‘워터프런트(On the Waterfront)’ 때문이었으리라. 뉴욕의 부패한 부두노조집행부에 대항하는 반항아 말론 브란도의 새파랗게 젊은 모습과 에바마리세인트의 청순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젊음은 때로 반항으로 아름답다. 그것은 곧 개혁과 진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젊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의지이다. 나이가 들면 변화를 싫어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삶의 최선인양 여긴다.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도전을 꺼린다. 그러나 젊음은 숫한 실패를 거치면서도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특권이다. 육신의 늙고 젊음은 상관이 없다. 정신이 젊어야 한다. 50대 초반의 나이로 이국생활을 선택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모두 나를 말렸다. 그러나 나는 다시 젊어지고 싶었다. 캐나다는 그것을 허용하였다. 여기서 고등학교 1학년 과정부터 다시 다녔다. IMF를 불러 온 신의 의지에 반항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당당히 밴쿠버의 워터프런트에 서서 말론 브란도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넘지 못할 언덕이 없고 헤쳐나가지 못할 덤불이 없다.
당시 몸담고 있던 K화학의 북미주 지사 설립을 위해 시카고, 시애틀 등을 방문했지만 여건상 밴쿠버로 확정되었고 공교롭게도 워터프론트 역사 내에 중소기업 지원센터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답사방문을 시작했다. 내 짧은 영어실력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자 상담직원은 아예 컴퓨터에 앉아 켜고 끄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직접 자료를 검색해 보라고 했다. 마치 태평양 한가운데 빠진 바늘 찾기처럼 느껴졌다. 답답한 마음에 역사 밖 해변 둑길로 나서니 오른편에 화물선터미널이 눈에 띄고 거기에는 ‘현대’와 ‘한진’마크가 선명한 컨테이너가 막 하역되는 모습이 보였다. 저 컨테이너에는 한국상품이 잔뜩 실려 있겠지. 내가 오기 훨씬 이전에 저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 한국 무역 인들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맨땅에 머리 박기 하듯 시장개척을 했을 터인데 나도 한국에서 이룬 지위와 명예 같은 것 다 버리고 그들처럼 용기 있게 도전하지 못할 게 무언가.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은데 캐나다라고 별수 있겠는가.
워터프런트 역. 내 캐나다 생활의 첫 출발점이다. 노스밴쿠버로 가는 시버스를 타면서 버라드 만으로 들어오는 한국수출화물 컨테이너를 보면서 흐뭇해 하며 낯선 타국의 삶 속에서 용기를 얻기도 했고, 빨리 광역밴쿠버의 지리를 익히기 위해 엑스포라인, 밀레니엄라인을 번갈아 타면서 역마다 내려서 기웃거리기도 했다. 전철 안에서의 모습은 한국 지하철과 다를 바 없었다. 잡상인이 없다는 것을 빼고는. 경로석에 앉아있던 젊은이들은 노약자들이 들어오면 얼른 자리를 양보하고, 저녁전철에는 피곤에 지친 이주노동자들의 조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인다. 그런가 하면 자정이 다 되어가는 전철 안에서는 술 취한 젊은이들이 큰소리로 떠들어 대는 모습도 보인다. IMF시절 서울 지하철에서 느낀 감정이 생각난다. 다니던 은행이 정부의 구조조정방침에 따라 문을 닫는 바람에 운전기사가 딸린 자가용출퇴근은 막을 내리고 오랜만에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나 혼자만 큰 시련을 당한 듯 어겼지만 지하철 속의 서민들을 보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편했다. 지하철 차량 속에 있는 동안만큼은 공동운명체이다. IMF체제의 희생양들도 모두 공동운명체이다. 그러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지하철을 타자/우리 모두 한 통(桶)속이 되자//있는 사람 없는 사람/잘난 사람 못난 사람/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사는 형편은 서로 달라도/속속들이 생각은 서로 달라도/어두운 굴 속 헤치며/어려운 시절 헤치며/우린 지금 함께 한 길/가고 있지 않은가//지하철을 타다/졸고 있던 깨어 있던/서 있던 앉아 있던/웃고 있던 울고 있던/말하고 있던 듣고만 있던//생김생김은 서로 달라도/서둘러 내려야 할 곳은 서로 달라도/함께 있는 일순일각/그 순간만큼은//우리 서로 한 통(桶)속이 되지 않겠니(‘지하철을 타자’, 필자의 시집 “이방인 향단이” 중에서)
타국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다. 한국의 ‘지하철’이 밴쿠버의 ‘스카이트레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무래도 서민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은 세계각지에서 온 이주자들 또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얼굴이 검던, 노랗던, 하얗던 어쩌다 앞서가던 스카이트레인차량이 선로 이상으로 멈추거나 연착되면 꼼짝없이 뒤따르던 차량들도 정지하고 승객들은 모두 전철차량 속에 갇힌다. 이렇게 되면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하나. 연착으로 정지된 차량이 한시바삐 움직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시바삐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싶으리라.
저마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가지가지 사연을 지닌 채 전철을 타고 있지만 내리는 역은 같다. 그리고 종착역에 이르면 전철은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다. 내 삶의 종착역은 어디쯤일까? 고독하고 외로워 할 필요 없다. 나 혼자만의 종착역이 아닌 모두의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을 슬퍼할 필요는 없다. 종착역은 곧 출발 역이기 때문이다. 워터프론트역에서 리치먼드나 북밴쿠버나 핏메도우 가는 대중교통수단으로 갈아탈 수 있다. 우리네 시간여행길도 언제가는 종착역에 도달하겠지만 어딘가에 새로운 여행길이 시작되는 출발 역이 있음을 확신한다면 지금 여행길은 한결 여유로우리. 새로 길 떠나는 날.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좀 더 향기로운 인연을 쌓고 좀더 사랑하고, 용서하고, 좀 더 웃고 노래하고, 춤추며 늙어가리라. 하릴없이 늙음을 한탄하며 삶을 허비하지 않고 주어진 나날들을 옹골차고 보람 있게 살리라 다짐해 본다. 비 개이자 오색 무지개 이국의 하늘에 걸리는 워터프런트 해변 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