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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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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Sep 16. 2024

지금은 어려운 세상

시가 있는 에세이 (20)

지금은 어려운 세상


       기말고사期末考査 평균점수

       잘 못 받았다고

       할 말 못할 말

       다 쏟아 퍼붓고

       온 저녁 나는 가슴이 아렸다.


       인생은 모를 것이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이 땅에 태어나 사람대접 받으려면

       학교공부 잘 해서

       일류대학一流大學 들어가야 하는데


       아들아

       벌써 힘들고 지치면

       어떻게 하느냐

       아버지는 네 나이 때

       영화 보고 소설 읽고 음악 듣고

       산에서 놀고 강에서 놀고 바다에서도 놀았지만 


       지금은 어려운 세상

       이때를, 하필 가려, 살아가게 한

       나도 할 말은 없지만


       기말고사期末考査 평균점수 

       잘 못 받았다고

       들을 말 못 들을 말

       고스란히 새겨듣고도

       원망 한마디 없이 곤히 잠든 

       네 침대 머리에서


       온 밤을 이 아버지는 그저

       아리고 쓰린 가슴만

       두들겨 대었다.                       


 아들은 대학 다니며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3주간 일본 여행을 갔다. 아내와 함께 공항에 가서 배웅하고 집에 오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뭐 3주일은 금방인데 하면서도 자꾸만 아들의 방이 기웃거려졌다. 눈에 안 보여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나도 늙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몇 년 후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잡고 장가가면 부부만 ‘빈 둥지(empty net)' 지키는 신세가 될 터인데도 말이다. 어릴 적 아들모습 찍어둔 비디오테이프 보면서 허전함을 달랬다.


 모든 부모에게 어린 자식은 신동이다. 내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녀석은 말을 배우게 되자마자 한글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두 살 때는 영어단어들을 외우기 시작했고 세 살 때는 전철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역 이름을 줄줄 꽤기 시작했다.

 나는 아연 긴장했다. 도대체 부모가 대충 봐도 신동은 아닌데 이 아이는 어디서 태어났단 말인가. 그러면서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떤 신동처럼 다른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대학교 입학하겠다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김칫국을 너무 진하게 들이켰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전 과목 만점을 받기도 하고 학년 평균이 90점을 웃돌던 나의 꿈나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성장이 완만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아이가 평균 90점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 과목 과외를 시켰다. 업무활동비가 모자라 개인대출로 충당하던 신설은행 초임지점장 시절이라 경제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학원비로는 아끼지 않고 월 수십만 원씩을 지출했지만 생각만큼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나는 아들을 심하게 나무랬다. 공부는 하지 않고 인터넷 게임 할 생각만 한다고. 생전 화 잘 내지 않던 아버지의 꾸중을 듣던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소리를 죽여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방 밖에서 남자 녀석이 왼 눈물이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하자 나는 직장에서 나왔으니 나의 고뇌가 아들에게 미치어 그나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게다가 친구들이 과목당 1, 2백만 원씩 하는 족집게 과외를 받으면서 성적을 올리는데 평생을 월급쟁이로 지내온 나는 아들의 대입학원 강습비 대기도 버거웠다. 그 때만큼 내가 강남에 산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고액 과외’하는 친구들에 밀려 성적이 쳐졌던 아들은 원하던 대학을 가지 못해 오랫동안 우울해 했었다. 그러나 밴쿠버에 온 후로는 달라졌다. 대학 2학년을 중도에 마치고 왔으나 와서 2년 만에 컬리지에서 유수 종합대학으로 무사히 편입했다. 열심히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캐나다 교육체제가 아들에게 맞는 모양이었다. 고액 족집게 과외 하던 친구들이 밴쿠버에 어학연수 와서 아들을 부러워한다. 청년실업난 때문에 졸업해도 취직이 힘드니 부모 돈 축내는 캥거루 생활을 면하지 못할까 걱정하지만 아들은 유창해진 영어로 이국의 사방팔방을 누비고 다닌다. 이번에는 일본, 다음에는 유럽, 그 다음에는 중국, 이런 식으로 여행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그것도 자기가 번 돈으로 여행경비를 마련한단다.


 잠시 제 방 비운 아들이 금방 보고 싶어지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꿈을 가지고 사전답사 차 지구촌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다 돌아보겠다는 아들의 믿음직한 소견에 한 몇 끼니 밥 안 먹어도 전혀 배가 고프지 않을 것 같다.                      


<되돌아 보니>


강박관념. 한국에서는 자식들이 공부 잘 해서 일류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소위 ‘사’ 자 붙은 직업-예컨대 변호사, 판검사, 의사, 등등에 종사하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로망이다.

밴쿠버. 대충 보니 부모들은 자식들의 미래에 크게 간여하지 않는다. 소위 ‘니 마음대로 하세요.’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 구태여 돈 들여 대학가려 하지 않는다. 자녀들이 18세만 되면 독립하려 하니 무슨 간섭이 통하랴. 한국인 가정만 대학 졸업하고 시집, 장가갈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태어나거나 어릴 때 이주해온 세대는 형편만 되면 여지없이 따로 나가 산다.

아들은 대학 1학년 때 캐나다로 와서 약간의 정체성을 겪었다.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때 해외 한 번 나갔다 오더니 그 경험으로 밴쿠버 살이 잘 헤쳐 나갔다. 지금 아들 나이 40대 초반인데, 또래의 한국 친구들은 벌써 직장에서의 진퇴를 결정해야 할 나이가 다가오는데 아들은 여기서 여유만만이다. 

며느리는 대형 병원 고참 간호사, 아들은 통신회사 지점장인데 캐나다에서 중상류층 이상의 삶을 즐기고 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한국에서는 일류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밴쿠버에서는 괜찮은 생활을 해 나가기 부모로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저를 캐나다로 대려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들의 이 한마디가 타국에서 제법 힘겨웠던 내 삶을 다 보상하는 듯하다.(2024년 9월 1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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