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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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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Sep 12. 2024

식중독

시가 있는 에세이 (18)

  식중독食中毒


  다리, 허리, 어깨, 등,

  온 몸에 

  발진發疹이 돋기 시작하였다.


  해조음海潮音을 상실 당한 채

  육질肉質만 남은 소라는 

  생生으로 껍질이 벗기우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몸속에

  인간에게 복수할 독소毒素를 

  아픔으로 키워가고 있었던가.


  손톱만한 바다의 살 한 점까지

  토해 내면서

  처절하게 나는 

  인류人類가 오염시킨 바다의 

  삶에 대하여

  왼 종일 참회하여야만 했었다. 


 장마가 물러간 한국은 본격적인 피서 철이 시작되었겠다. 밴쿠버는 7월 하순 한 사흘 정도 30도를 웃도는 날씨를 보이더니 8월 초가 되니 아침저녁으로 서늘하다. 추석 지난 후의 한국 가을하늘처럼 밴쿠버 하늘은 청명하고 산뜻하다. 찌는 더위가 없으니 피서를 위해 애써 휴가 갈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긴 산, 강, 바다, 호수가 모두 한 도시에 있는 천혜의 관광도시에서 요즘은 별로 하는 일 없이 쉬고 있으니 매일 매일이 휴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 은행에 근무할 때는 주로 장마가 완전히 끝나는 7월 하순부터 8일 초순 사이에 휴가를 갔었다. 강원도 동해안에 은행 연성장(휴가지 숙소)이 있어 매년 갔었는데, 가고 올 때 마다 북적대는 사람들과 차량들에 치어 고생 했지만 일탈의 순간들이 우리 가족에게 주는 행복으로 인해 그런 고생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해 저물 무렵 바닷가 주변 횟집에서 먹던 생선회와 소주 한 잔의 추억은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뿐만 아니라 혀끝에서 살아 맴돌고 감돈다. 특히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회를 즉석에서 요리해 주기 때문에(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맛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한 번은 생선회와 함께 소라를 먹고 된통 탈이 난 적이 있었다. 한 밤중에 갑자기 복통과 함께 구토와 설사가 시작되더니 온 몸에 열이 나고 발진이 생겼다. 같이 먹은 아내와 아들은 멀쩡한데 나만 그랬다. 연성장에 비치된 소화제와 정장제를 먹고도 증상이 가시지 않더니 새벽녘에야 가라앉았다. 그 뒤로는 소라만 보면 사래를 쳤다. 고소하게 씹히는 맛 때문에 좋아했지만 한 번 고생을 하고 나서는 그냥 보기만 해도 배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나중에 신문에서 보니 그 해 여름에 식중독의 일종인 비브리오 패혈증이 심해서 보건당국에서 모든 어패류 취급 음식점에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시달했지만 여름휴가 한 철 장사인 관광지 음식점들이 제대로 지키지 않아 피해를 보는 손님들이 속출한다고 했다. 비브리오 패혈증은 해수면 온도가 17도 이상 올라가는 여름 바다에서 발생하는 비브리오 바이러스가 어패류에 침투하면서 생기는데, 심지어는 피부에 상처가 난 사람이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바닷물 속에 들어갈 때도 감염이 된다고 한다. 어패류는 섭씨 56도 이상에서만 조리하면 균이나 균독이 파괴되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는데 무더위에 익힌 것을 싫어하는 한국인들의 식습관 때문에 감염된 어패류를 날 것으로 먹다 탈이 난다고 한다.


 후에 안 일이지만 대부분의 어패류 취급 음식점이 직접 바다에서 어패류를 잡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수산시장이나 수산물 공급회사로부터 횟감을 구입해 오는데,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자연산 보다 손쉬운 양식 어패류가 더 많이 손님상에 오른다고 한다. 문제는 한반도 인근 양식장이 오염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데 있다. 그 오염원이라는 것이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와 오물, 유독성 폐기물 등에서 기인한다니 결국 우리는 돈을 주고 우리가 내다 버린 독성물질을 어패류를 통해 흡수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땅은 좁고 인구는 많아 오염물질은 쌓이는데 제대로 처리하려니 돈이 들고 하는 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나 하나쯤이야 하고 몰래 산이나 강이나 바다에 버리는 파렴치한 들이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우리 후손들이 바닷가에서 지는 저녁 해를 바라면서 초고추장에 생선회 한 점 찍어 소주 한 잔 곁들이며 삶의 행복을 맛볼 수 있는 나날들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밴쿠버에 와서 느끼는 행복 중의 하나가 어패류를 비롯한 이 땅에서 나는 각종 음식료품을 비교적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땅은 넓고 사람도 적지만 환경오염업체에 대한 불이익이 상당하고, 고발정신이 강해서 오염물질을 내다 버리면 누군가에 의해서 신고 되어 처벌되니 이런 청정지역에서 나는 농수산물을 먹고 탈이 날 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주민들 스스로가 ‘나 하나쯤이야’ 하는 행위를 자제한다. 그리고 세세연년 살아 갈 이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려 노력한다.

 청정한 자연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청정한 음식물을 먹을 자격이 있다.    


<되돌아 보니>

이상하게 나는 게, 새우 등 갑각류를 좋아한다. 특히 ‘대게’나 ‘왕새우’, 그리고 ‘바닷가재’를 먹을 때는 영혼이 이탈한다. 조개, 소라, 전복도 좋아한다. 바닷가에 살아본 적이 없는 내륙이자 분지인 대구 사람인데도 육류보다는 해산물이 좋다.

생선회는 별로다. 같은 해산물인데 차별을 둔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냥 좋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좋아하는 데 이유 있으랴. 

아내와 연애할 때 동해안 강릉 해변으로 데이트 간 적 있다. 때는 늦가을. 쓸쓸한 바닷가에 모닥불 피우고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노래 부르며 낭만에 젖었다. 사실은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손도 잡고 키스도 하려고 했는데 깐깐한 아내는 만만치 않아 좀처럼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키스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그런데 슬슬 뱃속이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르더니 마침내는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하지 않는가. 근처 횟집에서 좋아하는 해산물 모듬 잔뜩 시켰는데 아내는 적게 먹는 편이라 과감하게 남은 음식 싹싹 긁어 먹었더니 시달린 위장이 보복을 시작한 것이다.

서둘러 서울 오는 버스에서 항문 괄약근 조절 운동하느라 사력을 다했다. 관광버스가 종착지인 종각역 부근에 도착하자마자 근처 식당에 냅다 들이닥쳤다. 화장실에서 한 며칠 먹은 음식 잔량을 다 쏟아 내렸다. 평소 과민성대장 증후군이 있었는데, 어쩐지 횟집에서 푸짐하게 서비스음식을 많이 주더라니--- 뭐. 젊은이들이 예뻐서라고? 에라이. 못 팔고 남은 생물 재고정리하려고 약간 맛이 간 것까지 내어 놓았으니---

밴쿠버도 바닷가라서 어패류를 요리해서 제공하는 식당이 제법 있다. 20년 살면서 꽤 많이 다녔는데 탈 난 적 한 번 없다. 철저한 위생관리 때문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한국에서는 상한 생물 먹어서 탈이 나도 그냥 지나가지만 여기서는 고객들이 식품위생국에 고발을 한다. 

매사에 기본을 지키는 삶,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2024년 9월 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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