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9월. 나는 미국 뉴욕 소재 시티은행 본부에서 마련한 금융기관 중간관리자 연수를 받기 위해 김포공항에 갔었다. 해외여행이 흔치 않은 시절이라 3개월간의 연수인데도 부모님, 아내와 아들, 형제자매 등이 할 수 있는 한 다 나와 배웅하였다. 옆집 드나들 듯 해외여행을 하는 지금을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도 미국을 다녀온다는 것은 마치 ‘가문의 영광’처럼 느껴져 가족들이 모두 나온 것이다. 부모님은 아들이 미국 간다고 온 동네방네 신나게 소문내시고, 나는 동료들 간에서 약간 으스대기조차 했다. 달랑 석 달 갔다 오기를.
흥분된 마음으로 드디어 출국장 문을 들어서면서 뒤돌아서 가족들에게 손 흔들어 인사를 하는 데 두 살 먹은 아들이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가보는 공항, 그러나 명절처럼 가족들이 모여 있으니 신이 나서 온갖 재롱을 다 부리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함께 있던 아빠가 갑자기 어떤 문 앞에 서서 사라지려고 하니,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까? 말을 잘 할 나이면 ‘아빠! 어디가?’ 하고 물어나 볼 터인데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삼촌 모두 잠시지만 이별의 서운함이 역력하니 아들도 그걸 느꼈던 모양이다. 출국장 문이 닫히면서 아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울음소리는 내 귀에 계속 울렸다. 초보 아빠의 콧등이 시큰해졌다.
한 해 전인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소속 보잉 747기가 구 소련 전투기에 의해 피격되어 269명이 사망했던 신문보도가 생생한데 다시 못 볼 것처럼 아들이 울어대니 해외여행의 기대와 설렘은 생전 처음 타 보는 장거리 비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피격 대한항공과 동일 노선을 비행한다는 생각이 더더욱 불안을 가중시켰다.
그 아들이 장성하여 장가갈 나이가 되었다. 참한 규수와 인연이 되어 약혼을 하게 되었고, 바쁜 직장에서 잠시 짬을 내어 미래의 처가 쪽 가족행사에 참석하러 출국하게 되었다. 사실 공항 출국장에서 아들을 배웅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들이 대학 1학년 시절 방학을 이용하여 인천공항을 통해 플로리다로 간 적도 있었고, 밴쿠버에 와서는 혼자 한국도 다녀오고 일본도 다녀왔다. 가까운 미국은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출국은 달랐다. 아들이 약혼자와 함께 밴쿠버 공항 출국장 안으로 사라지자 아, 이제 아들은 귀국을 한다 해도 새 가정을 꾸미면서 내 품을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아들과 함께 한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 표정을 아내에게 숨기려고 돌아서는 데 내 심정을 달래기라도 하는 듯 험한 파도를 헤치며 항해하는 북미주 원주민의 작은 배, 카누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국제선 출국수속 장 들어가기 전에 있는 ‘하이다 그와이의 정신; 옥(玉) 카누(The Spritit of Haida Gwaii; Jade Canoe)’라는 옥(Jade)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었다.
1996년에 공항에 설치되었는데, 청동 주조물에 녹청색 옥을 입혔다. 공항에 산재한 예술품 중에 가장 유명하다. 캐나다 배춧잎이라고 할 수 있는 20달러 지폐 뒷면 배경그림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하이다 원주민 출신 조각가 빌 레이드(Bill Raid)에 의해 제작된 이 걸작품은 매년 수백만 명의 방문객들이 밴쿠버를 떠날 때 마지막 추억을 남기려는 듯 그 앞에서 가지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들을 찍는다.
‘하이다 그와이’라는 말은 ‘하이다 사람들의 섬(Islands of the People-현재 BC주 북 해안에 위치한 퀸 샬롯 섬), 옥(玉)카누는 온 세상 만물을 싣고 있는 배-어쩌면 험한 세파의 바다를 건너가는 일엽편주, 우리네 삶-를 뜻한다.
<조각물 하이다그와이의 정신 앞부분>
<조각물 하이다 그와이의 정신 뒷부분>
사실 이 카누는 열셋의 초자연적인 창조물을 싣고 대재앙을 피해 어디론가 항해하고 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득한 옛날, 하이다 그와이 사람들은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에서 신들을 보살핌을 받아가며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살았다. 그러나 갑자기 대재앙이 닥쳐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살던 이들은 황급히 가족 및 가축들을 데리고 피난 길에 오른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는 듯한 이 내용은 아마도 노아 시대에 들이닥친 대홍수가 북미지역도 비껴가지 않았음을 예상하게 한다.
그 시대는 그리스 로마신화처럼 하이다 그와이 원주민 세상에도 신들과 인간들이 결합하여 반신반인의 생명체가 탄생되었던 시기인 듯하다. 우측 뱃머리에서 항해를 지휘하는 가장(家長)은 곰의 머리를 한 사람이다. 즉 반인반수(半人半獸)이다. 그러나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신화의 세계에서는. 단군왕검도 어머니가 곰, 즉 웅녀(熊女)이지 않았던가. 현세에서 밝혀지기로는 그 당시 우랄알타이산맥 동북부에 살던 한민족의 조상이 동쪽으로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태백산(지금의 묘향산으로 추정)에 이르러 곰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연합하였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하이다 그와이 원주민들도 곰을 숭배하는 사람들이었으며, 곰 머리가죽을 뒤집어쓴 가장의 모습을 반인반수로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북미주원주민들의 얼굴을 보노라면 수만 년 전 태백산에 이르러 한반도에 정착한 조상들과 베링해협을 건너 북미주로 들어간 원주민 조상들은 원래 한 뿌리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하는 강한 동질감이 든다.
아무튼 뱃머리의 가장은 그의 아내(사진 후면 좌측 두 번째, 여기서는 노를 잡고 있는 뒷모습만 보임)와 쌍둥이 자식(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음. 새끼 곰의 형상. 딸인지 아들인지는 분명치 않음)들을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 태우고, 그 다음에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신의 대리인, 무당(좌측 사진 중앙에 보이는 마치 갓을 쓴 듯한 조형물)을 모셨다.
하이다 전통 무당 망토를 걸치고 가문비나무 뿌리로 만든 모자를 쓰고 북극곰, 까마귀, 흰줄박이 돌고래(Killer Whale)이 새겨진 신령한 지팡이를 꽉 쥐고 있는 무당의 모습은 풍랑 속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얼굴에 나타나는 두려움은 숨기지 못하는 듯 굳어 있다.
뱃머리 곰 인간의 눈은 과거를 응시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우리의 아버지들은 부양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등골이 휘었지만 찬란했던 젊은 시절, 그 용사의 나날들을 잊지 못한다. 반면 두 자식을 거느린 어머니는 앞을, 즉 미래를 응시하고 있다. 자식이 잘 될 지 못될 지는 모른다. 귀가 앞으로 향한 자식은 미래지향적이라서 착하다. 뒤로 향한 자식은 지난 일만 생각해서 못됐다. 어미에게는 둘 다 귀하다. 그래서 뒤에 있는 믿음의 표상인 무당에게 항상 자식들이 잘 되기를 그 험난한 항해에서도 빌고 있을 것이다.
반인반수는 또 있다. 사진 우측 무당의 뒤에서 노를 젓는 돔발상어(dogfish)여인이다. 심해에 사는 사냥의 여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이 여인은 아마도 먹이 감을 잘 사냥할 수 있기 때문에 카누에 오를 수 있었든 듯하다.
그녀의 뒤, 갈가마귀 발 아래에 얼굴만 보이는 작은 여인은 신화로 가득 찬 섬에서 가장 작은 창조물인 쥐 어미(Mouse Woman)이다. 쥐 어미는 바로 갈가마귀(raven)의 할머니다. 갈가마귀도 이 배에 함께 탔다. 키잡이(steersman; 조타수)로써. 쥐 어미의 바로 뒤에서 이 배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변화무쌍한 바다에서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 뱃길을 가리키고 있다.
갈가마귀는 사실 이 항로에 썩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그의 할머니 쥐 어미가 뱃길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뚫고 있기 때문에 든든하다. 몇 사람 되지 않는데도 잘못된 항로를 가게 되면 마냥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이는 무엇을 뜻함인가? 사람들은 칭찬에는 인색한데 비난은 작은 틈을 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해서 쥐 어미는 손자가 잘못해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경우 방패막이가 된다. 오랜 경험으로 쌓아 올린 바른 길을 인도하면서 젊은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다고 갈가마귀를 위로한다. 그러면 왜 쥐 어미가 조타수역할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늙은이의 역할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어드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십니다./그 분을 위하여/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고 조병화 시인의 시(詩) ‘의자’ 중 마지막 부분)
그녀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항해 도중에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손자에게 모든 것을 전수하는 중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쥐꼬리만 한 지위와 권세와 명예를 늙어서도 놓지 않으려 하는가? 나 아니면 안 된다고 버티다가 결국은 후세에 전수도 못하고 사라져 남은 자들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지 않은가. 쥐 어미는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손자에게 키잡이 역할을 맡겨 지식과 지혜가 계승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위 사진 중 돔발상어 여인 앞에서 납작 엎드려 노를 젓고 있는 것은 비버(Beaver) 다. 사진에서는 뒷모습만 보이지만 실제 보면 온통 비늘로 뒤 덮인 꼬리와 크고 날카로운 이빨로 비버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대관절 이 설치류에 속하는 비버는 왜 카누에 태웠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강한 앞니로 지름 30cm의 나무를 10여 분만에 갉아 쓰러트린 다음 쌓인 흙이나 돌멩이를 첨가하여 흐르는 강물에 댐을 만든다. 댐은 연어의 번식에 도움을 주어 자생지의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카누에 탄 사람들이 어딘가에 정착했을 때 식량으로서의 연어잡이를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 맨 뒤에서 노를 젖는 사람은 역사를 바로잡기도 하고, 지도자들의 지시를 냉철하게 분석하기도 하고 과거 전사나 예술가 또는 영웅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 분쟁조정 자(Ancient Reluctant Conscript)이다. 이른바 사관(史官)의 역할을 담담하기도 한다. 옛 선현들과 역사에 대해 옮고 그름을 분명히 밝혀 주는 사람을 태웠다는 것은 하이다 원주민들의 놀라운 역사관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어떤 이웃들처럼 마구 역사를 왜곡하는 심보와는 천양지차이다.
분쟁조정 자 바로 앞에서 늑대가 노를 젓고 있다. 늑대는 대륙에서 사는 동물로 하이다 원주민들이 사는 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상상력에 의한 창조물이다. 하이다 인들은 늑대를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강한 동물로 여겼던 모양이다. 항상 말썽을 피우고, 변덕스럽고, 사납기까지 하지만 용맹한 원주민 전사의 화신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뱃머리 가장의 손을 잡아채려고 하는 독수리의 날개를 날카로운 이빨로 공격하고 있다. 지도자에게 위해를 끼치는 것은 무엇이던 용서할 수 없다는 기세이다.
독수리와 뱃머리 가장 사이에 납작 엎드려 한 팔은 안으로 다른 팔은 밖으로 내밀고 있는 퉁방울눈 개구리는 수륙양생동물로 육지와 바다의 중개자이다. 두 세계 사이의 간격을 메우어주는 우리의 친구 개구리 공(公)은 어느 곳이든 잘 적응하며 살게 해 달라는 원주민들의 염원이 담긴 표상인 듯하다.
이 작은 카누에 탄 생명체들은 각자가 나름대로의 치열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조각가 빌 레이드는 묻는다. 그들은 삶의 목적을 아는가? 신령한 무당이 있지만 과연 거센 풍파를 헤치고 이상향을 찾아 가는 데 절대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배에 타고 있다는 것만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서로에게 위협이 되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하는 생명체들끼리 어울려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한 곳으로 갈 운명이다. 삶의 영원한 안식처. 그곳은 살아 생전에 도달할 수 있는 곳인가? 아니면 죽어서야 갈 수 있는 곳일까? 그런 의문을 품고 일엽편주는 망망대해를 헤쳐가고 있는 것이다.
YVR의 국제선 출국장에는 북미주 원주민의 조형물이 이 옥 카누 이외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입국장을 나설 때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밴쿠버에 머무는 동안 많이 보아서 눈이 익었을 터이니 무슨 토템이나 판각 기념품 보다는 떠남의 의미를 되새겨 보라는 뜻으로 장치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 YVR의 국내선이나 미국 전용 출국장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하와이, 뉴욕, 로스앤젤러스, 센프란시스코 등지로 가는 미국 출국장은 기분 좋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캐나다에서는 미국 여행이 국내여행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지므로 지친 일상에서 탈출하여 잠시 심신을 휴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던가? ‘다리에 힘이 있을 때, 가슴이 아직 떨릴 때 여행을 가라’고.
해서 30여 년 전의 미국 행을 떠올리며 젊은 날의 꿈과 야망을 상기시키는 미국 여행은 내 소중한 ‘추억 되새기기’가 된다. 틈날 때 마다 일주일 미만의 짧은 여정으로 예전 다녔던 곳들을 들러 보면 창작소재의 발굴과 함께 ‘삶을 새롭고 다양하게 하기’에 대한 의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행의 즐거움은 짐 가방을 꾸릴 때부터라고 주장하듯 미국전용 출국장 앞에는 돌로 만든 여행가방이 전시되어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국내선 출국장 안에도 재미있는 조형물이 있다. 이름하여 나르는 여행객(Flying Traveler)이다. 밴쿠버에 살면서 타 지역에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 듯. 비행기 출발시간에 쫓기어 ‘눈썹이 휘날리도록, 발바닥에 불이 붙도록’ 급히 달려가는 남자의 형상이다. 아마도 피곤함에 늦잠을 자다가 황급히 공항으로 달려온 듯하다. 부양가족 먹여 살리느라고 정신없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일찍 와서 비행수속을 마치라는 공항 측의 애교 있는 경고(?)로 보이기도 한다.
<미국 출국장 앞 돌로 만든 짐가방>
<국내선 출국장 안의 나르는 여행객>
많은 사람들이 관광, 유학, 휴가, 친지방문, 사업, 이민 등의 목적으로 YVR의 입국장에 든다. 모두 기대와 설렘을 가졌을 터. 그러나 출국장에 서는 순간은 감정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집으로 가는 가벼운 마음의 출국자가 있는 가 하면 기대에 못 미친 타국생활에 실망하고 지쳐 피로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가는 무거운 마음의 출국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타국에 정착해서 그들을 보내는 입장이 되었다. 물론 가끔 한국에 갈 경우도 있지만 나이 들어 정다운 사람들과의 정다운 인연이 차츰 멀어지고 사라지는 작금에는 그마저도 국제선 출국장으로의 발걸음을 뜸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출국장에 갈 일은 밴쿠버에서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할 순간을 맞이할 때뿐이다.
떠나는 그대/조금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그대 떠난 뒤에도/내 그대를 사랑하기에/아직 늦지 않으리(‘이별노래’, 정호승 시. 이동원 노래 곡 중 첫 부분)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함께 하다가 밴쿠버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평생 살 것처럼 격의 없이 잘 지내다가 어느새 떠나는 순간이 오면 가슴 한 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스친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 새록새록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으로 제 혼자 잘났다고 설치다가 교민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만 주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별노래’의 구절처럼 조금만 더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큰 사람들이 많다. 기러기 가족으로 4년여를 지내는 동안 스스로 찾아와 내가 관계하는 ‘문인협회’일을 성심으로 돕다 간 K씨, 중년의 나이에 명예퇴직을 당하고 고민하다가 새 생활을 찾아왔으나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간 선량한 얼굴의 Y씨, 오랜 이국생활을 접고 노년에 이르러 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에서 묻히겠다고 떠나버린 인생선배 L씨. 차마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분들이었다.
삶도 그러하겠지. 세상을 떠나는 것은 국제선 출국장안으로 사라지는 것 같으리라. 자주 연락하자는 언약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 속에 묻힌다. 망자(亡子)에 대한 기억도 대부분 그러하다. 관계가 친밀할수록 더하다. 하지만 먼저 간 가족, 연인, 또는 배우자를 너무 사랑해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뒤따라 가는 경우도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세월은 상처를 치료해 주는 명약이기 때문에 인간은 어쨌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내 인생의 마지막 출국장.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여행하게 될 첫 장소에 섰을 때 사람들은 어떤 기억으로 나를 보낼까? 차갑고, 이기적이고, 자기만 생각하던 사람으로 기억할 까? 아니면 따뜻하고, 이해심 많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았던 사람으로 기억할까? 그러니 여생이 더욱 조심스럽다. 평생 쌓아 올린 좋은 인상이 순간의 실수로 사라질 수 있으니 겸허한 마음으로 내 인생을 경영해 나가야 하겠다.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나는 나를 배웅할 사람들이 헤어짐의 아쉬움을 간직하게 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YVR, 국제선 여객기 떠가는 푸른 하늘을 보며 가만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