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역사 몰랐던 사실

도시 여행자를 위한 파리X역사를 읽고

by 책나비K

1.<말 탄 동상에 숨겨진 이야기>

프랑스 전역에는 위인들을 기리기 위한 말 탄 동상들이 많다.말들의 자세는 동상의 위인들의 죽음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예를 들면 총을 든 자객에 의한 암살로 목숨을 잃은 앙리 4세 동상의 말의 발을 잘 보면 앞발과 뒷발을 각각 한 개씩만 들었는데 이것은 곧 암살로 죽었음을 의미한다.


말이 뒷발로 서서 하늘을 향해 두 앞발을 높이 든 동상도 있다. 이것은 동상의 인물이 전쟁 중에 전사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침상에서 편히 죽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동상도 말의 앞 발이 모두 하늘을 향해 있는데 이것은 침상에서 편히 죽었으나 전사들의 죽음같이 명예롭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처럼 모든 동상이 위와 같은 서설에 다 맞진 않는다.

왼쪽부터 앙리 4세, 잔다르크, 루이 14세 동상


2.<프랑스의 마을 '노르망디'에 담긴 뜻>

노르망디는 프랑스에 침입한 노르만족에게 왕이 다른 일족으로부터 침략받는 것을 보호한다는 조약의 선물로 하사하여 준 땅이다. 노르만족들이 거주하여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


3.<프랑스인의 조상은 프랑크족?>

프랑스의 시조는 켈트 족의 한 분파인 갈리아인으로 그 중 파리지족이라는 부족이었다. 그러나 후에 게르만족의 침략으로 갈리아인과 프랑크족이 섞여 살게 되었고 지금의 프랑스인들은 모두 그들의 후손들이다.


4.<팡테옹과 관련된 웃긴 사실>

프랑스에는 프랑스의 위인들만 모시는 팡테옹이 있다. 이곳엔 한 때 서로를 미워하던 사상가들과 문인들이 한 방에 서로 나란히 마주 보며 안치되어 있다. 살아 생전 늘 서로를 원수같이 미워하던 두 철학자 볼테르와 루소, 에밀 졸라와 위고는 그들을 모두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죽어서는 같은 방에 마주보며 누워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자리한 위인들의 전당, 팡테옹


5.<살롱전VS낙선전>

오늘날 19세기의 천재 화가들이라 불리는 클로드 모네, 메르가 르 드가, 피에르 르누아르,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는 모두 살롱전이라는 당시 국가가 인정하는 아카데미에 낙선된 낙선전 화가들이다.


6.<생상스와 드뷔시,두 음악인의 서로 다른 관점. 한 연극이 불러온 웃긴 파장>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봄의 제전이 한창 극장에서 연극하고 있을 때였다. 이교 의식에 근거한 봄의 제전에서 원로들이 한 젊은 여인 주위를 둘러 앉아 봄의 신을 달래기 위해 죽음에 이르도록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분이 나올 때였다. 이 장면을 본 19세기의 유명 작곡가 생상스는 분개해서 나가버렸고 음악 평론가 앙드레 카뮈는 이 음악은 거대한 사기라고 소리쳤다. 저명한 살롱 운영자 푸르탈레스는 "팔십 평생 이렇게 바보 취급을 당한 건 처음"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유명 작곡가 드뷔시는 주변 사람들에게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했고, 라벨이라는 사람은 이것을 보고'천재'라고 극찬하며 배우들을 향해 환호의 함성을 내질렀다. 니진스키는 이 연극에 대해 비난하는 관객들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 모든 상황이 연극이 진행되는 가운데 관객석에서 한데 이루어졌다고 상상해보라. 연극을 진행하는 배우들은 목소리 큰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몸짓과는 반대되는 무식한 행동에 얼어붙고 말았을 것이다. 좁은 상영관에 귀족들과 음악인들과 대중들이 한데 모여 몸싸움을 하며 핏대 올린 목소리로 싸우고 있는 상황은 우습기까지 하다.


고상하다고 하는 예술가들이 난해한 연극 하나를 두고 화가나서 나가버린다던가 천재라고 환호하며 박수친다던가 몸싸움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경박하고 천한 느낌마저도 든다. 어쩌면 이 일화는 이 책의 저자가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 일화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들의 우아하고 지성적인 이미지와 많이 달라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왼쪽부터 생상스, 드뷔시 사진


7.<사르트르VS알베르 카뮈, 진정한 민중의 지식인은 누구?>

사르트르는 대부분의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과 같이 소련에 호의적이었다. 반면 카뮈는 냉전 시기의 소련을 보며 파시즘과 나치즘과 유사한 전체주의라고 비판했다. 누가 옳은지는 이것만 봐선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한때 카뮈와 같은 뜻을 나누며 이합하면서도 카뮈가 없는 뒤에서 그를 알제리 출신의 부랑아라고 욕을 했다. 그런 사르트르이니 만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사상가일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어쩌면 카뮈말대로 소련은 전체주의이고 소련에 호의적인 사르트르와 좌파 지식인들은 강자편에 서서 약자들을 위협하는 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뮈 또한 알제리가 독립 전쟁을 할 때 협상을 주장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변절자로 낙인 찍힌 인물이었다. 그가 왜 협상을 주장했는지는 정확한 근거는 알 수 없지만 피 흘리며 싸워서라도 나라를 되찾고 사람답게 살기 원했던 알제리 사람들에게 전쟁 외에 다른 길이 있었을까. 카뮈는 어떤 생각으로 강대국과의 '불리한'협상을 주장했을까. 결국 카뮈도 사르트르와 같이 강자의 편에 선 변절자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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