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작가는 소설에서 “왕권의 힘이 없다.”라고 말한다. 왕권의 힘이 없다는 말은 곧 실질적 권력이 다른 데 있음을 뜻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왕을 대신해 군림.통치하던 두 세력이 있었는데 원로원(귀족들)과 신전 사제들(교황)이었다. 소설 속 황태자비인 디아나의 출신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 소설 속의 실질적 통치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소설의 본 주인공인 디아나의 출신은 가난한 평민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에게 치유 능력을 받아 신전에 오는 가난한 이들을 치료해주는 성녀가 되었다. 그러는 중 디아나는 황자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평민에서 황태자비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여기서는 신분을 뛰어넘을 만큼의 대단한 사랑으로 황비에 오른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이런 일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당시 로마의 최고 통치자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광대 출신이었으나 훗날 황비가 된 테오도라의 세기의 사랑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둘의 사랑도 결국은 당시 귀족들로 구성된 원로원의 허가를 통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 속 귀족들도 로마의 세기의 커플들을 반대한 원로 귀족들처럼 평민 출신인 디아나가 황태자비가 되는 것에 반대를 한다. 더 나아가 헤스티아의 계략으로 디아나가 폐위위기에 처해지자 가장 먼저 나서서 폐위를 찬성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멸시받는 디아나가 황태자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성녀로서 봉사하며 몸 담았던 신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황자와 디아나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신전이 순수한 마음에서 도와준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평민신분으로 왕족이 되어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황비를 통해 배후에서 실질적인 권력 행사를 하기 위한 신전의 음모라고 생각한다.
귀족 출신의 왕비들은 너무 기고만장하고 제멋대로라 다루기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귀족 출신 왕비를 폐위시키고 평민 출신의 왕비를 세운 전례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대왕과 에스더 왕비이다.
위와 같은 생각을 그저 무분별한 추측이라고 하거나 판타지 소설을 너무 역사적으로 본 폐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소설에서 디아나가 자신을 그저 ‘허수아비 왕비’라고 하는 대목을 보면 근거없는 추측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실질적 통치자가 신전이라고 본다면 헤스티아가 디아나를 폐위시킬 목적으로 신전을 건드린 일은 아주 우매하고 어리석은 짓임을 알 수 있다.
헤스티아는 디아나가 성녀로서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점과 평민출신으로서 평민이 대부분인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디아나를 폐위시키기 위해서 그녀는 디아나의 성녀 이미지를 실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후에 침몰할 걸 알고 있는 포토스 남작의 상선에 투자하도록 부추긴다.
디아나는 포토스 남작의 상선에서 많은 이익을 얻을 것으로 듣고 신전의 돈을 투자금으로 사용하게 된다. 결국 포토스 남작의 상선은 침몰해버리고 많은 귀족들이 연관되어 있던 만큼 수면 위로 뜨게 되면서 디아나가 신전의 돈을 사용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얻으려 했다 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신전의 자금은 본디 의사를 쓸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의 병을 치유하고 배고픈 자들에게 빵 한 조각을 주기위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디아나 성녀와 신전이 서로 의탁하여 세속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오명은 디아나 황비뿐만 아니라 신전에게 큰 악영향을 주었다. 그러한 상황에 헤스티아는 디아나의 완전한 파멸을 위해 디아나의 실질 세력인 신전의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신전의 힘을 약화하고 디아나가 폐위 되길 희망한다.
헤스티아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이유는 디아나와 황자 두 인물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카엘 공작을 배신하고 자살 기도까지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디아나가 카엘을 배신하면서까지 얻은 사랑과 명예와 권력을 모두 빼앗고 큰 절망 속에서 뼈저린 후회를 하는 것이 헤스티아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디아나를 폐위시키기 위해 신전을 건드린 헤스티아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먼저 헤스티아가 디아나의 폐위를 위해 폭로한 신전의 비리는 그녀를 추앙하며 따르는 많은 평민세력들을 그녀로부터 등돌리게 할 수 없다. 비록 성녀로 추앙받던 그녀와 고귀한 신전의 이미지는 실추될 수 있으나 폐위를 시킬 만큼의 큰 타격을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무지한 평민들이 그들의 편의 시스템을 조금 빼앗긴다 한들 그들의 의식주를 빼앗지 않는 이상 왕비의 폐위와 같은 대사를 치를 만한 혁명적 용기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을 역사적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전과 왕실을 대항하는 세력으로 소수의 귀족들밖에 없으니 이것은 헤스티아의 아주 크나큰 실수였다. 결국 헤스티아는 복수를 그만두자는 카엘의 뜻대로 복수를 포기하였고 이미 귀족들을 모아 왕실과 신전에 대항한 사람들로 낙인되었기 때문이다. 한낱 귀족이 과연 신전과 왕실의 협공을 물리칠 수 있을까. 아주 우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