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스팅스 전투, 눈 뜨고 코 베인 영국

기독교로 보는 세계사, 중세 영국의 등장과 발전을 읽고

by 책나비K

영국의 에드워드 2세가 아들 없이 죽자 영국은 후계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 때 프랑스 노르망디의 공작이었던 윌리엄이 정통성을 내세워 자신이 영국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윌리엄 공작의 이모 할머니가 영국 왕비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후보자인 영국 본토 귀족 헤럴드 백작과 윌리엄 공작 사이에서 영국은 헤럴드 백작을 왕으로 맞게 된다.


헤럴드 백작의 대관식이 치뤄지는 날 영국인들은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이를 길흉으로 여겨 헤럴드 백작이 왕이 된 것을 불길하게 생각하였다. 헤럴드 백작이 왕이 된 것을 안 윌리엄 공작은 곧바로 수백대의 함척을 동원해 영국을 침략했고 결국 헤럴드 백작을 죽이고 영국의 왕이 된다.


무력으로 영국의 왕위를 얻긴 했으나 중세에는 교황에게 승인을 받아야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로마의 교황 레오 3세는 윌리엄이 친척과 근친혼을 한 것을 이유로 승인해주지 않았다.

곤란한 상황에 처해진 윌리엄 공작에게 도움을 베푼 이가 있었으니 이탈리아 출신의 노르망디 수도원장 랜프랑크였다.


랜프랑크는 교황 레오3세를 뒤이어 새로운 교황이 들어서자 마자 직접 교황청에 방문하여 승인을 받아낼 뿐만 아니라 영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먼저 교회의 교황이자 자신의 제자인 알렉산더 2세에게 즉위 선물을 보내게 한다.


윌리엄은 교황으로부터 진정한 영국 왕으로 승인받자 본격적으로 영국의 정치 지형을 바꾼다. 수천 명의 영국 귀족들을 제거하고 대신 프랑스에서 건너온 노르망디 출신의 귀족들이 영국 땅을 차지하며 억압하는 영주가 되었다.


윌리엄은 세 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죽기 전에 장남에게는 프랑스 '노르망디 '를 '차남'에게 영국 왕좌를 남겼다. 윌리엄의 뒤를 이어 윌리엄 2세,헨리 1세, 헨리 2세 그리고 리처드 왕이 통치하게 되었다. 헨리 2세의 차기 군주인 리처드 왕은 유럽을 대표해 싸운 영웅이며 대영 제국의 근간을 세운 왕으로 칭송되지만 영국을 통치하면서 죽을 때까지 영어를 할 줄 모른 왕으로 부정적인 평을 받기도 한다.



나는 이 시대의 영국민들이 참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윌리엄 공작은 이모 할머니가 영국 왕비라는 것 외에 영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할아버지,아버지,어머니가 모두 프랑스인인 윌리엄 공작은 프랑스인이라고 보는 게 맞다. 프랑스 귀족과 영국 본토 귀족 중 누가 왕이 되는 것이 영국민들에게 이롭냐 물어본다면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헤럴드 백작이 왕이 되는 날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지는 것을 본 많은 영국민들이 헤럴드가 왕이 되는 것에 대해 불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나 사실은 영국민들이 실제로 목격한 것이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오히려 헤럴드가 왕이 되는 그 날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고 소문이 나면 정통 후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초기의 민심이 중요한 헤럴드에게는 왕위에 있어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헤럴드가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불길하게 여겨지며 민심을 얻지 못할 때 가장 덕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면 진정 이 일이 일어난 것이 맞는지, 정말 영국민들이 믿는 대로 신이 왕을 못마땅히 여겨 불길한 징조를 보여준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윌리엄이 영국의 왕이 되어 영국민들을 위해 한 일이라곤 없었다. 수십 만명의 영국의 귀족들을 모두 제거하고 같은 노르망디 출신의 봉건 귀족들에게 영국의 정치를 맡김으로써 완전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게 했을 뿐이다. 영국민들의 우매함,미신과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소문을 믿는 어리석음이 자신들의 군주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그 뒤로 300년 동안 윌리엄 공작의 후손들이 영국을 통치하였다. 그 중 리처드 왕은 영국의 왕으로 있으면서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최악의 군주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리처드 왕에 대한 호의적인 평 중에 유럽을 대표해 이슬람과 싸운 영웅이라는 호칭과 대영 제국의 정신적 근간을 세운 왕이라는 수식어는 각각 프랑스의 영토 확장을 위해 헌신한 프랑스의 영웅, 영국을 프랑스의 식민지화 시킨 왕으로 표현하는 게 맞다 생각한다.


리처드 왕은 그야말로 영국의 정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프랑스를 위해 영토 확장 전쟁을 감행하는 일 외에 영국의 정사는 모두 신하들에게 내맡긴데다가 자신이 다스리는 민족의 언어도 몰랐으니 말이다.

만약 리처드 왕에 대해 영웅이라거나 영국의 영토를 넓히려고 유럽을 대표해 싸운 사람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신이 다스리는 민족의 언어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그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겠냐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설 버려진 나의 최애를 위하여 비평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