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도ㅣ어른의 맛ㅣ일곱 걸음

by 온도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요리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손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친절함에

마음이 놓였다.


10g, 100ml에 맞는 양을 조절하며

조금씩 채워지는 양념에

이미 완성된 그림의 음식이

눈앞에 놓인 듯했다.


막상 양념 맛을 보니

내가 알던 맛인지 긴가민가했지만

레시피를 잘 따라갔으니

잘 될 거라는 믿음이 나를 안정시켰다.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 음식은

입가엔 미소 짓게 했고

입안엔 침샘을 자극해

냄새로 맛을 보는

‘셰프‘가 된 기분이었다.


나 홀로 식당을 차리며

아꼈던 접시 위에

음식으로 색을 입힌 뒤

테이블 중앙에 뒀다.


막상 먹으려니 아까워서

한동안 쳐다보기만 하다가

이내 젓가락을 들고

음식 속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첫 성공의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오묘한 맛이

입안을 들쑤셨다.


마음속으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려

쩝쩝거리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수준 높은 음식을 이해하려 했다.


낯선 맛이 혀끝을 맴돌았다.

고급 음식이란 원래

한 번에 다 이해되지 않는 법이니까.


테이블을 다 정리하고 난 뒤

맛이 빠진 음식의 향만이

온 집안에 가득했다.


그 향이 나에게 주는 건

첫 입맛에서 느꼈던

오묘함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걸음마 같았다.

이젠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을

무기력함에 휩쓸리지 않고

담담히 받아내는

방파제가 되는 과정 아닐까?


그래서 나는 다시

어른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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